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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정의 寫讌] 여성 사진기자가 만난 서울의 무슬림 '2017 라마단 이야기'

등록 2017-06-19 05: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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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에서 무슬림들이 이프타르를 위해 줄서 기다리고 있다.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무슬림'이 하나둘 사원으로 모여듭니다. 대부분이 외국인이고 한국인도 몇몇 보입니다. 서울에서 유일한 이슬람 사원인 서울중앙성원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산꼭대기에 높다랗게 지어져 있습니다. 예배당 입구에서는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입니다. 무슬림은 신이 있는 하늘에 좀 더 가까이 있기 위해 사원을 최대한 하늘 가까이 짓습니다.

 요즘은 이슬람교의 ‘라마단(Ramadan)’ 기간입니다. 아랍력(曆)과 이슬람력(曆)의 아홉 번째 달로 올해는 지난달 27일부터 오는 26일까지입니다.
 
 라마단은 우리 말로 해석하면 '엄청난 더위'인데 무슬림은 이를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가 절대 전능의 신(神) ‘알라’로부터 꾸란(이슬람교 경전)의 계시를 받은 신성한 달로 기립니다.
 
 무슬림은 이 한 달간 매일 일출 때부터 일몰 때까지 금식과 금욕을 해야 합니다.

 이 기간 금식은 신앙 고백·기도·희사(자선 기부)·성지 순례 등과 더불어 무슬림의 5대 의무 중 하나입니다.
 
 먹는 것은 물론 물 한 모금도 마시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침도 삼키지 않아야 합니다. 담배도 피우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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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이슬람 서울중앙성원 예배당에서 마그리브를 하는 무슬림. [email protected]
더운 날 물을 안 마시니 탈진을 우려해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낮에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낮에 담배를 피우거나 침을 삼키는 정도는 하는 무슬림도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파즈르(Fajr.새벽/아침), 주흐르(Zuhr.점심), 아스르(Asr.오후), 마그리브(Maghrib.저녁), 이샤(Isha.밤) 등 하루 다섯 차례 기도합니다. 보통 마그리브 전후인 일몰 뒤에 그날의 첫 식사를 하는데 이를 '이프타르(Iftar)'라고 통칭합니다.
 
 예배 전 대추야자와 과일, 우유 등으로 요기를 하고, 마그리브를 마친 뒤 식사를 합니다. 새벽 시간, 해가 뜨기 전 단식에 앞서 하는 식사는 ‘수후르(Suhur)’라고 부릅니다.
 
 임신 중이거나 아이를 기르는 여성, 어린이와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 여행자 등은 단식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훗날 단식이 가능해질 때 기간을 채워 단식하면 됩니다.

 점점 많은 무슬림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따가운 시선이 커다란 카메라 두 대를 든 기자에게 그대로 꽂힙니다.
 
 ‘여성이라 그런 것일까’라고 지레짐작해 봅니다. 기자는 취재에 앞서 한국이슬람교의 허가를 받고 관계자들에게 주의할 점을 안내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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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에서 아이를 업고 여성 식사장소로 향하는 무슬림.  [email protected]
 
 "여성 기자이기 때문에 남성 무슬림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촬영해야 한다" "이들과 대화를 피해야 한다, 이왕이면 남성 무슬림과 대화할 남성 기자가 동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등이었습니다.
 
 남녀가 철저히 내외하도록 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른 것입니다. 특히 지금 같은 라마단 기간에는 여성과 접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단 멀리 떨어져 취재하기로 하고, 촬영 비표를 목에 걸었습니다.

 대추야자와 과일로 이프타르를 하는 남성 무슬림들을 멀리서 촬영하고 있는데 아랍어로 추정되는 언어를 사용하는 남성 무슬림이 기자를 향해 빠르게 걸어오며 새를 쫓는 것 같은 손짓을 합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취재하지 말라는 얘기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때 다른 무슬림이 그를 막아섭니다. 취재 중단 위기인가 싶던 찰나에 한국인 무슬림과 몇몇 외국인 무슬림은 기자에게도 대추야자를 맛보라고 권합니다. ‘아, 다행이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대추야자는 ‘꿀맛’이었습니다. 한 무슬림이 꿀처럼 달콤한 대추야자에 관해 설명합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척박한 사막에서 자라는데 매우 영양가가 높다"면서 몇 개 더 먹어보라 합니다. 자꾸자꾸 집어먹게 됩니다. ‘아! 이 김에 사진 몇 장 찍어야겠다’ 싶어 드르륵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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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에서 이프타르를 위해 줄을 서 배식받는 무슬림.  [email protected]
  기자와 가까이 앉은 무슬림부터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노 포토!"라고 말하는 무슬림 두어 명을 빼고는 웃으며 자세를 취해주기도 합니다.

  간단히 요기를 마친 이들은 오후 8시가 되자 예배당으로 향했습니다. 예배당 내부에는 무슬림만이 들어갈 수 있지만, 가끔 관광객도 온다고 합니다.
 
  남녀 예배당은 층이 나뉘어 있습니다. 여성 예배당의 촬영은 불가능해 남성 예배당에서 촬영합니다. 5~10분 정도 저녁 예배를 마친 무슬림들은 예배당을 나와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기다립니다.
 
  들통 한가득 끓인 카레에는 고기가 푸짐하게 들어있습니다. 카레와 함께 길쭉한 인디카(indica) 품종의 쌀에 샤프란 향신료가 들어간 밥을 식판에 듬뿍 떠서 주는데 매콤하고 고소한 이 향이 식욕을 마구 자극합니다.
 
  기자는 ‘고기가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고기 숭배자입니다. 게다가 저녁 끼니때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으니 배가 무척 고팠습니다. 그래서인지 배식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동공에 지진(?)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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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에서 이프타르를 위해 배식받는 무슬림.  [email protected]
'퇴근하면 뭐 먹지, 고기를 꼭 먹어야지' 등을 생각하고 있는데 한 무슬림이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식사해 본 적 있느냐, 식사를 꼭 하고 가라"고 권합니다. 다만 "여성 식사 장소에서 식사해야 한다"는 단서는 붙습니다.

 식판에 밥도, 카레도 한 국자씩 크게 떠서 받았습니다. 카레를 밥에 올려 쓱쓱 비비니 불면 날아갈 것 같던 길쭉한 밥알에 윤기가 돕니다. 샤프란 향과 어우러진 카레와 고기가 촉촉하면서도 부드럽게 혀끝을 감싸는데 이 맛이 정말 일품입니다.
 
 5분 만에 한 그릇을 뚝딱 하고 나니 금발의 무슬림 여성이 제게 말을 걸어옵니다. 대추야자를 권하기에 또 열심히 먹습니다. 무슬림과 한 방에 복작복작 앉아 대추야자와 카레, 샤프란 밥으로 배를 채우고 보니 서울 속 작은 아랍국가에 와 있는 기분입니다.

 깊어가는 밤, 이들은 또 한 번의 예배를 앞두고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금식과 금욕의 한 달을 보내고 나면 이들은 ‘이드 알 피트르(Eid-al-Fitr)’를 맞을 것입니다.
 
 ‘축제’라는 뜻의 ‘이드’, ‘끝났다’는 뜻의 ‘피트르’. 즉, '금식을 끝내는 축제'입니다. 이슬람 최대 축제이자 가장 중요한 명절입니다.
 
 라마단이 끝나는 이날 무슬림들은 사원에 모두 모여 예배를 하고 사흘간 성대하게 먹고 마시며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이들은 지금 이 명절을 앞두고 1년 중 가장 성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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