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스트' 힘은 무엇일까···홍은주 번역가에게 들어봤다
"생경·이질적 독특한 아름다운 문체 특징"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무라카미 하루키(68) '기사단장 죽이기' 열풍이 계속 되고 있다. 대체 무엇때문일까. 책 만 나오면 일본과 한국에서 들썩이는 그 힘은 무엇일까. '하루키스트'(Harukist·하루키 열성 독자)라는 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다. "처음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을 때 '이 세상에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있었다니' 하고 충격을 받았던 걸 기억합니다." '기사 단장 죽이기' 번역가 홍은주씨도 "'이 장면에 이런 어휘를 가져오다니', '이 대목에 이런 문장을 쓰다니' 하고 일일이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하루키의 힘이 무엇인지, 일단 번역가를 통해 알고 싶었다. 일본에서 20여년간 거주하며 소설을 번역하고 있는 홍은주씨와 국내 처음으로 e-메일 인터뷰를 했다. 하루키 소설에 대해 홍 씨는 "생경하고 이질적인, 그래서 독특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문체가 하루키 문학만의 특징"이라고 꼽았다. "하루키의 소설은 소설인 동시에 통째로 하나의 거대하고 독특한 문화"라고도 했다. 홍씨는 "소설 안에 촘촘하게 뿌려진 문학, 음악, 요리, 영화, 미술, 역사 등의 요소 가운데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끌리는 분야에 새로이 '입문'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것이(물론 저자가 의도하고 계산한 일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만) 작품의 미덕"이라고 단언했다. "생경하고 이질적인, 그래서 독특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문체였습니다. 이야기의 구조, 줄거리, 인물보다도 먼저 문체에 마음을 휘어잡혀 마지막 장까지 고스란히 끌려갔던 그 느낌은 이후에도 매번 비슷했습니다. 물론 문체에 대한 감각은 사람마다 다르고, 놀라움이나 감동이나 거부감을 느끼는 '포인트'도 저마다 다를 겁니다. 하루키도 문체 때문에 좋다는 사람도 있고 문체 때문에 싫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간 발표한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2016년 출간)나 인터뷰집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간다'(국내 미출간) 등에서 언급한 작가 본인의 문체에 대한 각별한 관심에서 짐작하듯이, 문체야말로 하루키 문학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야기를 또 한편으로는 독자를 끌고 가는 굉장한 파워를 그의 문체에서 늘 느낍니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1Q84' 이후 7년 만의 본격 장편소설이다. 30대 중반 초상화가가 아내에게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를 받은 뒤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산꼭대기 집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꾸준하고 열렬히 하루키를 읽어온 독자뿐만 아니라, 이번에 처음으로 그를 만나는 독자도 즐겁게 읽어주실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춘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세대의 독자가 하루키 문학이 주는 놀라움을 충분히 맛보고, 그 안에서 또 다른 관심 분야로 나아가는 ‘문’을 발견할 수 있기를 번역자로서 소박하게 바랍니다." 이번 '기사단장 죽이기'는 한국에서 출간되자 마자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면서 하루키 파워를 입증했다. 문학동네는 지금까지 40만부를 찍었으며, 교보문고 7월4주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7월19~25일)에서 '기사단장 죽이기'는 2주 연속 1위에 이름을 걸었다.
"23일 새벽 일본 국철(JR)의 화물열차가 홋카이도 지역에서 탈선 사고가 나는 바람에 책이 제때 닿지 않아 발매가 하루 늦춰졌다는 뉴스가 나오자 인터넷에 '홋카이도 지역 독자들'을 동정하는 댓글이 다수 달렸을 정도다. 열렬한 하루키스트뿐만 아니라 책을 산 독자 사이에서 스포일러는 서로 자제하자는, 유쾌한 기대가 담긴 메시지가 인터넷에 속속 올라왔고, 줄거리를 미리 보지 않기 위해 '당분간 트위터 중단합니다'라는 글을 띄운 사람들도 등장했다. 디지털 시대에 한 권의 책이 발간되는 날을 iPhone 신모델 발매일처럼 만들어버리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이 즐겁게 느껴졌다. 소설 한 편으로 이렇게 사람들을 술렁거리게 만들고 흥분시킬 수 있는 작가가 그리 흔치는 않을 것이다." 번역가는 매우 어려운 직업이다. 외서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옮긴이 문체인 만큼, 모든 게 번역가 손에 달려있다. 해당 외국어에 대한 기본적인 독해력과 이해력이 있어야 하고, 한국어 구사력도 일반인보다 훨씬 뛰어나야 한다.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일인데다,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하는 직업이다. 홍 번역가는 "번역하는 사람에게 원작의 무게는 공평하다"며 "길건 짧건, 이름난 작가의 작품이건 덜 알려진 작가의 작품이건 한 줄 한 줄의 무게는 똑같다. 사실 번역하는 동안은 일정도 빡빡했거니와 너무 몰두했던 탓에 특별한 '감상'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매일 새벽 눈을 뜨면 '오늘도 무사히' 하는 심정으로 원고를 붙잡았고, 밤에 잠자리에 들 때면 '내일도 무사히' 하는 마음이었다. 원고를 다 넘긴 후에야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에 수많은 독자를 거느린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글을 제 손으로 우리말로 옮기는 일의 (어쩔 수 없는) 부담감 같은 걸 비로소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녀는 번역하다가 잘 안 될 때는 '자잘한' 기분 전화법을 쓴다고 했다. "너무 호쾌하게 기분 전환을 하면 집중력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데 좀 어려움을 느끼는 편이다. 제일 확실하고 손쉬운 게 차 마시기다. 카페인이 들어간 차, 들어가지 않은 차를 갖춰놓고 그때그때 기분과 필요에 따라 마신다. 중증 슬럼프가 아닌 한 대개 기분이 반짝 바뀌어 다시 일에 몰입할 수 있다." "19년 전, 번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자료 수집'은 커다란 숙제였습니다. 당시는 주로 책, 전문 테마별 사전에 의지하거나, 잘 아는 사람에게 직접 물어야 했습니다. 요즘은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정보를 번역가도 손가락만 움직여 바로 얻을 수 있지요. 참 편하지만, 획일화한 정보가 너무 간편히 입수되는 게 꼭 좋은 일일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사람'한테 곧잘 묻고(인터넷에 흘러다니는 정보와는 맛이 좀 다른 정보를 얻기도 하니까요), 옛날처럼 굳이 책이나 사전을 사 보기도 합니다." 하루키의 소설을 번역한 성공한 번역가로서, 번역가를 꿈꾸는 수많은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누군가 심혈을 쏟아 세상에 탄생시킨 작품을 가져다 그것과 가장 근접한 뜻으로 바꾸는 일은 언뜻 매우 속 편해 보이면서 매우 부담스러운 작업"이라는 그녀는 "작가의 행위가 예술이라면 번역가의 행위는 거의 '수공예' 작업이다. 무엇보다 '체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직업'으로서 성립하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성립하더라도 긴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고요). 경제적 안정을 보장받기 힘들고 그 결과 심리적 안정도 흔들리기 쉽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번역에 매력을 느끼는 많은 분들이 이런 걸림돌과 일찌감치 맞닥뜨리리라 생각합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