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 브렉시트' 카드 꺼내든 메이…위기 돌파할까?
【서울=뉴시스】 안호균 기자 =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영국이 내년 3월로 예정된 유럽연합(EU) 탈퇴를 앞두고 '소프트 브렉시트' 카드를 꺼내들었다.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EU를 탈퇴하더라도 영국이 EU 단일시장과 밀접하게 연계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집권 보수당 내 브렉시트 찬성파 의원들은 소프트 브렉시트가 사실상 유럽에 백기투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정면으로 발발하고 있다. 내각에서도 이 계획에 반대하는 2명의 장관이 사퇴했다. '정면 돌파'를 선택한 메이 총리가 정치적 혼란 상황을 극복하고 자신의 구상대로 "부드럽고 질서 정연한 브렉시트"를 성공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U 단일시장 접근권 유지해 경제 부작용 최소화" 메이 총리는 그동안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을 이탈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지지해왔지만 최근 '소프트 브렉시트'로 입장을 선회했다. 그는 지난 5일 장관들에게 서신을 보내 "영국은 EU의 상품 규칙과 지속적인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결정을 해야 한다"며 "농식품 등을 포함해 모든 상품에 (EU와) 공동 규정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영국은 EU의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 영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단일 시장과 관세 동맹 탈퇴를 추진해 왔다. EU의 획일화된 규제 영역에 속해 있으면서 경제의 자율성을 유지하기 힘들고, 무역 측면에서도 미국·중국·인도 등 다양한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어렵다는 이유다. 하지만 하드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메이 정부는 전략을 수정했다. 당장 수출이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고 에어버스, BMW, 재규어랜드로버 등 주요 제조업체들도 잇따라 영국에서 철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메이 총리는 영국이 EU 단일시장을 탈퇴하더라도 관세동맹에 남거나 EU의 규정을 준수하는 자유무역지역을 둔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이를 통해 공산품과 농산물이 EU 단일시장에 접근성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영국 정부는 속도전에 돌입했다. 메이 총리는 지난 6일 12시간 동안 진행된 '마라톤' 각료회의 끝에 정부의 새로운 브렉시트 계획을 관철했다. 그는 "'공산품과 농산물에 대한 일반 규정서'와 '기업 친화적인 새로운 관세 모델'을 만들어 EU 기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무역협정도 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보수당 강경파는 반발…"EU에 무릎 꿇는 일" 하지만 집권 보수당 내 강경파는 반발하고 있다. 데이비드 존스 의원은 소프트 브렉시트 계획에 대해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영국을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 영원히 묶을 의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소프트 브렉시트는) 국가 이익에 전적으로 반하는 것이자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국민이 투표한 것이 아니다"며 "내각이 거부권을 행사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맨스필드 지역구 하원의원 벤 브래들리와 루이스 지역구 하원의원 마리아 콜필드 등 보수당 의원 2명은 당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브래들리 의원은 "체커스에서 발표된 제안은 EU의 무역 규정에 영국의 발을 묶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이라며 "브렉시트의 신념을 따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내각도 분열됐다. 데이비드 데이비스 브렉시트부 장관과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 스티븐 베이커 브렉시트부 차관이 소프트 브렉시트 구상에 반발해 9일 사임했다. 존슨 장관은 사임하면서 "메이 총리의 연약한 브렉시트 계획이 채택된다면 영국은 EU의 식민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경파는 영국이 소프트 브렉시트를 채택하면 당장 추진 중인 미국과의 FTA 체결도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보수당 내에서는 총리와 당대표 교체까지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을 EU에서 떼어놓고 싶어했던 미국과의 관계도 어색해졌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까지 '하드 브렉시트'를 원하는 보수당 인사들을 만나 미·영 무역협정 체결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13일 영국을 방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메이 총리의 회동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영국 방문 기간 중 '소프트 브렉시트'에 반대해 사퇴한 존슨 외무장관과 만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영국 내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은 편이다. 스카이스포츠가 지난 9일 영국인 15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4%는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협상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부정적인 응답 비율은 지난해 3월 여론조사 때보다 31%포인트나 상승했다. 메이 총리가 최선의 협상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답한 응답자는 22%에 불과했다.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에서 메이 총리보다 다른 보수당 인사가 더 적합하는 응답도 44%에 달했다. ◇정치적 위기 맞은 메이, 브렉시트 협상 성사시킬까? 정치적 위기를 맞은 메이 총리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EU와의 협상 마감 시한이 3개월도 남지 않아 국론 분열로 시간을 허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메이 총리는 사임한 브렉시트부 장관의 후임으로 도미니크 랍 전 주택차관을, 외무장관 후임으로 제러미 헌트 보건부 장관을 임명하며 전열을 정비했다. 그는 7일 보수당 당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더이상 장관들이 개인 의견을 표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영국이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대한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갈 우려가 다소 해소됐다며 환영하고 있다. 톰 엔더스 에어버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9일 런던 독일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행사에서 "영국이 이제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며 "우리는 브뤼셀과 우리나라 모두에 실용성과 공정성을 요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협상에서 영국과 타협점을 찾지 못하던 EU도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0일 메이 총리와 회담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영국을 제외한 EU 27개국은 영국의 제안에 대한 공동의 답변을 내놓을 것"이라며 영국과 EU 간 브렉시트 협상에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미셸 바르니에 EU 측 브렉시트 협상대표는 10일 뉴욕에서 진행된 외교협회 연설에서 "영국과의 브렉시트 협상이 80% 진전됐다. 나머지 20% 협상에 전념할 것"이라며 "(12일) 영국의 브렉시트 백서 출간 이후 영국과의 건설적인 토론을 고대한다"고 언급했다. 다만 영국이 EU와의 협상을 담당할 주무 장관을 교체해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내기 쉽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윌리엄 헤이그 전 영국 외무장관은 11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두명의 장관이 사임한 뒤 브렉시트 합의의 가능성이 약간 낮아졌다고 평가했다. 헤이그 전 장관은 "EU는 영국이 단합돼 있지 않다고 생각된다면 양보하려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메이 정부)은 스스로를 실패의 길로 이끌 수 있다"고 설명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