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의 스크리닝]'청년경찰' 엄지척하면서도 씁쓸한 대림동 후배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우리 동네를 왜 자꾸 우범지역으로 그리는 거야?" 어느 날 만난 한 후배의 푸념이다. 그가 사는 곳은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서울에 일하러 온 '조선족'이라 불리는 재중 동포나 중국인이 많이 사는 곳이다. 대림동에서 태어나고 자라 지금도 살지만, 그는 생물학적이나 법적으로나 '한국인'이다. 대림동은 지난 8월9일 개봉해 54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여전히 흥행 중인 강하늘, 박서준 주연 영화 '청년경찰'(감독 김주환)에 배경 중 하나로 등장했다. "극 중 경찰대생 '기준'(박서준)과 '희열'(강하늘)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외출을 나왔다 우연히 가출 소녀 납치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이를 목격한 두 사람은 경찰에 신고하지만, 수사가 전혀 진행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기준과 희열은 직접 수사에 나서 납치범들을 추적해 서울 서남부 어느 동네로 가게 된다." 여기서 그 '어느 동네'가 바로 대림동이다. 대림동은 이미 2010년 12월 개봉한 김윤석, 하정우 주연 영화 '황해'(감독 나홍진)에서도 조선족 범죄자들의 집결지로 그려져 논란을 일으켰다. 특정 지역이 배경이 돼 지역민의 반발을 산 작품은 이것들 말고도 많다. 2008년 2월 개봉한 '추격자'에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이 끔찍한 연쇄 살인이 일어나는 동네로 나와 지역 주민들이 분개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는 나홍진 감독이 연출하고, 김윤석과 하정우가 주연한 작품이다. 이 때문에 '추적자' 시절 망원동 이슈를 경험한 나 감독이 '황해'에서도 의도적으로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것 아니냐는 추정까지 나왔다. 2013년 8월 개봉한 장혁, 수애 주연 '감기'(감독 김성수)에서는 정체불명의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경기 성남시 분당을 강타한 것으로 그려졌다. 극 중 정부는 분당을 특별 재난 지역으로 선포하고 시민의 출입을 통제하는 등 격리했고, 미국은 한발 더 나아가 괴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확산을 막겠다며 이 지역을 폭격하는 것까지 검토했다. 비현실적인 내용이었지만, 특정 지역과 주민들이 극심한 피해를 본 것으로 묘사돼 지역 커뮤니티의 분노가 컸다. 이 영화가 누적 관객 약 310만 명에 그치며 손익분기점(약 370만 명)을 넘지 못 한 것은 분당 주민들이 관람을 보이콧한 탓이라는 분석도 설득력 있게 제시됐다. 이처럼 적잖이 논란이 일 것을 뻔히 알면서 감독은 왜 작품에 실제 지역을 등장시키는 것일까. 노이즈 마케팅을 위한 것이라고도 추측할 수 있지만, 대다수 감독은 이를 적극적으로 부인한다. 그러면서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강변한다. 대림동, 가리봉동이 서울에서 사실상 차이나타운으로 여겨진 곳이니 이를 실제 배경으로 해야 좀 더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있지 않은 '임대동' '을리봉동' 등을 배경으로 내세우면 관객의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분명하긴 하다. 하지만 주민들은 실제 촬영은 다른 동네에서 해놓고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CG, 도둑 촬영한 자료 영상 등으로 실제 그 지역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무슨 리얼리티냐고 반발한다. 실제 '추적자'는 망원동이 아닌 같은 마포구의 아현동에서 촬영했고, 모티브인 유영철이 연쇄살인 사건을 일으킨 지역도 같은 마포구이긴 했으나 노고산동이었다. '청년경찰'도 대림동에서 찍은 것도 있으나 주된 배경인 밤 장면은 서울의 중구 세운상가 인근에서 촬영했다 재한동포총연합회 등 국내 47개 재중 동포 단체와 대림동 주민들이 지난 1일 '청년경찰'에서 재중 동포 범죄단이 대림동에 암약하며 납치, 폭력, 성범죄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표현된 데 반발해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제작사에 상영 즉각 중단과 사과·피해 보상·재발 방지 등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져 주민 반발 정도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을까. 지난해 5월 개봉해 약 690만 관객을 동원하며 히트한 곽도원, 황정민 주연 '곡성'의 사례가 어쩌면 해결책을 제시해줄지도 모른다. 마침 이 영화는 나홍진 감독의 작품이다. 이미 두 차례 배경지 논란을 겪은 나 감독은 영화 촬영을 실제 전남 곡성군에서 하고 제목에도 곡성을 붙였다. 당연히 큰 문제가 될 수 있었으나 나 감독은 이번에는 달랐다. 곡성 뒤에 지역명의 한자인 '谷城'과 전혀 다른, '우는 소리'란 뜻의 한자인 '哭聲'을 붙여 차별화를 꾀하는 한편 영화 분위기를 제목에서부터 드러냈다. 곡성군도 어차피 현실이 아닌 영화라는 것을 인정하고 히트 영화에 나온 청정하고 아름다운 지역 경관을 알리는 데 힘썼다. 덕분에 지난해 여름 곡성군을 찾은 내국인 관광객이 두 배 이상 늘었다. 결국 노이즈 마케팅 이전에 최대한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감독과 지역 이미지는 물론 재산권까지 지켜야 하는 주민 사이에 상호 이해와 배려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논란은 '청년경찰'로 끝나고, 부디 이후 개봉하는 작품들에서는 '곡성'처럼 상생하는 모습이 전개되기를 기대해본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