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되고 서울 길찾기 안되는 이유, 정밀지도 아니어서?[구글 지도 반출 '대해부'①]
구글 "한국만 지도 길 찾기 안 되는 건 정부 탓"업계 "정밀 지도 없이도 충분, 일부러 길 찾기 기능 뺀 듯""반출 안 한 이스라엘엔 찍소리 못해…우리만 인질 삼아"
구글이 지난 2월18일 우리 정부에 1대 5000 축척의 수치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 허가를 신청했다. 2007년, 2016년에 이어 세 번째다. 정부가 허용할 경우 최초의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사례가 된다. 정부가 구글 요청에 응할지를 두고 IT 및 관광 관련 학계·업계뿐만 아니라 외교·국방 등 안보 관련 부처에서도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뉴시스는 구글이 우리 정부에 제출한 신청서를 입수했다. 구글이 밝힌 반출 신청 이유와 반출 시 나타날 기대효과가 타당성이 있는지 분석했다. [서울=뉴시스]윤정민 기자 = #멕시코인 A(29)씨는 지난 2022년 한국어를 배우기 입국했다가 인천국제공항에서 혼란을 겪었다. 서울 마포구 숙소로 이동하려는데 구글 지도 앱이 경로를 일직선으로 안내했고 도보 경로를 제공하지 않아 지하철역에 내린 후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국에서 일하면서 네이버 지도와 카카오맵을 이용하지만 이들 서비스는 모국어인 스페인어를 지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A씨의 친구들은 한국에 놀러 올 때 스페인어를 지원하는 구글 지도를 쓴다. 하지만 한국에선 구글 지도의 정보 안내가 여전히 불친절하다고 친구들은 토로한다. 구글 지도는 전 세계 월 이용자 수(MAU) 20억명을 자랑하는 글로벌 지도 1위 서비스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가장 기본인 자동차·도보·자전거 길 찾기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중교통 경로 안내도 종종 부정확하다. 한국관광공사 외래관광객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기준 길 찾기(80.4%)가 한국 여행 인프라 부문 중 만족도 조사에서 언어 소통(70.9%) 다음으로 가장 낮았다. 지난해 3월 발표한 방한 외래객 대상 여행 앱 이용 조사에서 구글 지도는 가장 불만족한 앱(30.2%)으로 꼽혔다. ◆"지도 개발력 없는 최저개발국에서도 잘 되는데?"
구글은 한국에서 자동차·도보 길 찾기를 제공하지 않는 이유를 우리 정부 탓으로 돌렸다. 구글이 지난 2월18일 국토지리정보원(국지원)에 제출한 국외반출 허가 신청서를 통해 한국에서 길 찾기 기능 이용이 불가능한 이유로 축척 1대 5000 전국 단위 국가기본도가 국내 규제로 해외 데이터센터 내비게이션 서버로의 전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구글은 1대 2만5000 지도로 국내 서비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관련 업계·학계는 구글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축척 1대 5000 국가기본도는 수십년간 수조원에 달하는 정부 예산을 들여 구축한 정보 자산이다. 매년 도로·건물 등 주요 지형지물이 바뀌어 항공사진 촬영, 지리 조사, 위치 편집 등 지도 수정에만 매년 500억~8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이러한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지닌 국가는 손에 꼽힌다. 그런데 지도 개발 여건이 열악한 아프리카 대부분 국가에서도 구글 지도 길 찾기 기능이 정상 작동한다. 예를 들어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 아덴 아디 국제공항에서 소말리 국립대까지는 물론 1170㎞ 떨어진 주케냐 한국 대사관까지의 경로도 상세히 알려준다. ◆"이스라엘도 1대 5000 지도 안 주는데?"…韓에만 불평하는 구글
구글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또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고정밀 지도를 구글에 제공하지 않는 중국, 이스라엘조차도 구글 지도에서 자동차·도보 길 찾기 기능이 작동하는 점이다. 특히 정부로부터 지도 데이터 자체를 사실상 얻기 어려운 북한의 평양에서도 자동차·도보 길 찾기 기능을 지원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지도 반출 제한 정책을 유지하는 국가 중 이스라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1997년 제정한 '국방수권법(NDAA)' 내 카일-빙거먼 수정조항을 통해 자국 기업이 이스라엘 영토에 대해 1대 2만5000 이상의 고해상도 위성사진을 수집하거나 공개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미국과의 외교 협상으로 관철시킨 규제다. 따라서 구글은 미국 기업으로서 이스라엘의 고정밀 데이터를 요구하지 않는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도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TE)'에서 이스라엘은 빠뜨리고 한국만을 '위치 기반 데이터 수출 제한국'으로 지목했다. ◆"美도 1대 2만5000 축척으로 지도 서비스하는데?"…10년 전 해명 못 한 구글
구글이 고정밀 지도 없이 서비스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논리는 2016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도마에 오른 바 있다. 당시 신용현 국민의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구글코리아 정책 총괄에게 "미국과 일본에서 구글이 서비스 중인 지도 축척은 1대 2만5000, 중국은 이보다 훨씬 낮은 1대 5만"이라며 "왜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높은 축적을 가진 1대 5000의 정밀 지도를 사용하느냐"고 물었다. 구글 정책 총괄은 "나라마다 지도 관련 법률과 축척이 어떻게 돼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않다"며 "본사 지도팀 얘기를 듣기로는 1대 2만5000 지도 가지고는 저희가 하고 있는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10년이 지난 지금도 구글은 외국에 정밀 지도 요구 없이도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한국에만 지도 반출과 길 찾기 기능을 연계시키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길 찾기, 지도 내 장소 서비스, 버스 출·도착 정보는 각 회사가 인력·기술력 등을 총동원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구글은 길 찾기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 게 지도 반출을 안 했기 때문으로 몰아가지만 1대 2만5000으로도 충분히 구축할 수 있다. 1대 5000 지도를 달라는 건 구글의 숨은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구글, '길 찾기' 인질로 잡고 정밀 지도 따려고 해"
구글은 왜 1대 5000 지도가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디지털 트윈 등 신사업 개발에 활용할 정밀 공간 데이터를 확보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 자회사 '웨이모'를 두고 있는데 웨이모 국내 사업 활성화를 위해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찾은 것 같다는 해석이다. 김원대 인하공전 교수(한국측량학회장)는 "구글이 요청한 1대 5000 지도는 도시계획, 사회기반시설(SOC) 건설 등에 활용되는 수준의 정밀도를 지닌다"며 "1대 2만5000 지도의 경우 높이에 대한 정확도나 세부 묘사의 내용이 부족한 점이 있지만 길 찾기 서비스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구글이 가진 영상 정보와 결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보다 더 자세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말했다. 구글은 실제로 지도 플랫폼을 '디지털 트윈'으로 진화시키고 있다. 2019년 증강현실(AR) 내비게이션 '라이브 뷰'를, 지난해에는 특정 도시의 지형·건물 정보를 3D로 시각화한 '이머시브 뷰'를 도입했다. 특히 '이머시브 뷰 포 루트'는 특정 경로의 날씨, 교통량 등을 반영한 이동 시뮬레이션 기능도 제공한다. 업계 관계자는 "1대 2만5000으로도 길 찾기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며 "길 찾기 기능은 사실상 '인질'이며 정밀 지도 반출을 통해 자율주행·모빌리티 플랫폼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