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살인 8년③]"'여성혐오 범죄' 인정해야 대책 나온다"
경찰 '여성혐오 범죄 아닌 묻지마 범죄' 결론'혐오범죄' 분류조차 없어…"심층 분석 불가""교제폭력 포함한 '젠더 폭력' 포괄법 필요"
[서울=뉴시스] 김남희 이수정 오정우 기자 = 2016년 5월17일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살해당했다. 가해자인 30대 남성은 화장실에서 남성 6명을 보내고 여성을 기다렸다 범행을 저질렀다. 살인 동기는 '평소 여자들이 무시해서'라고 진술했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 여성혐오 논란을 촉발했다. 경찰이 '여성혐오가 아닌 정신질환에 의한 묻지마 범죄'로 결론 내리자 이를 규탄하는 시위가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열렸다. 전문가들은 최근 발생하는 교제폭력(데이트폭력) 살인사건과 8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의 뿌리가 같다고 진단한다. 가해자들이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 "감히 나를 무시하냐"는 분노와 범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여성 폭력과 인종 갈등 문제를 인식한 서구 국가들이 '혐오범죄'를 따로 관리하는 데 비해, 한국 사회는 아직 혐오범죄 분류조차 없어 대책 마련이 늦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민경 경찰대 교수는 "인종, 종교, 성별 같은 편견이 범행 동기가 되는 범죄가 혐오범죄"라며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혐오범죄에 대한 분류 체계가 달라진 것은 없다. 이상동기범죄 분류에 '혐오'를 포함하기 시작한 건 작년 신림역, 서현역 칼부림 사건 같은 '묻지마 범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처럼 혐오범죄를 이상동기범죄의 하위 분류로 두는 것은 장기적으로 심층적 분석과 대책 마련을 어렵게 한다"며 "영국과 미국, 독일 등 국가는 혐오범죄 카테고리를 따로 둔다. 우리도 혐오범죄를 별도로 분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8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과 지금 일어나는 연인간 살인사건들은 여성혐오라는 공통점으로 이어져 있다"며 "그런데 범죄의 원인이 성차별에 근거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정부 태도가 범죄를 더 부추기는 것"이라고 했다. 국제사회는 향후 전 세계적으로 혐오범죄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분류체계 적용해 착수했다. UN통계위원회는 지난 2022년 '페미사이드(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것)'를 국제 표준으로 최종 승인하고 관련 분리 통계를 집계하라고 권고했다. UN여성기구는 ▲친밀한 파트너에 의한 의도적 살인 ▲가족 구성원에 의한 살인(명예살인 등) ▲성차별적 동기가 나타나는 가해자에 의한 살인 등 3가지 기준 중 1가지 이상을 충족하면 페미사이드로 규정했다. 우리나라는 통계청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페미사이드 통계 도입 관련 진행 상황에 대해 "국제적인 분류 기준을 적용하는 연구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으나 아직 제대로 된 집계는 시작되지 않은 실정이다.
교제폭력 가해자를 접근금지 조치하고 구치소에 임시에 가두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교제폭력 방지법은 몇 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연인 관계'에 대한 정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달 13일 "교제폭력의 기준과 한계 설정이 모호한 것이 사실"이라며 "법과 제도에서 지금보다 더 진보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이 사안이 끝난다고 흐지부지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관심과 논의를 통해 진보된 법적·제도적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스토킹, 가정폭력, 성폭력으로 분리돼 있는 젠더 기반 폭력을 모두 아우르는 새로운 법 체계가 필요하단 제언이 나온다. 한민경 교수는 "현재의 성폭력특례법, 가정폭력방지법, 스토킹처벌법 등은 피해 유형이 분절돼 있고 법 체계도 복잡한 상황"이라며 "독일 같은 국가는 형법을 전면 개정해 여성 폭력 규정을 전면 바꿨다. 우리도 장기적으로 젠더 기반 폭력을 아울러 형법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