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으라고 강요받는 여성들이라니···'편의점 인간' 작가의 '소멸세계'
지난해 '편의점 인간'으로 제155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 무라타 사야카가 쓴 '소멸세계'가 국내 번역·출간 됐다. 무라타 사야카는 2003년 '수유(授乳)'로 제46회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일본에서 10권의 작품을 출간한 중견 작가다. 작품 초기부터 그녀가 주제로 삼아온 것은 바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대한 의심이다. 특히 성과 여성이라는 것의 위화감, 결혼, 출산, 가족 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그중에서도 '소멸세계'는 우리가 본능이라 믿어온 '결혼·출산·가족'이라는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무라타 사야카는 주변 사람들과 결혼과 출산에 관해 나눈 대화에서 이 작품의 모티프를 얻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과 섹스가 반드시 직결되어 있는 게 아니라면?, '이런 세계관이 정상인 세상이 있다면?'이라는 의문과 상상에서 출발해, 그렇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이상의 세계란 어떤 곳일까?'라는 답에 도달한 것이다. '소멸세계'에서 출산을 위한 교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사라진 구시대적 산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남성이 전쟁터로 떠나자 성비의 불균형으로 저출산이 가속화된 '평행세계'인 이 곳에서는 이제 섹스를 통해 아이를 낳지 않는다. 결혼도 단체 미팅 프로그램에 원하는 조건을 넣으면 매칭시켜주는 상대와 하며, 아이는 인공수정으로만 얻을 수 있다. 또 허구의 인물과 유사연애하는 것은 정상이지만, 인간과 연애하는 것은 별종 취급을 받는 곳이다. 무라타 사야카는 이러한 배경 속에 어릴 적부터 '너는 섹스를 통해 태어난 아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온 주인공 아마네를 등장시킨다. 철이 들 무렵, 자신이 '남다른 방법'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 아마네. 그녀는 태생에 대한 근본적인 이질감을 느끼며 연애, 섹스, 그리고 결혼과 가족이라는 제도가 소멸해가는 이 세상에 유일하게 의문을 갖는 존재다. 아마네가 인간과 몸을 섞으며 자신의 진짜 본능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의문을 던지고 해체함으로써, 규정되지 않은 자신과 세계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연애라는 종교 아래서 고통받는 우리는 이제 가족이라는 종교에서 구원을 얻으려 했다. 몸과 마음 모두 세뇌당해야 간신히 '연애'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94쪽) 무라타 사야카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적 편견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없는 세계를 만들고 싶어서 소설을 쓴다"라고 밝혔다. 최고은 옮김, 292쪽, 살림, 1만3000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