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플라스틱과의 전쟁' 중…신음하는 생태계
【서울=뉴시스】김혜경 기자 = 순백의 북극곰이 검은색 비닐봉지를 뒤적이는 한 장의 사진이 최근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충격을 던졌다. 그동안 지구온난화의 대표적인 피해자로 자연 다큐멘터리 등에 자주 등장하던 북극곰이 비닐봉지 등 플라스틱 쓰레기에도 노출된 것이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즈(TIMES) 등에 따르면 이 장면은 프랑스의 한 사진작가가 북극 인근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제도에서 포착한 것으로, 그는 북극곰의 사냥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이 지역을 찾았다가 사냥감이 아닌 비닐봉지를 뜯는 북극곰을 목격하게 됐다. 봉지는 해안으로 유입된 쓰레기로, 북극곰은 봉지에 묻은 음식 냄새 때문에 그것이 먹잇감인 줄 착각해 물어뜯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이 사진을 공개하면서 "이 지역에서 비닐봉지 쓰레기를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다행히 곰이 봉지를 삼키지는 않았다"고 안도했다. 바다로 유입된 비닐봉지를 비롯해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의 피해자는 북극곰만이 아니다. 지난 6월 태국 남부 해안에서 건강 상태가 안좋은 한 고래가 발견됐는데, 수의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며칠 만에 사망했다. 부검 결과 고래 뱃속 위에서 80장이 넘는 비닐봉지가 발견됐다. 올 2월 스페인 남동부 팔로스의 해안에서도 약 10m 길이의 깡마른 향유고래 사체가 발견됐다. 부검 결과 고래의 위와 장에서는 소화되지 않은 플라스틱 조각이 대량으로 발견됐다. 고래 뱃속에서 나온 플라스틱 쓰레기 양은 총 29㎏으로, 비닐봉지부터 패트병, 우산, 그물망 등 총 47개 종류에 달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건조시킨 후에도 총 무게는 19㎏에 이르렀다. 발견 당시 이 고래의 무게는 약 7t으로 10m 길이의 고래의 평균 무게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연구진은 이들 고래가 플라스틱 쓰레기를 소화하지 못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플라스틱 빨대가 콧구멍에 박힌 바다 거북이의 영상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미국의 해양 생물학자 연구팀은 3년여전 바다 생물체 기생충 연구를 위해 코스타리카의 한 해안을 찾았다가 이 거북이를 발견했다. 이들은 거북이 코에 빨대가 꽂혀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핀셋을 이용해 발대를 빼는 작업을 진행했다. 빨대가 콧구멍 깊숙히 박혀 있어 이것을 빼내는 작업에는 5분 가량이 소요됐다. 거북이는 영상에서 연구진이 핀셋으로 빨대를 당길 때마다 아프다는 듯 눈을 감고 몸부림을 쳤다. 여러 차례 시도 끝에 빨대는 조금씩 빠져나왔고, 거북이는 코에서 뻘건 피를 흘렸다. 이 영상은 최근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네티즌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이처럼 해양 동물이 바다로 유입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로 고통받고 있다. 플라스틱은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을 원료로 만들어진 합성수지다. 가볍고 단단하며 다양한 제품을 값싸게 만들어낼 수 있어 1950년대 이후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되면서 플라스틱 제품은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플라스틱은 자연적으로 분해되는데는 최대 500년이 걸리기 때문에,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환경오염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됐다. 현재 바다에 부유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어느정도인지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으나, 2015년 세계적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소개된 한 논문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전 세계 192개국의 해안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쓰레기는 800만t~1270만t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논문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육지에서 강으로 그리고 결국 해안으로 유입되고 있으며, 중국을 필두로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이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유입의 주범이라고 꼽았다. 세계경제포럼(WEF)은 "현재와 같은 속도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를 오염시킬 경우 2050년에는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최근 가장 큰 문제로 대두한 것은 '미세 플라스틱'이다. 미세 플라스틱이란 바다의 파도와 바람 등에 잘게 부서진 크기 5㎜ 이하의 플라스틱을 말하는데, 물고기와 바닷새가 이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하면 결국 먹이사슬의 마지막 단계인 인간의 건강도 위협하게 된다. 이미 바다 거북이 약 3분의 1과 바닷새의 90% 이상이 플라스틱 조각을 섭취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 플리머스 대학의 연구진은 세계 약 700종의 해양동물 뱃속에서 이미 플라스틱 쓰레기가 검출됐으며, 이 가운데 17%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하는 종이라고 보고한 바 있다. 이같은 플라스틱 쓰레기의 심각성이 인지되면서 세계 각국과 기업들에서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 착수했다. 지난 5월 유럽연합(EU)이 면봉이나, 빨대, 커피나 물을 저을 때 사용하는 젓개(stir), 그리고 풍선 막대 등 10개 종의 플라스틱 제품 사용 금지 제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도 지난 5월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50% 줄이기로 했다. 또 이달 1일부터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 매장 내에서 일회용컵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 시행에 들어갔다. 인도 정부도 지난 6월 비닐봉지를 포함한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발효, 오는 2022년까지 인도 전역에서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업들의 동참도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업체인 스타벅스, 맥도날드 뿐 아니라 국내 엔제리너스커피 등도 플라스틱 빨대 퇴출 운동에 가세하는 등 플라스틱과의 전쟁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가 이처럼 플라스틱과의 전쟁에 돌입한 것은 생태계 파괴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최근 폐플라스틱 수입을 제한한 중국의 영향도 있다. 중국은 그간 세계 폐플라스틱의 절반 이상을 수입해 재가공해 사용하며 세계 청소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자국의 환경오염을 이유로 폐비닐을 비롯해 폐플라스틱 수입을 급격히 줄이자, 전 세계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갈곳을 잃게 되면서 폐플라스틱 처리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는 분석이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