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스펙터클을 장악하다…'서울의 봄'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가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의 본질은 기만이다.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저 허구의 그림들을 관객이 가짜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속이는 게 영화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다. 톰 크루즈가 오토바이를 직접 몰고 가 절벽 위에서 몸을 내던지는 것, 크리스토퍼 놀런이 컴퓨터그래픽을 쓰지 않고 폭파 장면을 구현해낸 것 모두 완전 범죄를 위한 계획 중 일부다. 스펙터클이 크기와 박진감에만 있는 건 아니다. 영화가 자아내는 긴장감도 스펙터클이다. 관객이 영화 속 상황을 리얼하다고 믿지 못하면 서스펜스라는 건 있을 수 없다. 새 영화 '서울의 봄'(12월22일 공개)은 이런 면에서 스펙터클을 장악한다. 12·12 군사 쿠데타를 극화한 이 작품은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는데도 객석을 긴장감으로 가득 채운다. 실제 사건에 장르적 재미를 덧칠하며 끝까지 밀어붙여 기어이 관객을 속이는 데 성공한다. 선명한 캐릭터와 캐릭터에 맞춤한 듯한 캐스팅, 그리고 배우들의 정확한 연기는 '서울의 봄'이 141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 내내 텐션을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이다. 욕망에 잡아먹힌 악과 신념으로 중무장한 선의 대립은 상투적이지만, 이 캐릭터들을 뱀처럼 연기할 수 있는 황정민과 호랑이처럼 움직일 수 있는 정우성이 맡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황정민은 현란한 연기로 전두광에 생기를 불어넣고, 정우성은 태산같은 연기로 이태신에 신뢰를 부여한다. 전두광이 어떤 약점이라도 찾아서 파고들 것만 같이 집요하고, 이태신이 전두광 무리의 공격을 어떻게든 막아낼 것만 같이 굳건해보이기에 '서울의 봄'은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목표한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황정민과 정우성은 그들의 캐릭터를 후반부로 갈수록 더 강화하며 이 영화를 궤적에 명중시킨다. 정확한 편집은 '서울의 봄'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이 영화는 1979년 12월12일 당일 9시간 동안 발생한 사건을 보여주는 데 러닝 타임 3분의2 가량을 쓴다. 자칫 이야기가 늘어진다는 느낌을 줄 수 있고, 팽팽하던 긴장감이 후반부로 갈수록 느슨해진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으나 김성수 감독은 이 사건에 관계한 인물들의 움직임과 사건의 양상 변화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오히려 관객을 점점 더 옥죄어 간다. 전두광과 이태신은 물론이고 이 사건을 마주한 뒤 각기 다른 선택을 하는 인물 다수를 다뤄야 하며, 다양한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데다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을 일일이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도 허둥거리는 법 없이 장면과 장면을 딱 떨어지게 이어붙여 몰입도를 높인다. '서울의 봄'은 영화라는 매체의 핵심은 편집이라는 걸 새삼 다시 확인해준다.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과 그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을 비교해볼 수 있는 건 '서울의 봄'이 선사하는 볼거리 중 하나다. 나이 지긋한 관객은 과거 실제 목격했던 그들의 모습과 2005년 방송된 드라마 '제5공화국' 속 배우들의 모습, 그리고 이번 영화에 나온 배우들을 나란히 놓고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려 볼지도 모르겠다. 전두환·노태우 등 이름만 알고 하나회를 교과서로 배운 젊은 관객은 굴곡진 한국 현대사에 상상력을 더해볼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같은 영화적인 대사와 함께 "믿어주세요" 류의 실제 발언이 뒤섞인 말들, 70명에 가까운 출연 배우가 하나 같이 영화·드라마에서 연기력으로 정평난 이들이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이준혁·정해인 등 굵직한 젊은 배우들이 단역으로 특별출연 했음에도 극에 잘 녹아든 부분도 완성도를 높인다. 이처럼 장점이 많지만, 단점도 분명하다. 두 주요 인물 전두광과 이태신이 선악 혹은 흑백으로 명확히 구분되는 것 외에 다른 캐릭터를 부여 받지 못했다는 건 '서울의 봄'을 명쾌하지만 단순하게 한다. 전두광과 이태신을 중심으로 이합집산 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수많은 인물들로 캐릭터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듯하지만 두 주인공의 비중이나 영향력이 워낙 큰 탓에 특별한 효과를 내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12·12 군사 쿠데타에 관한 이 영화만의 주석을 기대했던 관객에겐 '서울의 봄'이 얕아 보일 수도 있다. 다만 전두광이 태생적으로 활동반경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캐릭터라는 건 참작해야 한다. 전두환이 한국 사회를 크게 퇴보시킨 것 뿐만 아니라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의 주범이라는 점에서 그를 모티브 삼은 캐릭터에 인간성을 부여하는 건 아마도 옳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역사적 맥락을 대체로 배제한 채 군사 쿠데타라는 사건을 활용해 영화적 쾌감을 선사하는 데 골몰했다는 건 '서울의 봄'이 가진 명백한 한계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관객에게 충분한 스펙터클을 제공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왜 12·12 사태를 되짚어 봐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44년 전에 벌어진 비극을 극적으로 재구성하는 것 외에 다른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10·26 사태를 다뤘던 '남산의 부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서울의 봄'에도 동시대성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건 최근 현대사를 다루는 한국영화의 공통된 결점이다. 그저 재미로만 소비해버리기엔 10·26 사태나 이로 인해 발생해버린 12·12 사태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 큰 상처를 안긴 경험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