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10년 어제와 오늘]⑦세계 경제, 과연 안전한가
【서울=뉴시스】 안호균 기자 =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는 금융산업을 보는 각 국의 인식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탈규제와 자유화가 금융산업을 더 크게 성장시킬 수 있다는 낙관론은 무너졌다.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고위험 투자가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건전성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당시 대부분의 국가들과 전문가들은 리먼 브라더스의 모기지 부실 대출이 대형 은행들의 도산과 세계 금융 위기로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글로벌 금융 산업계는 복잡하고 촘촘하게 얽혀 있어 각국 정부나 중앙은행들도 그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에 따라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각국이 금융규제의 시계추를 80년 이전으로 되돌려 놓는 작업에 착수했다. 1930년대 이전까지 자유방임에 가까웠던 금융시장에 대공황 이후 대형 은행들의 연쇄 도산을 막기 위한 강도 높은 규제들이 도입됐던 흐름과 유사했다. ◇세계 각국, 자본 흐름 통제 강화 핵심은 금융기관의 자본 건전성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위험자본 보유를 통제하는 규제를 도입하고 금융기관간 업무 영역을 구분하는 일이었다. 국제결제은행(BIS) 산하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9월부터 은행감독에 대한 규제체계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새로 도입된 바젤III는 기존 바젤II의 BIS 자기자본비율 '8% 이상'은 그대로 두되 기본 자기자본비율(Tier1)을 4%에서 2019년까지 6%로, 보통주 자기자본비율은 2%에서 4.5%로 높이도록 했다. 단기유동성비율(LCR)과 중장기유동성비율(NSFR) 등 유동성 규제도 도입했다. 유동화 자산을 위기발생시의 예상 손실 규모의 100%까지 충족하도록 한 조치다. 세계 각국은 바젤III 규제체계를 비교적 충실히 수용했다. 미국의 경우 규제 내용을 거의 대부분 받아들였으며 오히려 일부 규제의 경우 바젤 권고안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강화하기도 했다.'도드-프랭크법'을 도입해 월가 대형은행들의 자본 확충을 의무화했다. 도드-프랭크법의 핵심인 '볼커룰'은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업무 영역을 분리하고 은행의 고위험 업무를 대폭 제한했다. 유럽 국가들도 이와 유사한 규제를 도입했다. 이와 함께 선진국들은 이전까지 명목상의 협의체에 머물러 있던 주요20개국(G20)을 주요 경제 관련 이슈를 다루는 협의체로 활용했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금융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문제는 G7만의 노력으로 힘들다는 인식이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G20 경제수장들은 매년 회동을 통해 금융규제를 함께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2009년 출범한 금융안정위원회(FSB)는 장외 파생상품 규제 강화, 글로벌 금융기관에 대한 추가 자본 규제 방안 등을 내놓고 G20의 이행을 독려했다.
세계 100대 은행의 자기자본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3년 동안 약 40% 늘어났다. 은행들의 자산 구성과 업무 영역에도 변화가 생겼다. 미국 상업은행의 총자산에서 현금, 국채 등 안전자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22% 수준에서 2014년 33%까지 상승했다.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은 파생상품, 상품선물 등 위험자산을 중심으로 4000억 파운드 가량의 자산을 감축했다. 골드만삭스는 채권·통화 헤지펀드 투자를 일부 철수했다. ◇눈덩이처럼 커진 부채...새 금융위기 도화선되나 하지만 금융 시장이 완전히 안전한 상태에 있다고 보긴 힘들다. 각국의 규제 당국이 은행들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면서 헤지펀드, 머니마켓펀드 등 실질적으로 은행과 유사한 자금중개기능을 수행하지만 규제는 덜 받는 '그림자 금융' 영역이 팽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26조 달러 수준이었던 글로벌 그림자금융 규모는 최근 80조 달러(약 8경5500조원) 수준까지 확대됐다. 이는 세계 금융시장의 4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또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각국 중앙은행이 저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해 시장에 풀어놓은 유동성이 특정 경제 영역에서 버블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우려감도 상당하다. 최근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열풍이 한가지 예다. 2017년 초 960달러 수준이던 비트코인 가격은 1년 동안 1200%이나 상승했다. 지난해 12월 초에는 보름 동안 9000 달러나 가격이 오르며 '비트코인 광풍'이라는 말까지 등장할 정도였다.전문가들은 그동안 크게 올랐던 가상화폐 가격이 순간적으로 폭락하면서 전통적인 금융 시장 영역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크리스토퍼 하비 웰스파고 주식 전략 책임자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가상화폐 시장에는 상당량의 거품이 껴 있다"며 "내년에는 거품의 영향이 주식시장에까지 파급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위협은 10년간의 저금리·양적완화 기간 동안 쌓여온 부채 문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9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G20 국가들의 비금융기업, 가계, 일반정부 부채 합계는 135조 달러에 달했다. GDP 대비 비금융부문 부채 비율은 금융위기 전인 2006년 210%에서 10년 만에 235%까지 높아졌다. 우리나라(183→232%)를 비롯해 미국(225→259%), 중국(142→254%), 일본(343→388%), 영국(210→250%), 프랑스(164→226%), 브라질(118→145%), 러시아(49→84%) 등 대부분의 G20국가에서 부채 비율이 상승했다.부채 비율이 낮아진 나라는 독일(180→168%)과 아르헨티나(93→73%) 정도 뿐이었다. 특히 중국은 최근 10년간 14조4000억 달러(1경5386조원), 미국은 11조1000억 달러(1경1860조원)나 부채가 늘었다. 두 나라를 합치면 G20 증가분의 3분의 1에 달하는 수준이다. 세계 경제가 10년간의 통화 완화를 끝내고 긴축을 시작하는 상황인 만큼,부채 문제는 특히나 우려 대상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신흥시장에서 자금이 급격히 유출되면서 금리가 올라 한계기업이나 취약가구가 특히 위험해질 수 있다. 중국의 경우 기업부채가, 우리나라의 경우 가계부채가 특히 취약하다.
IMF는 세계 경제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지만 부채 문제는 새로운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IMF는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금융 위기가 발생하면서) 주식 가격이 15%, 주택 가격이 9%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글로벌 경제 성장률은 1.7%포인트나 낮아질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3분의 1 수준 충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토비아스 애드리언 IMF 금융안정 감시위원은 "물은 조용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수면 아래서는 취약성이 형성되고 있다"며 "이런 문제는 글로벌 경제를 회복 경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