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제임스 건의 DC 이종교배 '슈퍼맨'
영화 '슈퍼맨' 리뷰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슈퍼맨'(7월9일 공개)은 하늘에 있던 슈퍼맨을 기어코 땅으로 끌어내린다. 이 작품 오프닝 시퀀스는 어디에선가 전투를 벌이던 슈퍼맨이 치명상을 입은 채 공중에서 지상으로 처박히는 모습. 이건 일종의 선언이다. '슈퍼맨은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DC스튜디오 회장이자 CEO이면서 이 영화 연출과 각본을 맡은 제임스 건 감독은 DC유니버스 재설계라는 중책을 맡은 뒤 이 세계관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슈퍼맨 기강부터 다잡는다. 원래 슈퍼맨은 신체와 정신 모든 면에서 완전무결에 가까운 신적인 존재. 하지만 '슈퍼맨'은 슈퍼맨을 심신 모두에서 불완전한 인간적 존재로 격하한다. 그리고 DC 특유의 음울함마저 건 감독 특유의 유머로 대체하려 한다. 어쩌면 건 감독은 DC유니버스를 다시 세우려는 게 아니라 DC 슈퍼히어로를 빌려 '건 유니버스'를 새로 창조하려는 것만 같다. '슈퍼맨'은 슈퍼맨과 숙적 렉스 루터의 맞대결을 담고 있지만 이건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니다. 스토리 세부 사항보다 중요한 것은 건 감독이 재구성한 DC유니버스 설계도. 이 설계의 모티브는 역시 그의 대표작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다. 각기 다른 상처를 가진 유별난 이방인들이 엉겹결에 한 팀이 돼 기상천외하면서도 유쾌한 액션으로 적을 무찌르며 교감하게 된다는 바로 그 얘기가 '슈퍼맨'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마블에선 슈퍼히어로로 불릴 만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이 세계관에선 메타휴먼이라는 별칭으로 혹은 외계인이라는 멸칭으로 타자화돼 있고 그럼에도 이들이 슈퍼맨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개성과 능력을 한 데 모아 평화를 지켜낸다는 얼개는 '가오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슈퍼맨을 제외하면 비호감에 가까운 캐릭터들이 전면에 나선다는 점도 건 감독의 전작을 떠올리게 한다.
'슈퍼맨'은 캐릭터 설정과 이야기 흐름은 물론이고 저류에 흐르는 감성 역시 제임스 건 식(式)이다. '가오갤' 3부작 테마 중 하나는 정체성 찾기였다. 이 시리즈는 스타로드·가모라·로켓 등 주요 인물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그리고 상실·트라우마·극복을 차례로 밟아가며 어쩌면 슈퍼히어로라는 말에 딱 들어맞지 않는 단어인 인간미를 뽑아내는 데 주력했다. 건 감독은 잭 스나이더 감독이 배우 헨리 카빌과 함께 만들었던 유아독존 슈퍼맨을 가차 없이 폐기하고 나의 기원과 존재 목적을 고민하는 슈퍼맨, 내 행동의 대가를 고민하는 슈퍼맨, 앞으로 삶의 방향을 가늠해보는 슈퍼맨을 보여준다. 역시나 조각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카빌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순해보이는 데이비드 코런스웻에게 슈퍼맨을 준 것도 '슈퍼맨'이 더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방식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최고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주긴 해도 이렇다 할 특색 없이 '가오갤' 시리즈에서 본 것만 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액션 시퀀스라든지, 건 감독 영화의 핵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유머가 이번에도 빠지지 않은 것까지 확인하고 나면 일부 관객은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릴 것이다. DC코믹스 골수 팬은 캐릭터의 위엄도, 이야기의 진지함도 사라진 DC유니버스는 DC의 것이 아니라고 지적할지도 모른다. 그간 건 감독 영화를 지지해온 팬은 '가오갤' 시리즈와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이어 이번에도 또 한 번 비슷한 영화를 만드는 데 그쳤다고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마블이나 DC 그런 건 모르겠고, 제임스 건이 누군지도 알고 싶지 않다는 관객에게 '슈퍼맨'은 129분이 그리 길지 않게 느껴지는 영화일 것이다. 그러나 슈퍼히어로 장르를 성실히 따라온 관객에게 '슈퍼맨'은 어쩌면 어느 쪽에서도 받아주기 어려운 이종교배일 수 있다.
'슈퍼맨'은 캐릭터를 인간 가까이에 두는 시도에 더해 이야기도 현실에 가깝게 잡아당긴다. 이 장르 거의 모든 작품은 장르 자체 재미에 집중하거나 메시지를 담더라도 원론적이거나 추상적인 수준에 그쳐왔다. 그러나 '슈퍼맨'은 지금 바로 현재 벌어지는 일들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데 공을 들인다. 이 영화는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벌이는 학살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을 슈퍼맨이 위기에 처하는 원인 중 하나로 가져와 러닝 타임 내내 물고 늘어진다. 트럼프가 밀어붙이는 적대적 이민자 정책 역시 타겟 중 하나다. 훈련 받은 원숭이들이 악플을 생산해 여론을 왜곡하는 모습으로 전 세계 거의 모든 분야에서 벌어지는 극단적 대립의 출발점을 짚어내기도 한다. '슈퍼맨'은 이 현실 감각을 DC유니버스의 새 출발에 이물감 없이 녹여내는 수준급 각본을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이 세계관에서 펼쳐질 풍자에 기대감을 갖게 한다. 건 감독이 DC스튜디오 회장이자 CEO로 있는 한 앞으로 DC유니버스 미래는 '슈퍼맨'이라는 청사진을 따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계관의 또 다른 핵심 캐릭터인 배트맨과 원더우먼, 플래쉬 등도 건 감독 체제 안에서 슈퍼맨 못지 않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 그리고 이 과정을 관객에게 설득시킬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은 앞으로 DC유니버스 영화를 보는 재미가 될 것이다. 그린랜턴·미스터테리픽·호크걸로 이뤄진 저스티스갱이 어떤 경로로 저스티스리그로 발전해 나갈지 또 렉스 루터가 열어놓은 포켓 유니버스라는 설정이 DC유니버스 내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도 관전 포인트다. 마지막 시퀀스에 등장하는 새로운 캐릭터의 미래 역시 궁금해진다. 그리고 결국 최종 물음은 이게 될 수밖에 없다. 건 감독의 DC유니버스 리부트는 성공해서 마블의 대항마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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