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고창신한 韓國畵...박대성, '수묵에서 모더니즘을 찾았다'
【서울=뉴시스】 박현주 기자 = 한국 미술계에서 수묵화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소산 박대성(73)화백의 개인전이 인사아트센터 전관에서 열린다. 가나문화재단이 펼치는 이 전시는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깊은 뜻을 그림으로 알리는 전시이기도 하다. 박대성 화백은 빈사상태인 한국전통화의 맥박을 뛰게하는 심장같은 존재다. 국내미술시장 수묵화의 대가로 고희가 넘어서도 왕성한 활력을 자랑한다. 1972년 대만 공작화랑에서 개인전을 연이후 1984년 가나화랑 개관화 함게 전속화가가 된 박화백은 독창적인 화풍에 힙입어 리얼리티 현대미술 대세속에서도 수묵화의 위엄을 떨쳐왔다. 전통화의 위기속에 박 화백의 생존전략은 새 것을 받아들인데 있다. 옛것에 머물지 않고 현대화단의 세계적 조류인 모더니즘에 올라탔다. 1994년 현대미술을 탐구하기 위해 뉴욕 소호에서 1년간 거주했는데, 이때의 경험은 2000년대부터 박대성의 작품에 나타나는 추상성에 영향을 미쳤다. 뉴욕에서 현대미술을 접하며 오히려 우리 전통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이는 이후 ‘서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1999년 경주로 작업실을 옮기면서 작가는 이러한 ‘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김생, 김정희, 모택동, 갑골종정 등의 작품을 통해 ‘서’의 연마에 매진, 2000년 이후 작업의 확연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서’에 대한 관심은 ‘서’자체의 조형적 탐구로 이어지면서 작품 안에서 이전과 눈에 띄게 다른 선의 변화로 나타난다. 여전히 자연풍경을 담아냈지만 선 자체가 힘찬 기(氣)를 내뿜고 필획의 힘이 돋보이면서 화면은 기운생동(氣韻生動)과 긴장감을 전한다. 이러한 조형성은 그가 찾은 한국화의 해답이기도 하다.
박 화백이 서의 필법을 회화에 사용함으로써 극도로 날카롭고 긴장감있는 느낌을 주고자 한 것은 ‘서’로 단련된 필획이 그림의 획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중국의 ‘서화동원론(書畵同源論)’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새로운 수묵화를 그리겠다"고 결심한 박화백은 대만 고궁박물원의 송•원•명 시대의 그림이 지닌 장대한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서(書)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 화백이 수묵화의 대가가 된 것은 서파와 학파에 휩쓸리지 않은 덕도 있다. 그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 부모를 여의고 자신의 왼쪽 팔까지 잃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림이 좋았던 작가는 묵화부터 고서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연습을 거듭하는 고행의 길을 걸었다. 독학으로 그림을 익히던 그는 집안어른의 소개로 18세 때부터 서정묵의 문하에서 5년간 그림을 배웠고 이후 이영찬 화백과 서울대 동양화과 박노수 교수의 조언을 받으며 공부했다. 부산 동아대학교에서 열린 국제 미술대전에서 1965년 첫 입선을 시작으로 6년 연속 입상하며 한국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1974년 1년간의 대만 유학기간 중 대만 고궁박물관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그림을 매일 두점씩 볼 수 있는 참관증을 받았고 이때의 공부는 그의 작업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천부적인 감각과 소재 선택의 탁월함으로 한국화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시키며 작업을 이어간 그는 79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하고 동양화단에서 이변을 일으켰다.
이제 소산 박대성 화백은 한국화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수묵을 현대화 한다는 점에서, 겸재에서 소정과 청전으로 이어지는 실경산수의 계보를 잇는 한국화의 거장으로 회자된다. 박화백이 즐기는 모티브는 소나무다. 솔 사랑은 작업장에서도 돋보인다. 소나무 천지인 경주 남산자락에서도 포석정과 가까운 삼릉계(三陵溪) 솔밭이 특히 아름다워 유명 사진작가의 작업현장이 되곤 하는데, 박 화백의 화실은 바로 그 국립공원 경계에 있다. 덕분에 삼릉의 상징인 그 잘 생긴 솔들이 화실 마당 안으로도 우람하게 밀고 들어와 자란다. 그 특권에 보답하듯, 집 마당의 솔을 열심히 그려놓고선 '솔거의 노래'(종이에 수묵, 500 x 436cm, 2015) 제목으로 현재 경주 솔거미술관에서 선보인 '남산자락의 소산수묵'(2017.9.12.-2018.3.25) 개인전 대표작으로 걸렸다. "미술관의 천정 높이까지 닿은 두 그루 소나무는 멀찌감치 바라보면 그 크기가 압도적이고, 가까이 다가가면 세세하고 정밀하게 수많은 솔잎을 그려낸 작가의 내공에 기가 죽는다"는 반응이다.
이번 전시는 자연 풍경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는 사물의 본질을 찾는데 주력한 작업들을 볼 수 있다. 폭이 5m에 이르는 대작들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긴장감과 힘찬 기운을 쏟아내는데 이는 크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운생동이 활약하는 현대적 수묵화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나문화재단 김형국 이사장은 "소산의 산수화는 언뜻 동양화기법 가운데 특히 조감법(鳥瞰法)의 과감한 도입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내 보기론 기암괴석의 봉우리가 하늘에 닿을수록 더 거대해지고 짙게 검은 빛깔을 뿜어냄은 큐비즘의 극치"라고 극찬했다. "극사실주의의 한 경지이면서도 특유의 서예를 보태서 동양의 서화일치의 한 경지를 환기 시켜주고 있는 이번 전시가 한국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애정을 일깨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수묵에서 모더니즘을 찾았다'를 타이틀로 한 이번 전시에는 서예작품과 함께 경주 불국사 시리즈 등 신작 100여점을 선보인다. 한국화의 갈길을 찾은 박 화백은 "이번 전시는 내 일생을 다 보여주는 전시"라고 했다. 3월4일까지.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