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키바' 프로그램으로 학교폭력 근절 성공···그 비결은?
그러나 무관용 원칙에 따라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학교폭력이 과연 줄어들까. 대책이 나와봐야 하겠지만, 학교폭력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을 감안하면 큰 기대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 못지 않게 학교폭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지난 5월 미 국립과학기술의약아카데미(National Academies of Sciences, Engineering and Medicine)는 젊은이들의 "심각한 공공 건강문제"가 우려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언뜻 보면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 얘기 같지만, 사실은 집단 따돌림(왕따) 등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지적한 보고서였다. 미국에서도 오랫동안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방법 모색이 진행돼왔다. 하지만 상황은 날로 악화되고 있으며, 심지어 지금은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데 동의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학교폭력과의 전쟁에서 폭넓은 성공을 거둔 핀란드의 프로그램도 유독 미국에서는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도로시 에스페라지 플로리다대학 심리학과 교수는 "미국은 다른 야수"라는 말로 상황을 대신 설명했다. 최근 미 CNN 방송은 핀란드와 미국의 교육현실을 비교, 분석하는 기획기사를 통해 미국 학교폭력의 해법을 제시하고 나섰다. 어쩌면 두 나라의 사례를 연구하는 게 한국판 해법 찾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 핀란드에는 '키바'가 있다 핀란드에는 ‘키바(KiVa)’라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이는 핀란드어로 ‘왕따에 맞서다(Kiusaamista Vastaan)’라는 말의 앞 두 글자씩을 따서 만들었다. 핀란드 정부는 이 프로그램 개발에 자금을 지원했고, 현재 핀란드 모든 학교에서는 해당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키바는 핀란드 투루크대학 교육자들과 연구자들이 개발했으며, 학교폭력을 당한 아이들이나 희생자들을 개별적으로 다루는 대신 학교 수업 전반에 초점을 맞춰 학교폭력을 억제하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줄리 허바드 델라웨어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의 괴롭힘은 지위와 권력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허바드 교수는 현재 미국 학생들과 함께 키바의 효과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키바 커리큘럼은 학교폭력을 목격한 방관자에 초점을 맞추고 그에 대한 역동적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수업과 컴퓨터 게임 등을 진행한다. 허바드 교수는 "만약 방관자가 괴롭힘 그 자체가 아니라 희생자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면, 괴롭힘은 (가해자 입장에선)더 이상 아주 보람있는 일이 아닌 게 된다"고 말했다. 학교폭력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문화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 키바는 얼마나 효과가 있나 지난해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 분교(UCLA)는 약 80개의 핀란드 초등학교 4~6학년 학생 7000명 이상을 상대로 키바 등 각종 학교폭력 방지 프로그램들의 효과에 대해 조사했었다. 그 결과 설문에 참여한 학교의 절반 정도가 키바의 효과를 보고 있었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연구자들은 또 키바가 괴롭힘을 당한 희생자들을 크게 돕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키바가 희생자의 우울증을 감소시키고 자부심을 높일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키바가 미 학교에서 작동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그 프로그램이 미 공립학교 시스템만큼 다양한 대상들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에스페라지 교수는 "핀란드 학생들은 경제적으로나 인종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동질하다"며 "반면 미 학교들에 다니는 학생들의 사회경제적 지위, 민족성, 종교적 배경 등은 매우 다양하다"고 말했다. 에스페라지 교수에 따르면 한 학생이 직면한 사회적 불평등은 그것이 인종이나 계급 등 그 어떤 것이든 간에 학교폭력의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한다. 학생들이 서로 다른 인종과 사회경제적 배경을 갖고 있을 경우 다른 학생들은 그 문제와 관련해 해당 학생들을 더 괴롭히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에스페라지 교수는 "(한 집단에서)소수는 집단 따돌림 등 희생양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미 국립교육통계센터(NCES)에 따르면 지난 2014년 미 학생의 평균 인종 구성 비율은 백인 50%, 히스패닉계 25%, 아프리카계 16%였다. 나머지 9%는 아시아계, 태평양 제도민, 아메리카 원주민, 혼혈인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UCLA의 연구를 보면 핀란드에선 키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 중 2.1%만이 백인이었다. 미 학교의 경우 자원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미 학교들도 다양한 수준의 재원과 자원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거주지역이나 히스패닉계 미국인 거주지역은 상황이 열악하다. 