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산뜻하고 경쾌하게, 품위 있게…'밀수'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류승완 감독은 지난 18일 '밀수'를 처음 선보이는 날 두 가지 인상적인 발언을 했다. 하나는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관한 얘기였고, 다른 하나는 한국영화계에 던지는 제언이었다. 그는 영화 상영 전 '밀수'에 관해 "그동안 갈고 닦은 재주를 다 부려서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나서 영화가 끝난 뒤에는 한국영화가 겪고 있는 위기에 대해 "만드는 사람이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한국영화는 언제나 위기 속에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밀수'는 이날 류 감독이 뱉은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 이 영화엔 정말이지 류 감독이 그간 보여준 장기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최근 한국상업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완성도 역시 고루 갖췄다. '밀수'는 새롭진 않아도 남다르다. 1970년대 서해안 어느 바닷마을 해녀들이 밀수에 뛰어들고 이들이 돈을 벌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익숙하다. 각자 다른 이유로 한 배를 탄 사람들, 돈, 배신, 얽히고 설킨 그들의 과거 같은 건 국내외 영화에서 숱하게 반복돼왔던 코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아무리 유사한 소재 비슷한 스토리라도 만드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어떤 배우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평범하지 않은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동시에 속도감 있게 전진하는 '밀수'는 바다가 배경인 영화답게 시종일관 산뜻하고 경쾌하다. 김혜수·염정아·박정민·조인성·고민시·김종수 등은 가장 좋은 위치에서 가장 알맞은 역할을 부여받아 각기 다른 매력으로 스크린을 분담한다. 이 정도로 적당히 버무려지는 데 그쳤다면 '밀수'는 평범하다는 인상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류 감독은 이 작품에만 있는 두 가지 무기로 '밀수'를 특별한 영화로 끌어올린다. 첫 번째는 수중 액션, 두 번째는 여성 서사. 해녀 액션은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볼거리다. 해산물 채취에서 밀수품 운반으로 또 종반부 클라이막스 수중 시퀀스로 이어지는 해양 장면을 보고 있으면 류 감독을 왜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액션 장인으로 부르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여성 캐릭터가 전면에 나서 이야기를 주도하는 것 역시 어떤 한국상업영화도 시도하지 않은 일. 말하자면 수중 액션은 이 영화의 재미를, 여성 서사는 이 작품의 품위를 담당한다. 남성 완력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물 속에서 해녀들이 종횡무진 연대해 그들을 무력화하는 장면은 오락과 의미가 모두 담긴 상징적 장면이다. 그리고 진숙(염정아)과 춘자(김혜수)가 물 속에서 손을 맞잡는 바로 그 신(scene)은 한국영화 명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물론 약점이 없진 않다. 범죄물로서 보다 정교한 이야기, 바다를 배경으로 한 액션영화로서 더 큰 스펙터클, 여성 영화로서 더 치밀한 구조를 보고 싶었던 관객에게 '밀수'는 성에 안 차는 작품일 수 있다. 전개 속도를 높이느라 중요한 사건을 얼렁뚱땅 넘어가기도 하고, 창의성이나 난도와는 별개로 액션이 상대적으로 소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시도 자체는 존중받아야 하나 도식적인 여성 서사라는 비판도 분명 있을 수 있다. 다만 단점보다는 장점이 크고, 앞서 언급한 장점의 매력이 관객을 충분히 매료할 정도여서 단점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무엇보다 '밀수'는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이 작품 특유의 바이브(vibe)에 빠져들게 하는 영화다. 이 대목에서 가수 장기하가 재현한 1970년대 가요는 요소 요소에 삽입되며 극장을 특정한 분위기로 몰고 가는 데 큰 몫을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