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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중앙은행, 금융위기 소방수에서 동네북 신세

등록 2017-03-0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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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AP/뉴시스】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18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캘리포니아 커먼웰스 클럽' 주최 강연에서 금리를 너무 늦게 올리면 "지나친 물가 상승이나 금융시장의 불안정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점진적인 금리 인상 기조를 재차 강조했다.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지난 2008년 9월 미국에서 발화해 전 세계로 확산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각 국의 중앙은행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부터 프랑스, 터키에 이르기까지 분노한 민심에 올라탄 정치인들이 잇달아 중앙은행 때리기에 나서면서 통화정책의 독립성이 위협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20일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미국이 이런 반(反) 중앙은행 기류가 강한 대표적 국가다. 집권 공화당은 연준을 감시받지 않는 권력이라고 비판해왔다. 연준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양적완화를 통해 천문학적 돈을 시중에 풀고, 베어스턴스나 AIG 등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도 국민적 합의 과정을 무시해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을 주도해온 대표적 인물이 하원 금융위원회 의장인 잽 헨살링 공화당 의원(텍사스)이다. 그는 중앙 은행가들이 정책 결정의 재량권을 더 많이 부여받으면 결정 과정은 더 불투명해질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또 중앙은행가들도 그 결과에 책임을 덜 지려 할 것이라며 법으로 재량권을 억지해야 한다고 비판해왔다.

 헨살링 등 공화당 의원들은 연방준비제도(Fed)의 현행 기준금리 결정 방식의 대안으로 이른바 규칙에 입각한(rule-based) 금리 결정을 주장해왔다. 기준금리를 연준의 재량에 맡길 것이 아니라 객관적 기준에 따라 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실업률이나 인플레이션 등 연준이 중시하는 핵심 지표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연존의 기준금리 결정권한에 딴죽을 거는 것은 재닛 옐런 의장을 정면 겨냥한 것이다. 미국경제의 디플레이션(물가하락) 압력도 대부분 해소되고, 고용도 완전고용수준인데 금리정상화 엔진이 털털거리는 것은 결국 임명권자인 오바마 행정부를 의식한 것이 아니었냐는 뜻이다. 미국 경제는 지난 2009년 6월을 바닥으로 이달까지 92개월 동안 확장국면을 이어왔다.

 물론 미국 정치권의 연준 불신은 여야를 막론하고 그 뿌리가 깊다. 오바마 전 행정부도 지난 2008년 대선 승리 이후 앨런 그린스펀이 사회 철학자이자 저명 작가인 '아인 란드'식의 자유주의에 경도돼 월스트리트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며 맹공을 퍼부어왔다. 미 공화당은 여기에 트럼프의 지난 대선 승리의 원동력인  ‘앵그리 화이트’ 계층의 분노를 동력으로 삼았다.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이끄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속사정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오는 9월로 다가온 독일 총선이 주요 변수다. 전통적으로 긴축 기류가 강한 독일 정치권은 ECB를 상대로 긴축의 고삐를 바짝 조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양적완화에 비판적인 독일 유권자들의 표심을 의식한 데 따른 것이다. 1차 대전 패배 후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살인적 물가고를 경험한 독일은 국민들은 물론 분데스방크도 통화 확장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강하다. 

 중앙은행계의 록스타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는 마이클 카니 영국중앙은행 총재도 지난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 여파를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은 데 이어, 올들어서도 성장률 전망이 빗나가며 뭇매를 맞고 있다. 의원들은 영국중앙은행의 경제성장률 예측 모델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중앙은행가들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만 해도 흔히 중세 수도원의 사제에 비유돼 왔다. 수도원에 머물며 성경(거시 지표)을 탐독하지만 현실 개입은 자제해온 특성을 빗댄 것이다. 하지만 리먼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월가 투자은행들의 파생금융상품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초토화시키며 1929년 미국에서 발발한 대공황의 망령이 다시 떠돌자 각국에서 중앙은행가들이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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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AP/뉴시스】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0%로 동결하고 양적완화(QE) 시행 기한을 연장하기로 했다. 8일(현지시간) ECB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본부에서 정례 통화정책회의를 열어 애초 내년 3월까지로 설정한 국채매입 등 QE 시행 기한을 예상보다 긴 내년 12월까지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 이후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이들은 대공황에 비유되는 위기 국면에서 맹활약하며 경제권력을 움켜쥐었다. 흔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연금술사에 비유됐다. 주요 중앙은행들은 물가안정과 더불어 금융안정이라는 책무를 부여받으며 현실개입의 영역도 더 넓혔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각국의 경제 콘트롤 타워인 재무부를 제치고 우뚝 선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류는 다시 달라지고 있다. 중앙은행 수난시대는 터키, 인도 등 개도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터키에서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최근 중앙 은행가들의 충성심(loyalty)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작년 7월 발발한 군부 쿠데타를 진압한 뒤 대통령 중심제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절대 반지'를 향한 욕망을 거리낌없이 표출해온 그가 터키 중앙은행이 인플레를 잡기 위해 올 들어 기준금리를 올리자 서민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충성심'을 운운하며 이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각국의 중앙은행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기준금리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기준금리는 흔히 경제 전반에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주는 ‘햇볕’에 비유된다. 가계의 소비, 기업의 투자, 정부의 지출 모두 금리 인상이나 동결, 인하의 여파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은 정부 성적표로도 통한다. 

 각국에서 포퓰리즘의 파고가 높은 것도 중앙은행을 향한 정치적 압력이 증대하는 또 다른 배경이다. 기성 조직(establishment)을 향한 대중의 반감에 기댄 정치인들이 중앙은행가들을 뒤흔들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중앙은행이 부의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를 정부가 원할 수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영국런던정치경제대 명예교수로 거시경제 부문의 세계적 석학이자 영국중앙은행 금통위원을 지낸 찰스 굿하트는 “중앙은행은 선거를 거친 입법부와 대결을 하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며 “(중앙은행의)독립이 유지될지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단기금리를 정하는 구세계로 회귀하는 것도 가능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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