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럽지만 치유에 도움" 심리부검을 아시나요[초점]
아들·남편 떠나보낸 이들 "평생 갈 고통 줄여"처음엔 '태풍' 지난 양 혼란…차차 가라앉아"곪은 상처 툭툭 건드는 느낌…후련해지더라"자살 1명당 유족 5~10명…심리부검 0.001%심리부검 통해 자살 유가족도 '일상회복'으로
[서울=뉴시스]조수원 수습 기자 = "심리부검을 받고 평생 겪을 고통이 몇 년으로 줄어든 것 같아요." 자살유족 김순희(61)씨가 심리부검 당시를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지난 2017년 아들을 떠나보낸 후 5년 만에 심리부검을 받았다. 자살한 아들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치유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 뉴시스 취재진은 지난 4일 자살유족 김순희씨와 심연순(61)씨를 만나 그들이 받은 심리부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남편 떠나보낸 이들 "평생 갈 고통 줄여" 심리부검이란 자살 유족의 진술과 기록 검토를 통해 자살사망자의 심리 행동 양상을 확인하고 자살의 구체적인 원인을 추정하는 조사 방법이다. 자살예방법 제11조의2에 근거해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자살예방 정책 수립, 유족 대상 사후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정신건강임상심리사 등 정신건강 전문가 2명과 유족이 한 차례 대면으로 만나 약 3시간 동안 고인의 삶을 되짚어보거나 사별 후 겪은 변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를 통해 유족들은 고인의 상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심리적 지지를 얻어 일상회복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심리부검 결과는 국가 자살예방정책을 수립하는 자료로도 활용된다.
◆처음엔 '태풍' 지난 양 혼란…차차 가라앉아 이 같은 이점에도 심리부검은 유족들에게 쉬운 선택지가 아니다. 7년 전 아들을 잃은 김순희씨에게 심리부검은 시작부터 짜증 나고 불쾌했던 경험이었다. 시부모와의 갈등, 가난한 일상 등 감추고 싶은 삶의 일부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씨는 심리부검 이후 일주일을 태풍이 지나간 듯 혼란한 기분으로 보냈다. 침대 위에서 움직일 수 없어 수액만 맞고 지냈다. 그는 "아들이 떠난 뒤 5년 동안 마음을 다져왔다고 생각했는데 꺼내보고 싶지 않아서 그냥 묻어버렸던 것 같다"며 "심리부검을 하면서 아이 임신과 출산부터 생애 모든 과정을 돌아보니 아이 눈높이를 생각할 수 있었고 미안함을 느껴 또 다른 치유가 됐다"고 전했다. 심리부검을 받기 전 김씨는 TV에 스노보드 타는 장면이 나오면 아들 생각에 눈물이 흘러 밥을 먹다가도 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김씨는 더는 스노보드를 봐도 우울하지 않다. 대신 그 위에 서있을 아들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됐다. ◆"곪은 상처 툭툭 건드는 느낌…후련해지더라" 지난 2017년 10월 남편을 떠나보낸 심연순씨도 심리부검을 처음엔 거부했다. 잘못한 것 없지만 남편의 죽음이 자기 탓만 같았다. 타인을 만나고 싶지도, 삶에 대한 의지도 잃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인적 드문 밤에만 집 밖을 나오던 그가 심리부검을 결심하게 된 것은 그보다 앞서 심리부검을 받은 딸의 영향이 컸다. 심씨는 "상처 나서 곪아 있는 곳을 톡 톡 건드리는 느낌이었다"며 "가슴이 아파 많이 울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자식, 형제 앞에서도 마음껏 울 수 없는데 (심리부검을 받을 때는) 내가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서도 말할 수 없어서 곪은 부분을 건드리니까, 이야기를 다 하게 됐다"며 "이야기를 하고 나니 힘이 없었다. 집에 와서 이틀을 내리 자고 나니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심씨는 심리부검을 통해 자살한 남편에 대한 죄책감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나만 힘들다고 생각한 과거에서 이젠 주위도 둘러볼 수 있게 됐다"며 "몸 관리 잘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심씨는 이제 '심리부검 전도사'를 자처한다. 주위에 심리부검을 꾸준히 소개했고 최근엔 다른 자살 유족도 심리부검을 신청했다고 한다.
◆자살 1명당 유족 5~10명…심리부검 0.001% 그쳐 이러한 심리부검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에도 실제 심리부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자살 통계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자살 사망자 수는 1만2906명이다. 자살 사망자 한 명당 유족 5~10명이 생긴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대 13만명에 육박하는 자살 유족이 생겼다. 이 중 2022년에는 불과 0.001%를 조금 넘는 169명만이 심리부검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자살 유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고 심리부검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자살 유족들이 심리부검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치료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자살 유족 22명의 심리부검을 했다는 이선아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심리부검면담팀장은 "과거보다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유족이 자살 사건을 언급하길 꺼리는 사회 분위기"라며 "유가족들은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해 드러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유족들이 저마다 애도하는 방식과 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심리부검이 자발적으로 이뤄졌을 때 유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심리부검이 어떤 면에서 도움 되는지 유족에게 더욱 알려져야 한다. 특히 유족을 직접 만나는 단계에서 심리부검이 갖고 있는 이점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