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혐오한다⑤]불안한 개인들이 만든 공공의 적…"다 너희 탓"
혐오의 가장 큰 특징 '배제'…대화, 논쟁의 여지 없어"그냥 한국서 꺼졌으면 좋겠다" "다 없어져버렸으면"이면엔 빈부격차, 불평등 심화 등 구조적 불안 깔려소속 집단서 안정감·정체성 획득…외부엔 '적' 만들어각종 문제 책임 전가 '저들 때문에 내가 피해 입는다'"다양한 집단들 한 데 묶어주는 사회 공통가치 부재""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혐오 표현도 거침없어"'분노 동맹' 확장…한국 사회 혐오 현상 더 심화 전망회사원 박모(26)씨는 주말 서울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태극기 부대' 집회를 몇 번 목격한 후 노인 혐오자가 됐다. 그는 "심한 말인 줄은 알지만 '틀딱'(노인을 낮춰 부르는 인터넷 용어)들이 다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며 "설득도 불가능해 보이고 말이 안 통하지 않느냐. 마주치면 괜한 피해만 커진다"고 짜증스런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특정 대상을 완전히 배제하려는 마음이 바로 혐오의 정체라고 말한다.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저서 '혐오와 수치심'에서 혐오를 "자신을 오염시킬 수 있는 것에 대한 거부를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꺼림칙한 상대에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거부해버림으로써 대화 혹은 논쟁의 여지를 없애는 감정이 곧 혐오다. 혐오에는 구조화한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둔화한 경제 성장, 악화하는 경제 지표, 높아진 청년실업률, 점점 더 벌어지는 빈부격차, 길어진 수명과는 반대로 짧아지기만 하는 경제활동기간 등 갖가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사람들을 점점 불안 상태로 몰아가고, 이 스트레스를 견디고 안정감을 되찾기 위해 내가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해 나가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에 각종 문제의 책임을 전가하면서 혐오가 시작된다. '저들만 없었으면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마음이 싹트는 것이다.
일단 적을 설정하면 혐오는 증폭된다. 논리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들을 혐오해야 하는 논리는 만들면 그만이다. 이 교수는 "혐오는 구조를 살펴보지 않는다. 대신 특정 개인과 특정 계층, 특정 세대를 저격해 문제의 원인을 그들의 탓으로 돌린다. '난민 때문에' '동성애자 때문에' '장애인 때문에'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혐오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의 공격 대상 또한 노무현·전라도·여성 등으로 특정돼 있다.
윤상철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경제·문화 등 계층적으로 다른 집단들을 한 데 묶어주기 위해서는 공통가치가 필요하다. 평등주의, 공동체주의, 자유주의 등이 그러한 가치가 될 수 있다"며 "그 가치가 없으면 계층적으로 우위에 있는 집단이 차이와 차별을 정당화한다. 능력이 있으니까, 예쁘니까, 부지런하니까,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지금 누리는 지위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사회가 선순환하기 위해서는 '밑바탕'이 되는 가치들이 필요하다. 앞서 말한 자유주의, 평등주의, 공화주의, 공동체주의가 그런 가치들이다. 그 가치들이 잘 자리 잡았을 때 서로를 존중하면서 비로소 민주주의에 따라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이러한 가치가 부재한 상태에서 자기 주장만 한다. 혐오표현도 '내 주장'이라고 말한다. 이런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오히려 혐오를 더 부추기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택광 교수는 "혐오를 조장하는 이들의 논리는 시간이 갈수록 세련돼지고 공고해질 것"이라며 "현재 과도기적인 상태에 있는 한국 사회가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