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코트에서 발견한 '그림자 노동'

등록 2016-11-08 11:00:00   최종수정 2016-12-28 17: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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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국내 푸드코트는 대부분 손님이 음식을 받아와 먹은 뒤 식기반납 코너로 직접 갖고 가 반납하도록 돼 있다. 사진은 경기도 한 쇼핑몰 푸드코트 식기 반납대.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1. 지난달 29일 경기 하남시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서울 5층 푸드코트. 음식을 각 코너에서 받아와 먹은 손님들이 그릇과 수저를 쟁반에 가지런히 정돈하더니 어디론가 향한다. 식기 반납대다. 손님들은 이곳에서 가져온 그릇을 수레에 놓는다.

 #2, 지난 5월 마카오 베네시안 리조트. 음식을 각 코너에서 받아와 먹은 손님들이 그릇과 수저를 자리에 놓고 나간다. 아무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다. 한국인 가족이 그릇을 담은 쟁반을 들고 일어나서 두리번거리니 오히려 그 모습을 이상하게 본다.

 ◇외국에선 어림없는 '셀프서비스'

 국내외 복합리조트나 쇼핑몰에서 흔히 접하는 풍경이다.

 국내 푸드코트는 거의 대부분 손님이 음식을 받아와 먹은 뒤 식기반납 코너로 직접 갖고 가 반납해야 한다. 일부 푸드코트는 손님이 일일이 수저와 컵을 분리까지 하도록 돼 있다. 만일 치우지 않고 일어나면 몰지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직원이 한침 뒤에 와서 치우겠지만 그날 하루 귀가 가려울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외국 푸드코트는 거의 대부분 정반대다. 손님은 음식을 먹은 뒤 그릇을 그냥 둔 채 가면 된다. 그릇을 치우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본다. 치우려고 그릇을 들고 일어나면 직원이 달려와 자기 나라 말로 화를 내며 빼앗아가는 경우도 있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음식값에 그릇을 치우는 노동자 임금을 포함했다고 생각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다. 만일 손님이 그릇을 직접 치운다면 노동자가 임금을 받을 이유가 없어진다. 그런 일이 쌓이다 보면 그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

 주로 외식 대기업이 운영하는 푸드코트는 일반적인 식당, 그러니까 음식을 가져다 주고 다 먹고 그냥 나가면 치워주는 식당과 비교해 음식 가격이 전혀 저렴하지 않다. 그런데도 음식을 받아오고 먹고 나면 그릇까지 치워줘야 한다. 결국 인건비를 절약한 만큼 해당 기업이 챙기는 이윤이 커진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도 고객은 음식만 받아오고 그릇은 직원이 치워주는 서비스를 시행하는 푸드코트가 없지는 않았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월드몰 지하 1층 아쿠아리움 앞에 자리한 '푸드 왕궁'이 그런 곳이었다. 2014년 말 오픈한 이 푸드코트는 당시 획기적인 서비스로 고객의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올해 5월부터 다른 업체와 마찬가지로 고객이 직접 치우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롯데월드몰 내 아쿠아리움이 한동안 영업 정지를 당하면서 매출 격감을 겪게 되면서 받은 충격 탓에 인건비 절감 필요에 따라서다. 서비스 질을 떨어뜨렸지만 음식 가격은 낮추지 않았다. 이는 곧 푸드코트의 고객 식기 반납 제도가 기업 이윤을 높여준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돈 내고 그릇까지 치워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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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국내와 다르게 외국 푸드코트는 손님은 음식을 먹은 뒤 그릇을 그냥 둔 채 가면 된다. 그릇을 치우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본다. 사진은 마카오 베네시안 리조트의 푸드코트.  [email protected]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격월간지 '하버드 매거진' 크레이그 램버트 에디터가 쓴 '그림자 노동의 역습'이 그런 문제점을 대놓고 지적한다. 저자는 오스트리아 사회사상가 이반 일리치의 '그림자 노동'이라는 개념을 차용해 현대인이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 때문에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를 신랄하게 지적한다.  

 세상 곳곳이 '셀프 서비스' 체제로 빠르게 변하면서 손님은 아무런 댓가 없이 사업주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손님이 자발적으로 노동을 기여하면서 필요 없게 된 잉여 노동력은 결국 해고되고 일자리 상실로 이어진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정보 혁명, 자동화까지 더해져 그림자 노동은 곳곳에서 생겨나고 그만큼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최근 국내 일부 패스트푸드 매장은 기존 주문대에서 직원에게 음식을 주문하고 계산하는 방식을 대신해 키오스크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계산까지 마치는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음식을 주문한 뒤, 받아오고 치우며 분리수거까지 해주던 데 더해 주문에 계산까지 직접 해야하는 처지가 된 셈이다.

 물론 업체 측은 "고객이 직접 주문하고 계산하면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어 더 편리하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앞으로 키오스크 앞에서 제대로 할 줄 몰라 헤매는 고객이 생긴다면 주문을 하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불편이 가중할 수도 있다. 공항 자동발권 서비스가 시작 한 지 수년이 됐지만 모든 항공기 탑승객이 능숙하게 이를 조작하는 것이 아닌 것이 방증한다.

 결국 램버트 에디터의 주장처럼 기업은 편리함이라는 그럴듯한 당근을 내세워 소비자에게 보이지 않는 노동을 강요하면서 그 뒤로 이윤 극대화를 꾀하는 셈이다. 이는 프랑스 파리의 유명 패스트푸드점을 찾은 고객이 분리수거조차 실시하지 않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이들 업체가 환경의 소중함을 몰라서 분리수거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만일 고객이 분리 수거를 척척해준다면 그만큼 저임금 일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해당 업체 측 설명이다.

 그렇다면 국내 푸드코트 운영업체들은 고객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직원의 식기 수거 서비스를 시작할 가능성은 있을까.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IFC몰, 영등포동 타임스퀘어 등 국내 대형 쇼핑몰에서 푸드코트를 다수 운영하는 아워홈 관계자는 "푸드코트 개념이 고객이 직접 음식을 고르고 받아오고 식기를 반납하는 개념으로 만든 것이어서 문제는 없다고 본다"면서 "다만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개선점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항공대 경영학과 이상학 교수는 "국내 모든 서비스는 고객 편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된다"면서 "아직 국내 소비자가 기존 푸드코트 등의 운영 방식에 길들여져 있어 불편함을 알면서도 감내하는 것이지만 그런 불편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면 개선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식저널리스트 제이 김씨는 "푸드코트 이용객에게 직원이 음식을 가져다 주고 식기까지 수거하는 서비스를 제공받을 것인지, 음식은 직접 가져 가고 식기는 직원이 수거하는 서비스를 제공받을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고객이 직접할 것인지를 선택하게 하고 그것에 따라 음식 가격을 차등화하는 방향으로 개선점을 모색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본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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