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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새벽에 기상하는 뇌병변 직장인…불러도 기약 없는 '장콜'[강요된 자립②]

등록 2024-04-18 07:00:00   최종수정 2024-04-22 10: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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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 김성훈씨, 자립 의지 강해 부모로부터 독립

경북 구미에서 연고도 없는 성남에 터 잡으며 자립 생활

유년시절 특수학교 입학 거부 경험…"맞춤형 교육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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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뉴시스] 중증 뇌병변 장애가 있는 김성훈(38)씨가 지난 12일 오전 6시 55분께 경기 성남시 수정구  자택 근처에서 장애인 콜택시를 타기 위해 전동휠체어에 앉은 채로 경사판을 오르고 있다. 그는 이날 장콜을 타고 분당선 오리역에서 하차한 뒤 지하철로 기흥역까지 이동했다. 이후 한 번 더 용인경전철로 갈아탄 끝에 회사로 출근할 수 있었다. (사진=김성훈씨 제공) 2024.04.1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수원=뉴시스] 박종대 기자 = 중증 뇌병변 장애가 있는 김성훈(38)씨는 경기 용인시 처인구에 소재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홈페이지 관리를 보조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여느 직장인처럼 주말과 공휴일을 빼면 주 5일제에 맞춰 매일 출·퇴근을 반복하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출근길 풍경은 비장애인과는 달리 시작부터 암초에 부딪히기 일쑤다. 우선 성남시 수정구 자택에서 직장까지 편도 30㎞가 넘는 출근길에 나서려면 이른바 '장콜'(장애인 콜택시)를 타야 한다.

◆'장콜' 부르는 것으로 시작하는 하루…차량 순연되면 '진땀'

문제는 장콜 서비스 이용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흔히 비장애인들이 자주 쓰는 '카카오택시'는 이용객이 콜을 불렀을 때 차량이 배차되면 금방 택시가 승객이 있는 출발지에 도착한다.

반면 장콜은 동시간대 운행되는 차량 대수가 부족하다. 콜을 불러도 자신의 대기순번까지 차례가 오는 데 길게는 수 시간씩 소요되는 탓에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이용객이 서둘러 콜을 불러야 한다.

이로 인해 그는 출근하는 날에는 새벽 4시에서 4시 반 사이에 무조건 기상해 장콜 서비스앱을 켜서 이를 요청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만일 제 시간에 잠에서 깨지 못해 장콜을 늦게 부르면 혼잡한 출근시간대에 전동휠체어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는 장콜을 부르는 일보다 더 고난의 연속이다.

실제로 김 씨가 지난 12일 출근 과정에서 남긴 '앱 이용기록', '장콜 탑승사진'을 보면 그의 출근길 고단함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침대에서 눈을 뜬 직후인 새벽 4시 36분께 앱으로 장콜을 요청했다.

그런데 이미 같은 지역에 사는 다른 교통약자들이 자신보다 먼저 서비스를 신청하면서 그는 '8번째' 대기순번으로 밀려나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집 근처 차고지에서 나오는 차량도 없었다. 결국 그는 처음 요청한 배차를 취소하고 다시 성남시내로만 운행하는 장콜을 따로 예약해 오리역까지 가서 지하철로 직장까지 이동해야 했다. 이마저도 장콜은 2시간여 만에 도착했다.

빠른 결정으로 시내까지 가는 장콜을 타면서 인파가 붐비는 출근시간을 피해 지하철을 타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장애인을 못 마땅하게 여기는 승객들이 종종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도 처음 보는 낯선 승객이 내뱉은 "이 시간에 불편한데 어디를 가냐"는 말에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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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뉴시스] 중증 뇌병변 장애가 있는 김성훈(38)씨가 지난 12일 새벽 시간에 '장콜'(장애인 콜택시) 호출 앱을 통해 차량 배차를 요청하자 그의 휴대전화로 발송된 대기인원 안내 문자메시지. 기상 직후 장콜을 불렀는데도 '8번째' 순번을 받았다. (사진=김성훈씨 제공) 2024.04.1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후 오리역에서 분당선을 타고 기흥역까지 도착한 그는 한 번 더 용인경전철로 환승한 끝에 출근에 성공했다. 이렇게 그는 장콜 배차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혹시라도 지각할 수 있다는 조바심에 마음을 졸였던 경험이 한두번이 아니다.

불과 그는 전날에도 회사 퇴근시간을 앞두고 장콜을 불렀는데 먼저 접수된 다른 이용객들로 인해 오후 9시 30분이 넘어 차량을 배정받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내용의 안내 문자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장애인 받아주는 집주인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

회사가 소재한 용인으로 집을 이사하면 출·퇴근할 때 소모되는 불편을 줄일 수는 있다. 하지만 집 안에서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중증 뇌병변 장애인을 받아주는 집주인을 찾는 것부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현재 거주 중인 집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장애인에게 공급해주는 다세대 주택이다.

