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전쟁, 입증 싸움…전세사기 수사는 '첩첩산중'[서민 울리는 민생범죄⑧]
기억의 왜곡, 단서의 실종…수사가 어려운 이유자료는 제각각, 시스템은 단절…수사 환경이 '발목'"개인 재산 아닌, 사회 신뢰 무너뜨리는 범죄"
[서민 울리는 민생범죄] -고물가와 경기 침체가 겹치며 서민들의 생활고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민생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서민의 삶에 고통을 주고 있다. 대출 규제 강화로 금융 소외계층의 자금난이 극심해지면서 불법 사금융 피해가 급증하고 서민의 주거안전을 위협하는 전세사기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깊숙이 파고든 보이스피싱은 최근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욱 진화해 피해자들은 더욱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뉴시스는 서민다중피해범죄 피해 실태와 대안을 짚어보는 시리즈를 기획했다. 글 싣는 순서 ▲불법사금융 덫(1부) ▲전세사기 늪(2부) ▲보이스피싱 지옥(3부) ▲마약 디스토피아(4부) ▲민생범죄 전문가 진단(5부)〈편집자 주〉 [서울=뉴시스]이다솜 기자 = [서민 울리는 민생범죄] 전세사기 늪(4부) 전세사기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단순한 민사 분쟁이 아닌 수많은 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회 문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정작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일선 경찰들은 어렵고 지난한 수사 과정으로 인해 막막함을 토로하고 있다. "전세사기의 경우 완전히 새로운 범죄유형이라기보다는 기존 사기 수법에 부동산 시장의 상황과 맞물려 심화된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소위 '깡통전세'를 운영하던 임대인들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서 사건이 접수되는 경우가 많죠.”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전세사기 전담 수사를 맡고 있는 경찰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문제는 명백한 '사기'의 의도를 입증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는 형사처벌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일반적인 사기 사건과 달리 전세사기 피의자들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인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로 본인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어 고의 입증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임대인 기망의도 입증이 핵심…자료 확보는 '난항' 사기죄는 형법 제347조에 따라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착오를 일으켜 재물이나 이익을 취득하려는 '기망행위'가 있어야 성립할 수 있는 범죄다. 따라서 사람에 대한 기망행위를 수반하지 않으면 사기죄로 처벌하기 어려워진다. 때문에 전세사기를 형법상 처벌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상대방을 속일 의도가 있었다는 점, 즉 편취의 고의를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계약 시점에 어떤 설명을 들었고, 어떤 점을 인지하지 못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탓에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할 여지가 생긴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계약 체결 당시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 어떤 점을 알지 못했는지가 핵심인데 수년이 지난 시점에서 기억이 희미해져 있어 진술 신빙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결국 고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말이 아닌 각종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피의자의 신용정보, 체납정보 등 수사를 위한 자료를 확보하려면 기관마다 각각 정보를 요청해야 한다. 이 과정은 '시간'과의 싸움이자 '절차'와의 싸움이다. 일선 경찰들은 이 같은 시스템이 수사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 경찰 관계자는 "전세사기 수사는 다른 경제범죄보다 훨씬 많은 자료가 필요한데 금융정보, 계약서류, 통장 거래내역 등 하나하나 수사기관이 직접 일일이 요청해야 해 굉장히 비효율적"이라며 "기관 간 시스템이 연계되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는 '원스톱 자료 확인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범행을 부인하는 피의자를 대상으로 범행을 입증하기 위해 자료를 얻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라며 "특히 전세사기 고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자료를 확인하고 종합해서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은행과 건축주만 배 불려…"끝까지 책임 묻겠다" 수법의 교묘함도 전세사기 수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범죄와 투자의 영역 구분이 모호한 경우가 많고 전세 계약 당시 부동산 중개인, 임대인, 관리인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사기 공모 여부를 밝혀내는 것도 난제다. 경찰 관계자는 "강력범죄 피해자의 경우 결과 자체가 다친 정도나 피해 규모를 살펴보면 행위 결과가 선명히 드러나지만 전세사기는 그렇지 않다"며 "부동산 전문가나 법률 전문가를 데려와도 단순 자료만 보고 사기인지 아닌지를 명확하게 판단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일선 경찰들은 오늘도 하루에 수십 건씩 접수되는 관련 사건을 쉴 새 없이 검토하며 사기범을 추적하고 있다. 전세사기는 한 개인의 재산 피해로 끝나지 않는다. 무너진 신뢰, 불안정한 주거, 법과 정의에 대한 회의감까지 남긴다. 경찰 관계자는 "전세사기범들은 자신을 투자자라 생각하지만, 이는 투자로 포장된 범죄"라며 "계약을 믿고 따랐던 임차인의 피해를 외면한 채 은행과 건축주만 배 불리는 구조를 만든 이들에게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단호히 경고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