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문화일반

아름답지만 위험한 그녀…이영애가 빚어낸 '헤다 가블러'[객석에서]

등록 2025-05-18 10:00:00   최종수정 2025-05-26 10:22:11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이영애, 1993년 '짜장면' 이후 32년 만에 연극 무대 올라

라이브캠 활용해 이영애 클로즈업…감정 더 고조시켜

김정호·백지원·지현준 등 연기도 눈길…6월8일까지 공연

associate_pic
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 장면. (사진=LG아트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 하나 있긴 해요. 여기서 죽도록 지루해하는 거."

순진한 연구자 조지 테스만과 충동적으로 결혼한 헤다는 6개월간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에 권태를 느낀다.

조지는 "헤다는 제가 가져본 것 중에 최고예요"라며 들떠있지만, 정작 그는 단 한 번도 헤다를 온전히 소유하지 못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학문 외에는 관심이 없는 조지는 헤다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한다.

그런 헤다 앞에 과거 연인 에일레트가 재기해 나타난다. 하찮게 여겼던 동문 테아가 에일레트의 성공을 도왔다는 사실은 헤다에게 극심한 질투와 혼란을 안긴다.

헨리크 입센 원작 '헤다 가블러'는 사회적 제약과 억압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여성의 심리를 다룬 작품으로, '여성 햄릿'으로 불린다.

작품의 제목이자 극의 주인공이도 한 헤다는 복잡한 인물이다.

모두에게 선망 받지만 아름다운 외면과 달리 내면은 불안과 욕망, 파괴적인 본성으로 뒤엉켜있다.

그런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가 이영애라는 사실만으로도 캐릭터는 설득력을 갖는다.

이영애는 품위 있는 아름다움으로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 드라마 '구경이' 등에서 보여준 냉소적이거나 오만한 얼굴로 헤다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associate_pic
연극 '헤다 가블러' 무대 모습. (사진=LG아트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온통 무채색인 헤다의 집은 하나의 상자 같기도, 감옥 같기도 하다. 화려한 색깔의 풍선 꾸러미는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헤다처럼 한켠에 묶여있다.

인물들은 무대에서 퇴장하지 않고 줄곧 헤다를 지켜본다. 심지어 죽은 자조차도 사라지지 않고 무대에 남아 헤다를 응시한다.

영상 활용이 연출의 백미다. 공연 도중 베르트 역의 조어진이 라이브캠을 들고 헤다를 클로즈업해 거대한 회색벽에 비춘다.  

주로 에일레트와 과거 이야기를 나누거나 에일레트의 원고를 태우는 등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 라이브캠이 등장한다. 영상 매체에서 주로 활동해온 이영애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보다 강렬함을 선사한다.

개막 전부터 스포트라이트는 1993년 '짜장면' 이후 32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른 이영애에게 향했지만, 그를 단단하게 받치는 베테랑 배우들도 눈여겨 볼만 하다.

헤다의 남편 조지를 연기하는 김정호를 비롯해 테아 역의 백지원, 브라크 역의 지현준 등은 탄탄한 연기로 극의 밀도를 끌어 올린다.

후반으로 갈수록 헤다는 파괴적인 본능을 드러내며 비극을 향해 내달린다.

브라크는 "사람은 말야, 보통 끝까지 몰리면 견뎌내면서 살아갈 방법을 찾기 마련이거든"이라고 자신했지만, 헤다는 달랐다.

"한 사람의 운명을 조종하고 싶어"라며 차갑게 웃던 헤다는 브라크가 자신의 약점을 쥐고 통제하려 들자 스스로의 운명에 마침표를 찍는다. 사실상 그가 통제할 수 있던 건 그것 뿐이었을 지도 모른다.

"해방감이 느껴져요. 이 세상에서 자기 의지로 자유롭고 용감한 일을 할 수 있는 해방감. 아름답고 빛나는 일이에요."

헤다의 선택은 파멸이었을까, 해방이었을까.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시그니처홀에서 다음 달 8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