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째 조각 심문섭 "적당히 해서 되는게 있습디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14일 개막 조각 드로잉 회화 사진등 총 130점 전시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나무를 깎는 일, 결국 내 작업은 소리를 깎고, 나를 깎는 것이다." 조각가 심문섭(74). 그는 둔탁하지만 간결한 그의 조각처럼 말했다. 짧고 빠르게 한 말을 적어보니 그대로 시구절이 됐다.(어린시절 꿈은 시인이었다) "작품을 한다는 것은 내 삶의 방법론을 찾아가는 것이다. 내 삶이다. 삶의 과정이다. 삶이라는 시간과 시대에 따라서 적당히 바뀔수 밖에 없다. 연대와 시간과 나이와 생각과 맞물리니까 변할수 밖에 없는 거다. 안변한게 이상한거다. 안변할수 있지, 그런데 나는 체질적으로 안변하고는 못산다." 그가 50년간 해온 작품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풀었다. 흙, 돌, 나무, 철 조각부터 사진 회화까지 130여점을 내놓았다.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의 조각부분에 선정돼, 과천관 1,2전시실,중앙홀에서 14일부터 전시한다. '심문섭,자연을 조각하다'를 타이틀로 심문섭의 시기별 대표 조각 작품을 선보인 대규모 회고전이다. 그는 "회고전을 하자고 했을때 나는 현역선수야"라고 했다면서 "전시를 한다는 것은 되새김하는 것이고 허물을 벗는 것이다. 그리고 지평을 열기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초기작부터 현재까지의 조각 작품들을 시리즈별로 선보였다. 조각 외에도 드로잉, 회화, 사진들을 함께 제시해 작품의 제작 과정과 작가의 의도를 살펴볼수 있다. 특히 197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지속해온 ‘관계’, ‘현전’, ‘토상’ 그리고 ‘목신’, ‘메타포’, ‘제시’, ‘반추’ 시리즈를 통해 작품의 재료가 되는 흙, 돌, 나무, 철 등 물질에서부터 시작하여 물질 간 관계 속에서 상징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1,2전시실,중앙홀을 장악한 전시는 작품이 너무 많다는게 흠이면 흠이다. 작가는 "전시하는게 어렵다"면서 "작가라는 것은 바보처럼 욕심이 많다"고 했다. "이 작품은 이래서 좋고, 이래서 이쁘고, 착하고, 작품을 많이 넣고 싶죠. 조각이니까 중앙홀까지 내준 특별한 배려로 알고 있어요." 전시 준비기간 3년, 작가는 작품 설치를 위해 도면에 수십장의 스케치를 그리며 이번 전시에 열정을 보였다. 대규모 전시에 만족함을 보이는 그는 "난 참 재수가 좋았다"며 50년을 회고했다. '통영→국전→파리비엔날레' 3가지 '찬스'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통영 출생으로 바다가 놀이터였다. 자연과 교감한 그때 유년시절의 체험이 지금까지 작품에 담겼다. 또 국전에서 바보스럽게 3번이나 상을 탔다. 국전은 그 시절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전람회였다. 국전이 발표되면 호외가 날 정도였다. 대통령상을 타면 통금도 풀어줬을 정도였으까. 당시 절대적인 권위가 있던 상이었다."
그는 70년대 자신을 '스타 조각가'로 만든 국전에 대해 "철저하게 나를 던져본 시간"이었다고 했다. "국전을 통해서 조형적인 세계에서 내 것을 찾아본 시간으로 과연 내 것은 무엇인가 문제에 들어갔다. 사물과 사물들이 만나서 교감하고 충돌하고 어울리고, 작가의 손이라는 것은 많이 개입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는 것. '파리비엔날레'는 그를 국내보다 '해외 작가'로 성장시켰다.당시 남들은 타기도 어려웠던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갈수 있었던 건 "넓은 의미의 시야를 볼수 있는 찬스"였다. 1971~1975년 파리비엔날레에 3회 연속 참가하면서 "내가 버려야 될 것과 관계와 차이가 어떤게 있는 것인가, 내 것이 심화되고 내가 무엇인가를 알아야겠다는 지평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50년간 무엇을 만든 것 같냐고 하자 "예술이라는 것은 종교과학과 달리 똑부러지는 답을 얻는게 아니잖나"고 명언처럼 반문했다. 그러면서 "예술이라는 것이 자기만의 기법을 가져야 하지. 남 안하는 것 해야 한다 말이지. 물리적이지만 합당해야해. 신비한 비밀이 되면 안돼, 공감대도 형성해야 하고···" 라고 읊조렸다.
돌에서 철 나무로 변해온 조각 작품과 달리 사진 작업은 오버 아닌가 하자 "조각을 하니까 카메라와 담 쌓은건 아니잖는가"라고 되물었다. 2000년대 들어 사진과 회화 작업에 시간을 쏟고 있다. "나를 조각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의외라고 생각할 것도 같으나 나는 오래전부터 조각이니 회화니 하는 장르의 카테고리를 벗어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가벼워진 인스턴트 시대. 이젠 현대 조각도 가볍고 유쾌해졌다. 반면 그의 조각은 여전히 거대하다. 70~80년대 '이것도 조각'이냐고 할 정도로 앞선 시대 감각으로 추상조각계를 이끌었던 심문섭 조각은 이제 기념비가 된 모양새다. 무겁고 진중한 조각, 딱 '옛날 조각'이 됐지만, 분명 유행은 돌고 돌것이다. 그는 "정년도 없고, 넌 죽어서도 좋겠다"라는 은퇴한 친구들의 말을 듣는다고 했다. (죽어서도 좋겠다는 건 '사후 작품값이 더 올라간다'는 의미라고 했다) 자연 순환의 의미와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작품으로 '제시'하는 그가 '예술가로 사는 법'을 나즈막히 말했지만 조각거장의 자신감을 드러냈다. "작업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것입니더. 적당히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적당히 해서 되는게 있습디꺼(있습니까 경상도 사투리). 쉬엄쉬엄해서 될일이 아니에요. 생명하고 바꾸는 거다. 바꿔봐라, 그럼 좋은게 나온다. 허허허허~" 전시는 10월 9일까지.
◇조각가 심문섭= 통영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조소학과를 졸업했다. 국가 전람회인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1969~71년의 연이은 수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1971~75년에는 파리비엔날레에 3회 연속 참가하였고, 1975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1976년 시드니 비엔날레 등에 출품하여 세계 미술계에 주목을 받았다. 1981년 일본에서 개최된 제2회 헨리무어 대상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고, 1970-1990년대 일본에서만 15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다니엘 뷔랑, 니키 드 생팔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전시했던 프랑스 팔레 루아얄 정원에서 한국 작가 최초로 전시에 초대되는 등 현재까지도 파리, 도쿄, 베이징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