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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빛의 미술관 정원] 슈퍼 컬렉터가 처음 산 작품이 ‘가짜’?

등록 2024-01-27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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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쉬혼 미술관과 조각 정원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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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허쉬혼 미술관 조각 정원 원형 중정에 놓인 제프 쿤스의 조각 ‘Kiepenkerl’(1987). (사진=이한빛 미술칼럼니스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한빛 미술칼럼니스트 = 조셉 H. 허쉬혼의 첫 컬렉션은 16세기 독일 예술가인 알버트 듀러(Albrecht Dürer)의 에칭 판화 2점이다. 각 70달러에 사들였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겨우 17세였다.

훗날 밝혀졌지만, 사실 이 작품은 듀러의 작품이 아니었다. 듀러 공방 출신 제자가 그렸거나 혹은 모조품인 것으로 판명 났다. 그럼에도 조셉은 이 작품들을 아꼈다. 자신이 죽으면 같이 묻어달라고까지 했는데, 유족들은 이 유지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 작품들은 허쉬혼 미술관 기증목록에서 빠져있다.

허쉬혼은 비록 가난했지만 일찍부터 예술을 가까이 했다. 그의 어머니는 일주일에 6일, 하루 12시간씩 지갑공장에서 일하며 주급으로 12달러를 벌었다. 겨우 생계를 꾸리는 상황에서도 주당 50센트를 지급하고 피아노를 빌렸고, 자녀들이 매주 50센트에 달하는 피아노 교습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푸르덴셜 보험에 가입해 명화 달력을 집에 걸어 놓기도 했다. 날짜가 지난 달력 속 그림은 허쉬혼이 형제들과 함께 쓰는 방을 꾸미는 역할을 했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였을까? 그 소년이 그때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바라 봤을지, 그가 슈퍼 컬렉터의 길을 갔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에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는 (돈 많이 벌어서!) 이런 달력이 아니라 진짜 그림을 걸겠어!!”

광산 투자로 큰돈을 벌기 시작하자 컬렉션의 질적 양적 수준이 급상승했다.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동시대 거장들의 작업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것. 수년간의 공부로 예술작품에 대한 확고한 안목을 길렀던 데다, 탄탄한 재정까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고 또 사고, 갤러리에서도 사고, 아트페어에서도 사고, 심지어 작가 스튜디오를 방문해 마음에 드는 작품이면 꼭 사들이고 말았다. 심지어 다량으로 사들이면서 가격을 깎는 것은 조셉의 특기였다.

1950년대 소장품 규모가 5000점을 넘어서자, 조셉은 이를 관리해줄 디렉터를 고용한다. 예술사학자로 자신의 갤러리를 운영하던 아브람 러너(Abram Lerner, 1930~2006, 허쉬혼 미술관 초대 관장)가 낙점됐다.

러너 전 관장은 허쉬혼과의 첫 대면을 워싱턴포스트에 이렇게 인터뷰한 적이 있다.

“갤러리에 들어와서는 이렇게 말했죠. ‘자네는 참 좋은 사람이야, 나는 저것, 저것, 그리고 저것을 사겠어’.”

허쉬혼은 정말 블랙홀 같은 컬렉터였던 셈이다.

윌렘 드 쿠닝, 밀톤 에이버리, 알렉산더 칼더, 에드워드 호퍼, 아쉴 고르키, 마크 샤갈, 파블로 피카소, 리차드 프리데릭 벤스타인, 조지 리키, 만 레이, 헨리 무어, 앙리 마티스, 잭슨 폴록, 알베르토 자코메티…. 허쉬혼의 컬렉션 리스트는 끝이 없다. 19~20세기 현대미술작가들의 작품을 거의 싹쓸이 하듯이 사들였다.

러너 전 관장은 코네티컷주 그리니치에 있는 그의 집과 정원, 맨해튼의 사무실, 창고에 작품을 연구, 보존, 설치, 감독하는 역할을 했다.

스미스소니언 인스티튜션 아카이브에 보면 허쉬혼이 작가들과 나눈 편지와 엽서, 사진 등이 있는데, 작가들과의 관계도 밀접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알렉산더 칼더의 부인인 샌디 칼더는 “칼더가 작업에 집중하고 있으며 현재 작업 중”이라고 스튜디오 사진까지 보낼 정도였다. (다음주 3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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