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 감당하지 못하고 휘청이는 '설계자'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설계자'(5월29일 공개)는 제목으로 정체를 드러낸다. 말 그대로 설계하는 사람에 관해 얘기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뭘 설계한다는 걸까. 이 작품 영어 제목을 확인해보면 그 의미는 분명해진다. 'The Plot'. plot엔 이야기의 구성이라는 의미와 함께 음모라는 뜻이 있다. 이제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겠다. '설계자'는 음모(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에 관해 들여다본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고? 뻔한 얘기를 굳이 짚고 넘어가는 건 이 영화의 제목이 유독 흥미롭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설계자'는 리메이크됐다. 원작은 정바오루이 감독이 2010년에 내놓은 '엑시던트'. 리메이크작과 원작의 얼개는 유사한 데가 많다. 그런데 제목이 눈길을 잡아 당긴다. accident는 사고를 뜻하고, 사고는 전혀 계획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을 때 쓴다. 리메이크 영화가 원작과 다른 제목을 쓰는 경우는 흔해도 정반대 의미를 가진 단어를 선택하는 건 흔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설계자'라는 제목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리메이크작은 원작에 선을 긋는 듯하다. 너와 난 달라. 영일(강동원)은 살인청부업자다. 그의 작업 방식은 독특하다. 직접 죽이지 않는 것. 영일은 동료들과 협업해 사고를 만들어내고, 살해 대상을 그 사고에 휘말리게 해 죽게 한다. 그렇게 그들의 살인은 완전 범죄가 된다. 이 모든 걸 총괄 지휘하는 그는 그래서 설계자로 불린다. 치밀하고 빈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영일이지만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사건이 그에게 벌어지면서 삶이 뿌리채 흔들리기 시작한다. 국가 주요 인사를 살해하는 과정에서 우연찮은 사고가 발생해 동료 중 한 명이 죽고 만 것이다. 영일은 이 모든 게 계획된 살인임을 직감하고 추적에 나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설계자'는 원작과 많은 부분이 유사하지만 이야기 폭을 넓히고 주제를 확장하기 위해 일부 설정을 더하거나 바꿔놓는다. '엑시던트'가 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설계자'는 이같은 추가·변경으로 개인에 더해 사회에 동시에 초점을 둔다. 원작이 주인공의 분열된 자아를 통해 불신과 불안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얼굴을 보고 있다면, 리메이크작은 여기에 더해 음모론이라는 소재를 적극 끌어와 일그러진 사회상을 담아낸다. 이런 이유 탓에 미니멀한 원작과 달리 '설계자'는 상대적으로 맥시멀해 보인다. '설계자'가 원작과 다른 방향으로 가기로 한 선택에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다. 중요한 건 선택한 방향으로 올바르게 나아가느냐. 그러나 이 작품은 분열된 개인과 일그러진 사회를 한꺼번에 쫓다가 갈피를 못 잡고 자주 휘청인다. 원작은 러닝 타임 87분을 철저히 주인공 '브레인'을 위해 활용하고, 현재 벌어진 사건에 최대한 집중함으로써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러나 '설계자'는 역시나 짧은 99분 안에 영일의 과거사와 영일 동료들에 관한 이야기, 음모론 관련 스토리를 모두 우겨 넣으며 어느 한 가지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장르물로서 매력도 떨어진다. 이 대목에서도 원작과 비교를 해야 한다. '엑시던트'는 철저히 주인공 시점에서 스토리를 풀어 간다. 대사와 상황 설명을 최대한 줄이고 브레인이 수집하는 정보와 관객이 알게 되는 정보를 일치해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러나 '설계자'는 너무 많이 설명하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중 정보량을 감당하지 못해 오히려 불친절하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영일에게 가장 중요해보이는 사건이나 메시지의 핵심이 담긴 장면을 다루는 방식은 서스펜스를 반감한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지 못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