이 곳의 학생들은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보다 더 빈곤한 학교에 다니고 있다. 에스페라지 교수는 "교육은 지역 차원에서 이뤄진다"며 "(따라서)모두에게 맞는 하나의 프로그램이란 있을 수 없다. 상황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1년 핀란드에서 키바 초기 연구를 도운 텍사스공과대학의 토드 리틀 심리학과 교수도 에스페라지 교수의 지적에 동의했다. 그는 "키바는 핀란드에서 작동했었고, 핀란드와 같은 문화(또는 유사한 문화)에만 국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허바드 교수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다양한 인종과 민족으로 구성된 집단에서도 키바 프로그램이 작동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 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이 프로그램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허바드 교수의 연구에서 표본 집단에 들어간 학생들의 인종은 49%가 유럽계 미국인, 20%가 히스패닉계 미국인, 18%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 7%는 혼혈인, 6%는 아시아계 미국인이었다. 허바드 교수와 동료들은 인종이 다른 경우 키바의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전반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이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결과는 결국 학생이나 인종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핀란드 교사와 미국 교사의 차이에 대해 훨씬 더 우려했다. 그는 "우리의 연구에 따르면 교사가 키바를 실제로 구현하면 미국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제대로 작동한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교사들이 그것을 하기 훨씬 어려워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 교사들은 키바 외에 처리해야 할 업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미 국립사법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Justice)에 따르면 키바는 교사가 20시간에 걸쳐 10회의 수업을 수행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표준화된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처럼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미 교사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허바드 교수는 또 다른 큰 차이점으로 핀란드 사회가 교사들에게 부여하고 있는 가치라고 말했다. 그는 핀란드에선 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의사나 변호사와 같고, 교사가 되는 것이 "가장 훌륭하고 (전망이)밝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바드 교수는 "그들은 그런 식으로 교사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그런 방법으로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핀란드는 전 세계에서 최고의 교육시스템을 갖고 있는 나라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보고서에서 핀란드에선 일선 교사들에게 석사 학위를 요구하고 있으며, 정부는 모든 수준의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얻고 있다고도 했다. 특히 핀란드 학생들은 표준화된 국가 시험을 보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허바드 교수는 미 교사들은 기대에 "포위당하고 있다"며 "그들은 마약 예방을 해야 하고, 성교육도 해야 한다. 그들은 많을 일을 하기로 되어 있으며 학교폭력은 그들이 해야 할 목록에 있는 또 다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핀란드에서는 학교가 학교폭력 예방에 높은 가치를 두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 美 어떻게 변해야 하나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교사와 교육행정가들이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에도 인식을 같이 해야 한다. 허바드 교수는 "그것은 학기 초에 열리는 30분짜리 회의가 아니다. 그런 태도나 인식은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이 아이들의 복지 뿐만 아니라 학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교육행정가들에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허바드 교수는 "우리는 현재 아이들을 위한 학업 수준 및 시험 점수 향상을 위한 노력은 하고 있지만, 사회적이고 정서적인 학습이나 개발과 관련 있는 것에는 주목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교육행정가들이 키바와 같은 프로그램의 이점에 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학교폭력을 줄이는 것이 학업 성취도와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학교 폭력에 대한 무관용 정책으로부터 탈피해 키바와 같은 증거에 기반한 프로그램을 적용할 것을 권해왔다. 허바드 교수는 "증거에 기반한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에스페라지 교수도 개인이 아닌 "학교 풍토"에 집중하는 것은 중요하다면서, 학교폭력 반대론자들이 미 교육시스템의 문제와 학교의 다양성을 감안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우리 모두는 아이들이 스스로에게 그 프로그램을 적용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 학교에서 발생하는 왕따 등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연구자나 해당 연구를 지지하는 이들이 공동으로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