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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명주’로 이름 날린 삼국시대 우리의 술

등록 2023-10-21 06:00:00   최종수정 2023-10-30 11: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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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식품수출정보(KATI)에 따르면 지난해 막걸리 수출량은 1만 5천396톤으로 지난 2020년 1만 2천556톤과 비교해 22.6% 증가했다. 4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고객이 막걸리를 고르고 있다. 2023.10.04. xconfind@newsis.com


[서울=뉴시스]  와인이 세월과 지역을 넘어 사랑을 받는 이유는 와인이 가진 역사적, 문화적 배경 때문이다. 와인이 가는 곳에는 종교와 문화가 따라갔고, 또 와인을 매개로 새로운 문화가 창조됐다. 와인은 이미 기원전에 중국에 들어왔지만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일본 등 다른 동아시아 나라로는 확산되지 않았다. 대신 쌀이나 보리 등 곡물로 만든 술은 광범위하게 전파된다. 유교와 성리학의 발전도 술 관련 풍습과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과 일본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술과 함께 독자적인 술 문화가 발전한다.

우리나라의 술은 이미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명주로 이름을 날렸다. 대이두(大李杜)라 불린 이백과 두보에 빗대 두목(杜牧)과 함께 소이두(小李杜)로 불린 당나라 말기의 시인 이상은(李商隱, 813~858)은 ‘전당시’(全唐詩)에 수록된 시 ‘공자’(公子)에서 신라주를 찬미했다.

“신라주 한잔의 취기가 이른 새벽 바람에 사라질까 두렵구나.”(一盞新羅酒 凌晨恐易消, 일잔신라주 능신공이소)

신라의 술이 중국에까지 진출했음을 보여준다. 신라주는 중국의 황주처럼 1차 발효 후 여과한 것으로 보인다. 알코올 도수도 비슷했을 것이다. 한치윤(韓致奫, 1765~1814)이 서술한 ‘해동역사’(海東繹史, 1823) 제26권 ‘물산지’(物産志)에는 이 이상은의 시를 소개하고 신라주가 고려시대 멥쌀로 만든 고려주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이상은의 시 원전에서는 새벽을 뜻하는 ‘능신’(凌晨)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해동역사에서는 ‘능상’(凌霜)으로 잘못 쓴 부분도 눈에 띈다. ‘지봉유설’(芝峯類說, 1634) 권12에도 이상은의 시를 소개하면서 당나라에서는 신라주를 귀하게 여겼다고 썼다.

당나라 단성식(段成式, 800~863)이 지은 ‘유양잡조’(酉陽雜俎) 속집(續集) 권1에도 신라의 술 이야기가 나온다. 신라 무열왕 김춘추는 하루에 쌀 여섯 말과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를 먹는 대식가였다(삼국유사 권 제1, 태종춘추공편). 김유신이 술집으로 향하는 애마의 목을 쳤다는 설화에서도 보듯 신라에서는 술과 술집이 일상에 자리잡고 있었다.

고구려에 속했던 만주 지역의 말갈족은 당시 이미 와인을 양조했고, 중국의 여러 기록에도 고구려 술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송나라 시대 편찬된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 979)에는 고구려 여인이 ‘곡아주’(曲阿酒)를 중국에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위서’(魏書) 유조전(劉藻傳)에도 곡아주 이야기가 나온다. 한반도와 가까운 장수성 단양(丹陽)에서 생산되는 황주인 ‘봉항주’(封缸酒)는 곡아주라고 칭하기도 한다. 일찍이 삼국지 위서동이전에도 고구려에서는 집집마다 ‘좋은 술을 담근다’(善藏釀)고 했다. 이규보가 지은 ‘동명왕편’의 주몽신화도 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삼국사기 대무신왕 편에서는 한나라 요동태수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주’(旨酒)를 보내 달래고자 하는 내용이 있다. 지주는 좋은 술이란 뜻이다.

삼국시대에는 누룩의 사용이 일반화됐다. 백제에서도 일찍이 누룩을 이용한 양조기술이 발달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 된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 712) 중권 응신천황조 편에는 ‘수수허리’(須須許理, 스스코리)라 불리는 백제인 ‘인번’(仁番, 니호)이 응신천황(應神天皇, 재위 270~310년)에게 대어주(大御酒)를 빚어 바쳐 왕이 기분 좋게 취했다는 기록이 있다.

헤이안 시대에 편찬된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 815)에는 주인공이 바뀌어 백제 도래인 ‘증증보리’(曾曾保利, 조조호리) 오누이가 인덕천황(仁德天皇, 재위 313~399년)에게 대어주를 바쳤다고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뜬금없이 수수허리가 아니라 ‘수수보리’(須須保利)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이 더 알려져 있다. 또 수수보리가 일본의 사가신사(佐嘉神社)에 주신(酒神)으로 모셔져 있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어 있다.

수수보리라는 ‘인물’은 일본의 기록에는 나오지 않는다. 일본의 ‘세계대백과사전 2판’의 인물이 아닌 용어설명 란에는 수수보리(須須保利)가 한국의 김치, 중국의 자차이(榨菜), 유럽의 피클과 같은 절임(漬物, 츠케모노)의 일종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본의 법률과 관습에 대해 기술한 ‘연희식’(延喜式, 927) 제39권 우지춘채료(右漬春菜料) 편에도 채소 절임의 일종으로 처음 등장한다. 실제로 나라(奈良)시에 있는 일본 야마토 시대 전통요리 전문점 ‘본가’(萬佳)에서는 수수보리 절임(須須保利漬)을 옛날 방식대로 재현에서 내놓고 있다. 무에다 간장, 현미식초, 절구로 간 생 콩을 넣어 절인다. 발효를 위해 누룩도 넣는다.

사가신사(佐嘉神社)에 얽힌 이야기도 허구다. 규슈의 사가현에 위치한 사가신사는 573년에 창건되었다. 제사를 올리는 신은 ‘콩의 신’이라는 ‘미두남신’(彌豆男神)과 ‘미두여신’(彌豆女神)이다. 앞서 언급한 증증보리 남매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술과는 딱히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오히려 콩을 사용한 수수보리 절임과는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일본에는 주신을 모시는 신사가 많이 있다. 그 중에서 마츠오 타이샤(松尾大社)는 주신(酒神)을 모시는 3대 신사 중 하나다. 5세기 후반 신라의 울진 지역에서 도래한 하타(秦)씨족이 농경과 양조를 관장하는 신인 오야마쿠이카미(大山咋神)을 기려 701년 교토에 건립했다. 건립 후에는 하타씨족의 조상에게도 제사를 올린다. 하타씨족은 일본에 양잠, 양조, 제방과 농수로의 축조 기술을 전파했다. 여러 연구로 보아 백제가 일본 사케의 기원이라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3~5세기 우리나라가 일본의 양조기술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부여, 동예, 삼한 등 삼국시대 이전의 부족국가 시대에도 제례 및 경조사에 술이 빠지지 않았다. 고려시대 이전 우리나라 술의 역사는 대부분 중국의 제한된 기록에 의존한다. 하지만 고려시대 후기 이후에는 자체 기록이 많이 남아 있어 우리나라의 찬란한 술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딜리버리N 대표 ybby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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