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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가더라도 무기 들 수 없다는 게 내 양심이다"

등록 2018-06-30 15:20:43   최종수정 2018-07-10 09: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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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종교적 신념' 병역거부자 참여연대 홍정훈

"폭력 옳지 못하다는 생각들 쌓여 신념이 돼"

"대학에도 존재하는 군대식 폭력에 좌절해"

"평화 위해 무기 안 들겠다는 생각 존중해야"

"징벌적 형태의 대체 복무제 있어서는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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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홍정훈 참여연대 간사가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07.0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참여연대 소속으로 시민활동을 하고 있는 홍정훈(28)은 2016년 말 병역 거부를 선언했다.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 선언이었다. 지난해 4월 평화를 위해 무기를 들지 않겠다는 그의 신념에는 징역 1년6개월이 선고됐다. 이에 홍정훈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하고 항소심을 기다렸다. 그는 양심적 병역 거부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홍정훈은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 논의가 진전될 거라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이미 감옥행을 결심한 상태였다. 다만 조용히 징역형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고, 다퉈볼 수 있는 데까지 다퉈보기로 마음 먹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8일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형식적으로는 '헌법불합치'였지만, 병역법을 사실상 위헌으로 봤다. 앞서 헌재는 지난 2004년과 2011년 총 세 차례에 걸쳐 병역법 88조1항1호에 관해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있다.

 홍정훈은 이날 헌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만감이 교차하는 듯 왈칵 눈물을 쏟았다. 국내에서 병역 거부를 처음으로 공개 선언한 오태양(43)씨 이후 무려 17년을 돌아 이뤄낸 진전이었다. 

 -기분이 어떤가.

 "2016년에 병역 거부를 선언했으니까, 약 2년 정도 고생한 거다. 어제 헌재 결정 후에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나. 그 자리에 앞서 양심적 병역 거부 선언을 하고 징역형을 이미 살고 나온 분들이 찾아오셨다. 그간 그분들이 겪었을 마음고생을 생각하니 울컥하더라. 눈물 흘리는 장면이 너무 많이 보도돼 민망하기는 했다."

 -이번 결정에 만족하나.

 "결정이 나기 전부터 언론에서는 희망적이라고 본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전 결과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봤다. 어쨌든 이번에는 상당한 진전을 이뤄낸 거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현재 감옥에 계신 분들에게 직접적인 효력이 있는 결정은 아니어서 아쉬운 부분도 있다."

 -아쉬움이 있어도 어제만큼은 기쁘고 행복했을 것 같다.

 "파티를 했다.(웃음) '여호와의 증인' 쪽 사람들과는 잘 알지 못한다. 비종교적인 신념을 가진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다같이 모여 술도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눴는데, 결국 대화 주제는 양심적 병역 거부와 대체 복무였다. 병역법이 개정되고나면 앞서 감옥에 다녀오신 분들이 재심 청구를 통해서 무죄 판결을 받는 게 중요하다. 전과자가 됐다는 건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이유로 그 사람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 아니겠나. 온전히 자기 인생을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런(재심 청구)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사면복권 해주면 더 빨리 해결될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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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홍정훈 참여연대 간사가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8.07.01.   [email protected]
-왜 군대를 안 가겠다고 선언했나.

 "폭력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들이 쌓여 신념이 됐다. 군대라는 곳은 사람을 조직적으로 동원해서 폭력을 쓰게 하는 곳이다. 조직 내 위계와 질서 아래 폭력이 정당화되곤 한다. 내 신념과 맞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에 입대를 계속해서 연기했다. 그러다가 병역 거부라는 선택지가 있고, 감옥행을 감수하더라도 재판으로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던 중 입대 통지서가 왔다.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정을 내릴 시기가 왔고,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한 것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하기까지의 과정에 특별한 계기가 있지는 않았나. 군대를 안 가고 감옥을 가겠다고 결심하는 건 엄청난 결정이지 않나.

