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액션, 묵직한 감동…뮤지컬 '영웅'[리뷰]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까만 무대. 안중근(양준모 분)이 교수대 앞에 선다.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을 위해 한땀 한땀 지은 수의가 하얗게 빛난다. 교수대가 무대 위로 높이 오르고, 공중에서 밧줄이 내려온다. "내 어머니 내 가족들 가슴을 헤집는 이 시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오늘이 과거로 바뀌는 이 순간" 두려운 듯 읊조리는 안중근에게 마지막 질문이 던져진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는가." 잠시 적막이 흐른다. 그리고 양준모가 내지르는 '장부가'의 클라이막스가 울려퍼진다.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 / 하늘에 대고 맹세해본다 / 하늘이시여 도와주서소 /우리 꿈 이루도록."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그린 뮤지컬 '영웅'이 15주년을 맞아 10번째 시즌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영웅'은 2009년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초연된 후 꾸준히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누적 관객 100명을 돌파했다. 국내 창작 뮤지컬이 1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명성황후'에 이어 두 번째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작품에는 이유가 있다. 뮤지컬 '영웅'은 작품성으로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뛰어넘었다. 실존인물과 가상의 인물을 적절하게 활용한 입체적인 스토리, 압도적인 넘버와 배우들의 가창력, 화려한 안무 등이 조화를 이루며 오랜 기간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막이 오르면 황량한 자작나무 숲이다. 결의에 찬 안중근과 동지들이 네 번째 손가락을 잘라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을 써넣는다. 작품 중간중간 펼쳐지는 일본경찰과 독립군들의 추격신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검붉은 옷을 입은 일본경찰과 독립군들이 펼치는 화려한 액션신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작품 전반에 드러나는 안중근의 '두려움'은 관객들이 작품에 더욱 깊게 빠져들게 하는 요소다. 친구의 죽음, 어머니에 대한 걱정, 거사에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안중근의 인간적인 면을 조명한다. 친구 왕웨이의 만두, 목숨을 건 설희의 편지, 어머니의 격려, 장부의 맹세가 그를 앞으로 나가게 한다. 빼앗긴 조국을 향한 애끓은 마음으로 두려움 속에서도 독립을 위해 꼿꼿이 걸어가는 안중근의 노래들은 이 공연의 백미다. 하얼빈 역 거사를 앞두고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고백하는 '십자가 앞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기개를 잃지 않는 '장부가' 등 넘버들이 심금을 울린다.
명성황후의 마지막 궁녀로 독립운동을 돕는 가상인물 '설희'(솔지 분)의 서사도 가슴을 뜨겁게 한다. 게이샤로 위장해 아름다운 춤을 추며 이토 히로부미에게 다가간 설희는 이토가 하얼빈으로 떠난다는 정보를 안중근에게 전한다. 솔라의 화려한 춤과 호소력 짙은 노래가 관객들을 빠져들게 한다. 이토의 제안으로 하얼빈행 열차에 동행하게 된 그녀는 암살을 기대하지만 실패하고, 달리는 열차에서 몸을 던진다. "나 다시 태어나도 조선의 딸이기를 빌고 빌어 기도해."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의 넘버 '사랑하는 내아들, 도마'가 퍼져나가자 곳곳에서 객석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자신은 물론 슬하의 3남1녀를 모두 독립운동가로 키워낸 조마리아는 아들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은 후 '살려고 몸부림하는 상을 남기지 말고 의연히 목숨을 버리라'며 안중근의 선택을 지지했다. "천국에 네가 나를 앞서 가거든 / 못난 이 어미를 기다려 주렴 / 모자의 인연 짧고 가혹했으나 / 너는 영원한 내 아들 / 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 너를 안아봤으면 / 너를 지금 이 두 팔로 안고 싶구나." 안중근이 옥중에서 집필한 미완의 원고 '동양평화론'을 담은 넘버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나의 손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토를 쐈지만 / 내 아들들의 두 손은 기도하는 손으로 모아지길 바라오 / 그것이 동양평화요." 8월11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