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사회일반

[김정환의 스크리닝]'옥자'는 부자 차지가 되나?

등록 2017-08-27 05:50:00   최종수정 2017-08-28 09:10:50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영화 ‘옥자’(감독 봉준호)의 한 장면.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불과 1970년대만 해도 한국에서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소고기는 말할 것도 없고, 돼지고기나 닭고기도 모처럼 날을 잡아야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백년손님(사위)'에게 소중한 씨암탉을 잡아 먹이는 것이 최고의 대접이던 시절이다.

1970년대 경제 개발기를 거쳐 ‘삼저(저유가, 저달러, 저금리) 호황’을 누리며 경제 규모가 급성장한 1980년대 들어와 고기를 먹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나 어제 집에서 고기 먹었다”는 여전히 중·고교생 사이에서 가장 큰 자랑거리였다.

요즘은 어떨까.

고깃값이 여전히 비싼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주일에 고기를 한 번도 못 먹는 사람은 1970년대 고기를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먹은 사람 수보다 적거나 비슷한 정도다. 건강이나 미용, 아니면 신념(채식주의) 때문에 안 먹거나 덜 먹는 일은 있어도 요즘은 서민도 고기를 자주 먹는다는 얘기다.

이는 국민 소득수준이 향상한 덕이기도 하지만, 소·돼지·닭 등 각종 식용 가축을 국내외에서 많이 사육하기에 가능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공장식 축산(Factory farming system)’이다.
 
공장식 축산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좁은 공간에서 많은 가축을 최대한 짧은 기간에 집약해서 사육해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생산량을 최대화하는 것을 말한다.
 
산란계는 종일 대낮처럼 전기를 밝힌 닭장 내 A4 용지(0.06㎡)보다 좁은 공간에서 운동은커녕 날개도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 한 채 사료만 먹으면서 배변하듯 꾸역꾸역 '무정란'만 낳다 죽음에 이른다.
 
육계는 어쩌면 산란계보다는 행복할지도 모른다. 사육 공간이 좀 더 넓다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성장촉진제, 항생제 등이 듬뿍 든 사료를 먹고 부쩍부쩍 자라나 생후 30여 일에 삼계탕이나 치킨용으로 도축되는 덕이다. 오래 살며 고통받다 끝내 죽임을 당하느니 짧고 굵게 살다 가는 것이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돼지도 별반 차이가 없다. 그 큰 몸을 제대로 뒤척이기도 힘들 정도로 좁은 감금 틀(가로 약 60㎝, 세로 액 210㎝) 안에서 사료를 먹으면서 살만 찌우며 이제나저제나 세상 떠날 날만 기다린다.
 
넓은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으며 자라는 소는 어떨까. 그러나 소도 도축 몇 달 전부터는 좁은 공간에 갇힌 채 곡물 사료를 주로 먹는다. 그래야 육질을 평가하는 기준인 ‘마블링’이라고 하는 지방 덩어리가 몸에 많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정반대 운명인 가축들도 있다.
 
동물복지농장에서 습성에 최대한 어울리게 조성된 환경 아래 길러지는 가축들이다. 햇볕과 풀, 흙은 있다. 그러나 케이지나 항생제, 성장촉진제는 없다. 살충제도 마찬가지다.
 
어느 가축의 고기와 알이 사람에게 더 좋을까.
 
먹어보지 않아도 누구나 안다. 당연히 동물복지농장에서 자라난 가축의 그것이다.
 
문제는 가격이다. 최근 ‘살충제 달걀 사태’가 빚어지면서 극소수 동물복지농장에서 생산한 달걀이 인기를 끌고 있다. 다만 개당 가격은 1000원이 넘는다. 사태 전 개당 200원이던 일반 달걀의 다섯 배 가격이다. 인기가 더 높아졌으니 앞으로 가격은 더 오를 일만 남았다.
 
마블링이 전혀 없는, 그래서 2~3등급에 불과한 소고기 등심을 50~120일 드라이 에이징(건식 숙성)을 해 판매하는 한우 브랜드가 있다. 몸에 해로운 기름은 없지만, 육질이나 식감은 '투플러스(1++)급 꽃등심'과 똑같다. 가격은 어떨까. 드라이 에이징한 것이 오히려 더 비싸다. 귀한데다 몸에 더 좋아서다.

결국 몸에 좋은 고기나 알을 먹는다는 것은 양식이 아닌 자연산 생선회를 먹는 것처럼 '고가'일 수밖에 없다. '아무나 못 먹는다'는 얘기다.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와 일부 극장에서 상영 중인 틸다 스윈턴, 안서현의 SF 영화 ‘옥자’(감독 봉준호)는 공장식 축산을 넘어 유전자 조작 가축 문제를 코믹하게 다룬다.

줄거리는 이렇다.
 
“미국의 글로벌 식품기업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CEO '루시‘(틸다 스윈턴)는 맛있는 돼지고기를 전 세계에 더욱 값싸게 공급하겠다면서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전 세계 농부 26명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에서 최고의 슈퍼돼지는 ‘미자’(안서현)와 할아버지 ‘희봉’(변희봉)이 깊은 산속에서 방목해 키운 ‘옥자’였다.
 
옥자를 회수하려는 미란도, 가족 같은 옥자를 지키려는 미자, 유전자 조작 축산 문제를 폭로하기 위해 옥자가 필요한 과격 동물보호단체 ALF까지 뒤섞여 옥자 쟁탈전이 벌어진다.”
이 영화에서 옥자 등 슈퍼돼지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공장식 축산이 아니라 자연 방목을 통해 가장 잘 성장할 수 있었다는 설정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금처럼 항생제 듬뿍, 성장촉진제 가득, 살충제 덤으로 길러낸 가축을 싸게, 양껏 먹을 것인가.
 
아니면 청정하고 건강하게 키운 가축을 비싸게, 제한적으로 먹을 것인가.
 
결국 극소수 부유층이 먹는 고기와 절대다수 중산층, 서민이 먹는 고기 종류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직면한다. 공장식 축산을 통해 간신히 이뤄진 ‘육식의 평등’은 송두리째 무너질 수밖에 없다.
엄연한 현실이니 그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한다고 치자.
 
그래도 최소한 내가 먹는 고기나 알의 정체는 뭔지 알고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친환경'이니 나는 못 먹어도 내 아이에게는 먹여야겠다며 많은 돈 주고 산 것이 농약 범벅인 일 만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