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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넌 누구야?"…'문라이트'

등록 2017-02-28 09:13:22   최종수정 2017-11-15 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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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 영화
【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문라이트'(감독 배리 젱킨스)를 소수자의 이야기로 한정하면, 이 작품에 큰 의미를 둘 수 없다. 우리는 대부분 다수다. 그렇다면 흑인인 데다가 동성애자이고, 그래서 학교에서는 괴롭힘당하고,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며 아빠는 없고 엄마는 마약중독자인 '샤이론'은 그저 안타까운, 불쌍한, 지독하게 불운한 존재로 머문다.

 다시 말해 우리는 주인공 샤이론을 이해하지 못한 채 결국 동정(同情)하는 데 그칠지 모른다. 동정과 감동은 같지 않다. 중요한 건 배리 젱킨스 감독이 샤이론을 통해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다.

 어린 샤이론(알렉스 R 히버트·애쉬턴 샌더스·트레반테 로데스)의 삶은 고달프다. 그는 갈 곳이 없다. 학교에는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이 있다. 집에는 마약에 중독된 엄마가 있다. 어딜 가나 고통스럽다. 그러던 어느 날, 후안(마허샬라 알리)을 알게 된다.

 후안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 샤이론을 아껴준다. 그에게 밥을 주고 돈도 준다. 후안의 여자친구 테레사(저넬 모네이)도 후안만큼 따뜻하다. 샤이론은 두 사람과 함께 할 때 평안을 느낀다. 하지만 샤이론은 엄마에게 마약을 파는 사람이 후안이라는 걸 알게 된다.

 미국 흑인 사회를, 마이애미를, 동성애를, 마약을 알면 '문라이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걸 경험할 수는 없고, 영화도 그걸 원하지 않는다. 젱킨스 감독은 대신 샤이론의 첫 등장을 통해 영화의 방향을 암시한다.

 샤이론은 도망치는 중이다. 왜소한 체구의 이 아이는 필사적으로 달리다가 문이 열린 어느 집으로 들어가 숨는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이 떠나기를 기다리는데, 한 남자가 벽을 뜯고 들어온다. 마약상 '후안'. 잔뜩 겁먹은 초식동물 같은 얼굴을 한 샤이론에게 그가 묻는다. "너 누구야?"(Who is you, man?)

 '문라이트'는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을 담는다. 고민과 고뇌 없이 저절로 형성되는 정체성은 없다. '나'는 자기 내부와 싸워야 하고 사회가 규정하는 기준들에 대항해야 한다. 그러니까 샤이론에게는 투쟁해야 할 대상이 너무 많다.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아 자칫하다가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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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 영화
이 영화를 구성하는 세 개 장의 제목이 각각 사람들이 샤이론을 부르는 이름인 건 필연적이다. '리틀' '샤이론' '블랙', 세 이름 모두 스스로 지은 게 아니다. 후안은 말했다. "언젠가는 네가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그 결정을 남에게 맡기지 말거라."

 후안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샤이론의 20년, 이것은 일종의 고군분투기다. '보이후드'가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방식으로 세월을 담아낸다면, '문라이트'는 순간의 감각으로 샤이론의 시간들을 그린다.

 처음 수영했던 바다, 첫 키스 순간 움켜쥐었던 모래, 잊고 지냈던 친구의 전화 목소리, 어둠 속 파도소리와 달빛. 후안의 말처럼 결정은 내가 해야 한다. 그 결정이 주어진 사건을 통해 저절로 도출될 리 없다. 반영하고 성찰한 후의 내 모습이 곧 결정이 될 것이다. 젱킨스 감독이 샤이론이 받는 고통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 그에게 가해진 아픔 전후 '생(生)의 감각'을 우선하는 건 마음속에 남아 삶을 반복해서 흔드는 게 결국 찰나의 감정들이라서다.

 사건이 생략된 곳을 채우는 건 눈빛과 뒷모습이다. 차마 하지 못한 말이고 끝내 내뱉어진 말이다. 음악과 빛이다. 샤이론은 도망치던 초식동물에서 잡아먹으려는 육식동물로 변모하지만, 눈빛은 그대로다. 그의 눈은 여전히 슬프다. 어둠이 내려앉은 바다, 달빛에 푸르러진 샤이론은 때로 당당하지만 자주 고달프고 애달프다.

  "나는 너무 많이 울어서 때로는 내가 눈물이 될 것 같아"라고 말할 때, "나를 만져준 건 너밖에 없었어"라고 고백할 때, 샤이론의 마음 속에서 쉴 새 없이 휘몰하치던 지난한 고민의 시간이 특별한 첨언 없이도 와닿을 수 있다. '문라이트'는 그렇게 시(詩)가 된다.

 이 시를 완성하는 건 세 명의 배우, 알렉스 R 히버트·애쉬턴 샌더스·트레반테 로데스다. 이들은 샤이론을 통해 한 사람이 된다. 이건 마법이다. 그들은 각자 다르게 생겼지만, 모두 샤이론의 눈과 눈물을 똑같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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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 영화
관객이 그 눈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건 그들이 샤이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샤이론'으로서 마허샬라 알리와 나오미 해리스의 존재는 아름답다. 그들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연기하는데, 그건 아마도 배우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이다. 특히 알리에게 쏟아진 찬사는 합당하다.

 '문라이트'는 한 소년의 성장 과정을 그리지만, 성장을 담은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방황의 기록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샤이론에게 가해지는 고통은 강해지기만 한다. 희미하던 성 정체성은 또렷해질수록 그를 짓누르고, 엄마는 점점 더 견디기 힘든 존재가 된다. 믿었던 친구는 배신하고, 아마도 샤이론이 일련의 사건들을 지나며 내린 가장 중요했던 결정 또한 다른 방식으로 그에게 중압감을 줄 것이다. 이 모든 게 그의 몫이다. 이젠 그 짐을 다 짊어지고 후안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너 누구야?' 샤이론이 여전히 눈물 흘릴 수밖에 없는 건 쉬운 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서다.

 소년 샤이론은 후안에게 묻는다. "엄마가 약을 하나요?" 후안은 "그렇다"고 말한다. 샤이론이 또 묻는다. "아저씨가 엄마한테 약을 파나요?" 후안은 "그렇다"고 답한다. 후안은 샤이론에게 아버지였다. 샤이론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발견한 후안은 스스로 '유사 아버지'가 돼 그를 돌봤다. 그러나 후안은 동시에 마약상이었고, 후안의 존재가 샤이론이 받는 고통의 일부분이었다. 샤이론을 보내고 후안은 홀로 흐느낀다. 그 역시 "너 누구야?"라는 말에 관한 답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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