 "이걸 특별한 계기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대학에 갔는데, 바로 그곳에 군대에서 학습된 폭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한 폭력에는 절대 가담하고 싶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그런 폭력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계속 느꼈다."

 -부모님 반응은 어땠나.

 "말리셨다.(웃음) 다만 '군대 그까짓거 잠깐 다녀오면 그만이다'는 식의 말은 안 하셨다. 감옥에 다녀오면 '빨간줄'이 남고, 그 낙인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재판은 힘든 과정이다. 포기하고 군대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

 "일이 너무 커지긴 했다.(웃음) 어제와 같은 결정이 나올지도 몰랐고, 어쩌면 내가 양심적 병역 거부 대체복무자 1호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됐으니까. 그것과는 별개로 재판이 쉽지 않은 건 맞다. 그렇지만 포기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다. 타협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평화를 지켜나가기 위해 총을 들지 않겠다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가 왜 이리도 극단적인 결과로 돌아오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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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홍정훈 참여연대 간사가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8.07.01.   [email protected]
-사람들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묻는다. 그 양심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길래 남들 다 가는 군대를 안 가는가. 우리도 똑같이 양심이 있고, 폭력이 싫다고.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말에 답이 있지 않나. 감옥에 갈 걸 알면서도 군대를 가지 않을 양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이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지금은 국가의 극단적인 징벌 방식이 당신들의 양심을 증명해줄 수 있다고 하지만 법이 개정된 후에는 그 양심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

 "제도에 관한 건 논의가 계속해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완벽한 제도라는 게 없듯이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건 각 인간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총을 들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이 '다른' 선택을 국가는 존중하고 보장해줘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군대라는 건 굉장히 민감한 주제다. 상황은 매번 다르지만 핵심은 같다. 공정성과 형평성이다. 국방의 의무를 모두가 똑같이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남성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조직에 복무하지 않겠다는 것이지 이 사회에 내가 해야 할 의무를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군대를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이유로 감옥을 보내고, 1등 시민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남성들의 비난을 이야기했는데, 사실 이 비난의 화살은 궁극적으로 남성들을 폭력적인 공간에 몰아넣은 이 사회 전체를 향해 있다. 이 나라는 남성을 반복적인 폭력에 노출시키고 그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그런 엄청난 의무를 짊어지게 하고 어떤 권리도 보장해주지 않은 게 현실이다. 군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치솟는 분노의 본질이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감옥에 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어떻게 현역 복무자들의 인권을 향상시킬지를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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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홍정훈 참여연대 간사가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8.07.01.   [email protected]
-대체 복무라고 해도 결국 국방의 의무를 하지 않는 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렇게 폭력이 싫다면 군대에 가서 총을 들지 않고, 폭력을 쓰지 않으면 된다는 논리다.

 "비폭력 신념을 가진 군인이 주인공인 '헥소고지'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군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폭력이라는 점에서 그곳에서 일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대체 복무는 군과 관련 없는 일이 돼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는 사람들 중에는 대체 복무를 매우 높은 강도로 수행하게끔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아주 '빡세게' 일을 시켜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꼼수를 없게 하자는 말이다.

 "(웃음) 요새 언론이 띄우고 있는 내용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대체 복무는 징벌적인 성격을 가져서는 안 된다. 잘못을 해서 벌을 받는 게 아니지 않나. 그런 논리는 국제사회에서 통용되지 않을 뿐더러 소모적인 논쟁만 가져온다. 앞서도 말했지만, 대체 복무의 노동 강도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군 현역 복무자들의 근무 환경과 인권을 향상시킬 방안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대체 복무 제도가 도입되면 자연스럽게 진행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양심적 병역 거부는 지금껏 당신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이슈 아닌가. 20대 삶 대부분이 관련 활동에 치중돼 있었을 것 같다. 법이 개정되고나면 다른 일을 할 생각은 없나.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문제와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건 맞다. 법이 개정된다고 해도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할 거다. 누군가는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없을지 모르고, 또 어떤 이들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징벌하려들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활동을 멈출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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