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지연③]판사 부족에 재판 장기화…대법 "판사증원법 재추진"
처리 지연에 미제사건 누적…재판 지연 심화"해법은 법관 증원"…판사증원법은 자동 폐기22대 국회서 증원 재추진…일선 사기진작책도
[서울=뉴시스] 이종희 기자 = 대법원이 재판 지연 문제 해결을 위해 추진했던 '각급 법원 판사정원법 개정안'이 끝내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재판 지연은 사건 접수는 늘어나는데, 복잡해지는 추세가 이어지면서 법관들의 업무량이 증가한 것에 원인이 있다. 1인당 처리해야 하는 사건도 많은데, 처리까지 걸리는 시간도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법원은 그동안 "재판 지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법관 증원"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법관의 업무 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면 신속한 사건 처리가 가능하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21대 국회에서 무산된 판사정원법 개정안을 22대 국회에서 다시 추진할 방침이다. ◆처리 지연에 미제사건 누적…재판 지연 심화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체 사건수는 증가하는데 수년간 사건 처리가 지연되면서 재판 지연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되고 있다. 전체 사건 수가 늘어나면서 판사 1인당 맡은 사건 수는 늘어나고 있다. 2020년 기준 전체사건 수가 2010년 대비 7.4% 증가했다. 2019년 기준 법관 1인당 사건 수를 비교하면 민·형사 본안 사건 기준 독일의 4.8배, 일본의 약 2.8배, 프랑스의 약 2.2배에 이른다. 판사의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민·형사 본안 사건 처리 기간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전국 법원 민사합의사건 처리기간은 473.4일로 2017년(293.3일)에 비해 61.4% 증가했다. 형사 합의 사건과 형사 단독 사건도 40% 안팎의 증가폭을 보였다. 사건 처리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미제 사건 수도 증가 추세다. 지난해 전국 법원 민·형사 미제사건 수는 31만3269건으로 2017년(24만3524건)과 비교해 28.6% 늘었다. 지난해 집계한 장기 미제사건은 2만761건으로 2017년(8712건)에 비해 무려 2.38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사건 처리 지연에 미제 사건들이 누적되면서 개별 재판부가 관리 가능한 범위의 사건 수를 넘어선 상황이다. 재판 지연 현상이 시간이 지나도 개선되지 못한 이유다. 법원은 재판 지연의 원인으로 과거와 달리 복잡한 사건들이 늘어나면서 법관의 업무량이 증가한 것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민사합의 평균 기록 면수는 2014년 176.6쪽에서 2019년 377쪽으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또한 전체 평균 연령이 40대를 넘어서는 등 법관 고령화 현상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압수수색검증영장 증가, 회생·파산 사건 증가 등 사법제도의 변화로 인한 사건들도 늘어난 것도 재판 지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대법원은 재판 지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법관 증원을 꼽았다. 이를 위해 판사정원법 개정안 처리를 위해 노력해왔으나 지난달 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면서 자동 폐기됐다. 판사정원법 개정안은 법관 정원을 올해부터 향후 5년간 370명을 순차적으로 증원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올해 4월 기준 판사 정원은 3214명인데 3105명이 근무하고 있다. 판사정원법 개정안이 무산되면서 올해 가능한 법관 인원 수는 109명에 그칠 전망이다. 법원은 최근 판사를 한 해 평균 130~150명 가량 채용해왔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사법부의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 재판 지연 문제를 꼽았다. 이를 위해 법원장이 재판 업무를 직접 담당할 수 있도록 예규를 정비하고, 재판 제도 변화를 추진해왔다. 조 대법원장이 재판 지연에 따른 국민적 피해 해소를 기치로 내걸면서 각급 법원에서는 법원장이 직접 나서 장기미제 사건 심리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16일 서울고등법원 간담회에서 "사법부의 예산이 감소한 시점과 맞물려 장기 미제 사건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등 사법부의 예산 감소는 재판 지연의 주요한 원인"이라며 "법관의 수는 부족하고, 법조일원화로 인해 법관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제대로 일할 여건은 조성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법원은 21대에서 자동 폐기된 판사증원법을 다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지난달 30일 법원 내부망에 글을 올려 판사증원법 재추진 의지를 밝혔다. 천 처장은 "당면한 재판지연 문제의 근본적이고 지속가능한 해결을 위해서는 법관 증원 및 이를 통한 재판부 신설이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22대 국회 초기에 반드시 법관 증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증원이 무산되면서 일선 판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방안들도 내놓았다. 조 대법원장이 그동안 일선 법원들을 돌며 청취한 현장의 애로사항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올 하반기부터 스마트워크를 주 1회에서 주 2회로 늘리는 방안을 시범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재판부 운영 등을 고려해 내년에 확대 여부를 살펴보기로 했다. 또한 비선호 보직에 대한 직무성과급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격무 재판부에 국제화 연수 기회를 부여하고, 수당·경비 신설 등도 추진한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판사증원법은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라며 "22대 국회에서 최우선적으로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들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