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협정, 또다시 트럼프 손에…중동 핵위기 부활하나
트럼프, 12일까지 이란 핵협정 준수여부 평가
◇중동 핵 위기 부활의 날, D-5? 핵협정의 운명은 오는 12일(현지시간) 결정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핵협정 준수 여부를 평가하기로 한 시한이다. 미국은 지난 2015년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와 함께 이란의 핵무기 개발 금지에 따른 경제 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핵협정을 타결한 뒤 ‘코커-카딘(Corker-Cardin)’ 법을 제정해 이를 자체 평가했다. 백악관이 90일마다 이란의 핵협정 준수 여부를 평가해 미 의회가 이란에 대한 제재면제 연장을 결정할 수 있게 하는 법이다. 코커-카딘법은 대통령에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231호에 따라 이란이 투명하고 검증 가능하도록 모든 관련 기술 등에 관한 협정을 완전히 이행하고 있음을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결의안에 따르면 이란은 핵무기 보유 능력과 연관된 탄도미사일과 관련한 어떤 활동도 할 수 없다. 이란 핵협정은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의 대표적인 외교적 성과로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이를 “미국이 이제까지 맺은 최악의 편향적인 협정”이라고 비판하며 탈퇴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1월 취임 이후 미국의 핵협정 탈퇴를 수차례 경고한 그는 지난해 10월에 이어 올해 1월 제재 면제를 연장하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못을 박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핵협정 타결 이후에도 탄도미사일 개발을 계속하며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2030년에 자동적으로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제한이 해제되는 이른바 ‘일몰조항’을 문제 삼았다. 그는 앞선 평가 과정에서도 “의회와 유럽의 동맹국이 핵협정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조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핵협정은 종식될 것”이라며 핵협정 개정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30일 모하마두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핵협정에 대해 “12일 또는 그 이전에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파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핵협정은 제정신이 아니다(insane)”며 “맺지 말았어야 할 끔찍한 협상”이라고 주장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신임 국무장관 역시 지난 4월 28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핵협정이 이란의 테러 지원 행태를 막는 것에 실패했다”며 “개정하지 않는다면 핵협정을 떠날 것”이라고 강경하게 경고했다. ◇불 붙이는 이스라엘…이란 “NTP 탈퇴” 시사도 프랑스와 독일, 영국 등 유럽 당사국은 이란과의 현재 핵협정을 준수하는 것이 이란의 핵 활동을 중단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합의하고 핵협정 파기를 막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이들 3국은 사실상 핵협정 파기로 이어질 개정이 아니라 후속 협정을 마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일몰 조항의 기한 연장, 이란 핵실험 검증 규정 강화, 대학 및 실험실에 대한 조사 권한 보장, 이란의 탄도미사일 시험 및 개발제한 등의 내용이 포함된 안이 구체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2일 호주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12일에 어떤 결정을 내릴 지 모르겠다”며 미국이 핵협정에서 탈퇴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기도 했다. 유럽 3국은 이란과의 핵협정 다지기로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 방문 이후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1시간 넘게 통화하면서 핵협정 수호에 합의했다. 그는 “현재의 협정이 만료되는 2025년 이후에 일어날 일과 이란의 중동 지역 분쟁 참여,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 등에 대해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며 “세 가지 필수적인 추가 주제를 다루기 위해 회담을 확장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란은 핵협정 개정에 전면 반대하고 있다. “핵협정을 넘어서는 어떤 제안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로하니 대통령은 앞서 “미국의 모든 선택지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며 “우리는 모든 상황에 대한 분명한 전략을 갖고 있고 이를 신속하게 구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알리 샴커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은 미국의 핵협정파기에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대응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러시아와 중국도 이란의 편에 섰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최근 “러시아가 핵협정 개정 움직임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고, 중국은 IAEA가 10차례에 걸쳐 이란의 합의 준수및 엄중한 검증 절차 확립을 인증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모든 관련 당사국들이 장기적 관심과 거시적 안목을 지니고서 합의 내용을 충실히 실행하고 준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은 1일 이란이 비밀리에 핵을 개발하고 있다는 증거를 야심차게 공개하면서 이란과 미국 간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내가 100% 옳았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역설했다. 폼페이오 장관 역시 성명을 발표해 “(이스라엘의 자료는)진짜인 것으로 보인다”며 핵협정이 이란의 거짓말에 기초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의 발표에는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며 “이란이 핵협정을 위반했다는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IAEA 역시 이날 이란에서 2009년 이후 핵폭발 장치 개발과 관련한 어떤 정황 증거도 발견된 것이 없다고 재차 확인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