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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오직 그들만의 추격전…'귀공자'

등록 2023-06-21 07:31:28   최종수정 2023-07-03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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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귀공자'는 박훈정 감독의 영화다. 연출자가 누구인지 새삼 확인하려는 건 아니다. 이 작품이 박 감독이 10여년 간 보여준 그만의 영화 유전자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작품이라는 말이다. 박 감독 영화의 유전자라는 건 이런 것들이다. 현실과 철저히 분리된 장르적 세계, 그 세계에서만 존재할 법한 과장된 캐릭터, 그런 캐릭터들이 지닌 폭력성, 바로 그 캐릭터와 폭력에 복무하는 듯한 스토리, 비장한 대사와 그 비장함에서 삐져나오는 이상한 코미디. '귀공자'엔 박 감독 영화의 이런 특색들이 빠짐 없이 있다. 이 '박훈정 영화'를 지지해온 관객이라면 '귀공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리 없다. 반대로 박 감독이 새로운 걸 보여주기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이번에도 만족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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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공자로 불리는 정체불명의 킬러가 등장해 필리핀에서 사설 복싱 경기에 참가해 돈을 버는 청년 마르코를 난데 없이 쫓기 시작한다는 설정만 보면 '귀공자'는 꼬여 있는 이야기의 매듭이 하나 씩 풀려가는 재미가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전진하며 점차 드러나는 진실들은 그리 큰 충격을 주지 못한다. 대신 이 영화가 집중하는 건 캐릭터다. 완벽한 핏의 슈트를 입고 만면에 미소를 띈 채 사냥을 즐기는 듯한 귀공자와 역시 정장을 하고 있지만 귀공자와 달리 시종일관 얼굴을 찡그린 채 화를 내는 한 이사라는 두 무도한 인물이 맞부딪힐 때 발생하는 화학 작용을 지켜보는 게 '귀공자'의 핵심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다소 미적지근한 전반부를 지나 두 사람이 대면하는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극의 온도는 올라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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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공자와 한 이사 두 캐릭터가 중요한 영화인만큼 귀공자를 연기한 김선호, 한 이사를 맡은 김강우는 이 작품을 이루는 다른 어떤 요소들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김선호는 기존에 로맨스 드라마 남자 주인공 이미지가 생각나지 않는 연기를 하고, 김강우는 귀공자와 비교하면 활동 반경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인물인 한 이사를 맡아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해내는 저력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두 배우는 앞서 언급한 '박훈정 영화'에 딱 맞아떨어지는 연기를 한다. 다만 귀공자·한 이사 두 인물이 이런 종류의 장르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라는 건 '귀공자'의 한계다. 마르코를 연기한 강태주나 베일에 쌓인 또 다른 인물인 윤주를 맡은 고아라는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이 역시 연기력의 문제라기보다는 두 배우가 맡은 캐릭터의 문제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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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공자'가 캐릭터에 골몰하면서 스토리가 빈약해져버린 건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이다. 물론 이 영화는 애초에 치밀하게 설계된 이야기 구조를 내세울 생각이 없어 보인다. 등장 인물들이 모두 달려들어 마르코를 쫓는 추격전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액션이 주는 재미, 흔히 말하는 장르적 즐거움에 집중하는 영화라는 얘기다. 그러나 얼렁뚱땅 넘어가는 경우가 잦은 탓에 생사를 넘나 들며 벌이는 그들의 사투에는 생기가 느껴지지 않고 긴장감도 떨어진다. 만약 박 감독이 '신세계'(2013) 이후 내놓은 영화들이 대체로 불만족스러웠던 관객이라면 '귀공자'에도 그때와 유사한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박 감독이 만드는 영화의 특색이라기보다는 고질적인 단점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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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은 최근 흔히 얘기하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가장 빠르게 만들어 가고 있는 국내 연출가 중 한 명이다. '마녀' 시리즈가 세계관을 점차 넓혀 가고, '귀공자' 후속작도 만들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나올 '폭군' 역시 박 감독 유니버스 중 한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신세계'는 언제든지 다시 출발할 가능성을 지닌 작품이다. 이는 코로나 공백기를 빼면 2017년 '브이아이피' 이후 사실상 매년 새 영화를 내놓고 있는 박 감독의 성실성이 만들어낸 독보적인 성과다. 그리고 이 성실함은 국내 어떤 각본가·연출가도 흉내내기 힘든 유일무이한 능력이다. 그러나 박 감독의 이 속도전엔 디테일 부족이라는 부작용이 뒤따르는 게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감독은 이 방식을 버릴 생각이 없는 듯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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