김 씨는 "장콜 이용자가 적으면 대기순번이 금방 제 차례까지 와서 일찍 차량에 탑승하게 되는데, 출근시간보다 1시간이나 1시간 반 전에 회사에 도착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럴 때는 회사 근처나 카페 같은 곳에서 기다렸다가 출근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중증 뇌병변으로 인한 신체 활동 말고도 언어 장애도 함께 겪고 있다. 김 씨를 처음 만난 사람은 그의 발음이 어눌하기 때문에 원활한 대화를 나누려면 의사소통을 보조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평일과 주말에 각각 1명씩 장애인활동지원사가 그의 자립생활을 보완해준다. 김 씨가 일상생활이나 직장에서 일과를 보는 데 있어 필요한 화장실 용무를 보는 영역부터 회사에서 수행해야 하는 공적 업무를 보조하는 일까지 살뜰히 챙긴다.

김 씨가 지난 3일 취재진과 직접 만나 인터뷰를 나눌 때도 약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주말을 함께 보내고 있는 남성 장애인활동지원사 1명이 인터뷰 장소인 성남시 제1공단 근린공원까지 동반해왔다.

이처럼 김 씨는 타인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절대 자립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에게 장애로 인해 감수해야 하는 생활 속 불편을 줄여준다면 중증 뇌병변이 있어도 '보통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다만 그가 의존하는 유형와 방식이 비장애인과는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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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뉴시스] 지난 12일 김성훈(38)씨가 경기 성남시 분당선 오리역에서 기흥역까지 지하철로 와서 용인경전철로 환승하기 위해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그는 이날 직장까지 가는 장콜이 제때 배차되지 않아 이를 취소하고 오리역까지 가는 장콜을 다시 불러야 했다. (사진=김성훈씨 제공) 2024.04.1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김 씨가 대학에서 부모가 사는 경북 구미를 떠나 연고도 없던 성남까지 상경해 현재의 직장을 다니며 자립의 기반을 마련한 데는 장콜과 같은 교통약자 이동서비스와 장애인활동지원제도가 큰 보탬이 됐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2011년 시행된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음 도입됐다.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 등 사유로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지원급여 제공을 통해 자립과 사회 참여를 지원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됐다.

특히 자립 의지와 욕구가 강한 중증 장애인에 속할수록 이같은 복지서비스를 통한 자립 가능성도 높다. 김 씨가 컴퓨터 관련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자신만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도 부모로부터 독립하려는 의지와 함께 그동안 지속적으로 개선된 장애인 지원제도가 뒷받침이 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애인 개인의 자립을 넘어 다른 장애인들을 돕는 선순환 효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김 씨는 우리 사회가 과거보다 양적인 측면에서 장애인 지원서비스가 늘어났음에도 질적 수준과 인식이 떨어져 있는 상황을 개선하는 활동에도 참여한다.

◆특수학교 입학 거부당한 장애인, 부모는 무릎을 꿇었다

김 씨가 개인 유튜브 채널인 '버스를 타는 열정돼지'를 통해 전동휠체어 축구를 즐기는 자신의 일상이나 생활 속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맞닥뜨리는 부조리한 현실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한 뒤 이를 알리는 것도 조금이나마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그는 장애인 자립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교육'도 꼽았다. 1986년생인 김 씨는 중증 뇌병변 장애가 있는 자신을 받아줄 만한 특수학교가 유년시절에 부재했다. 지적장애와 청각장애 학생만 받아주는 특수학교가 그가 사는 지역에 운영됐지만, 장애유형이 다르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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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뉴시스] 박종대 기자 = 지난 7일 오후 경기 성남시 수정구 제1공단 근린공원에서 김성훈(38)씨가 뉴시스 취재진과 인터뷰를 나누고 있다. 그는 장애인 자립 과정에서 '교육'을 가장 필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김 씨는 "장애인을 배려한 좀 더 세심한 교육이 이뤄질 수만 있다면 더 많은 장애인에게 자립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24.04.1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해당 학교에 부모가 찾아가 무릎까지 끓으며 자식의 입학을 부탁한 끝에 간신히 교정의 문턱을 넘을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학교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자신도 뇌병변으로 인해 언어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 속에서 지적장애나 청각장애가 있는 학생들과 서로 간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교우관계를 맺는 게 뜻대로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부친의 권유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자신의 장애로 인해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데다 또래 친구들과의 교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던 게 출발점이 됐다. 김 씨의 모친은 몸이 불편한 아들을 대신해 컴퓨터 학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빼곡하게 필기한 노트를 들고 집으로 와서 그를 가르쳐줬다.

김 씨는 "개인마다 장애 유형과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맞춤형 방식의 교육이 진행돼야 한다"며 "이러한 사항이 고려되지 않은 채 교육이 이뤄지면 학교를 졸업한 이후 사회에 진출해도 적응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을 배려한 좀 더 세심한 교육이 이뤄질 수만 있다면 더 많은 장애인에게 자립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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