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란 제재 한달 앞으로…국제유가 고공행진
【서울=뉴시스】 안호균 기자 = 미국의 이란 석유 금수 조치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을 경우 유가가 지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 달러를 넘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9월 초까지 배럴당 76 달러 수준이었던 영국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한달 새 13% 이상 올라 3일(현지시간) 86 달러를 돌파했다. 지난 2014년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 서부텍사스유(WTI) 선물도 9월 초 배럴당 67 달러 수준에서 13% 넘게 상승해 76 달러를 넘어섰다. 세계 경기 회복세에 힘입어 올해 상반기 고공행진을 하던 국제유가는 6월 이후 상승세가 꺾이며 배럴당 70 달러(브렌트유 기준) 대에서 횡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가를 견인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감산(일평균 180만 배럴) 조치를 시행중이던 산유국들이 생산량을 일평균 100만 달러 늘리기로 합의한데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에너지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에 따라 미국이 본격적으로 생산량을 늘릴 것이라는 전망도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미국의 이란 제재가 강화되면 석유 공급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로 9월부터 유가는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미국은 이란이 핵개발 시도를 계속 하고 있다는 이유로 지난 5월 이란 핵협정(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탈퇴한 데 이어 8월에는 이란과 자동차, 금·귀금속 거래 등을 중단하는 1차 제재를 단행했다. 또 11월 4일부터는 이란의 석유 수출을 차단하는 추가 제재를 발효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제재로 이란의 일평균 석유 수출량 250만 배럴 중 100만 배럴 이상이 감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압박에도 증산 거부한 OPEC…유가 상승세 가속화 미국은 이같은 급격한 유가 상승세를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유가 급등은 11월 6일 치러지는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물가상승률이 치솟을 경우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져 미국 경제 회복세에 제동을 걸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등 산유국들을 상대로 생산량을 늘려 유가를 안정시키라는 압박을 넣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미국)는 중동 국가들을 지키고 있다. 우리가 없었다면 그들은 이렇게 오랜 기간 안정적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계속 유가를 올리고 있다! 기억하겠다"라며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당장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적었다. 릭 페리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와러시아의 에너지 수장을 잇따라 만나 가격 안정을 위한 증산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사우디 등 OPEC 회원국들과 러시아 등 비(非) OPEC 산유국들은 지난달 23일 알제리에서 증산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도 산유국들은 이 회의에서 증산을 거부했다. 글로벌 에너지 수요를 감안할 때 현 단계에서 증산 결정을 내릴 이유가 없다는 이유였다.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 장관은 12월 열리는 차기 OPEC 각료회의까지 시장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알렉산드르 노바크 러시아 에너지부 장관은 추가 생산은 시장 상황에 달려있다고 언급했다. 산유국들의 증산 결정 불발로 유가 상승세에는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전문가들 "미국·이란 갈등 지속시 유가 100달러 갈수도" 전문가들은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더 악화돼 글로벌 석유 공급을 제한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00 달러까지 오를 수도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동맹인 사우디는 이란 석유 금수조치가 발효될 경우 자체적으로 석유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향후 몇달 동안 일평균 55만 배럴을 시장에 추가 공급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우디는 필요시 일평균 150만 배럴까지 추가 공급을 늘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공급 감소 효과를 완전히 상쇄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 이란의 최대 고객인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제재를 앞두고 선제적으로 수입을 줄이고 있다. 카스라 누리 이란 석유부 국장은 지난달 23일 샤나통신에 "한국이 이란으로부터 석유 구입을 중단한지 거의 3개월이 지났다"며 한국은 미국의 핵협정 탈퇴 이후 가장 처음으로 이란산 석유 수입을 완전 중단한 나라라고 밝혔다. 이란 제재 동참 요구를 거부했던 중국도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고 있다는 신호들도 나오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국영 정유회사 시노펙은 9월 이란산 원유의 적재를 절반 가량 줄인 것으로 추정된다. 에너지 애스펙츠의 공동창업자 리처드 맬린슨은 비즈니스인사이더에 "유가는 분명히 배럴당 90 달러를 넘어설 것이고 100 달러도 돌파할 수 있다"며 "미국의 제재 조치가 발효되기 전부터 이미 많은 은행, 보험사, 해운회사 등이 이란과 거래한 기업을 돕지 않겠다고 말해 왔다. 제재가 시작되면 이란산 화물을 싣는 구매자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리서치업체 브라이언힐 퍼블리싱의 맷 바디알리 애널리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미국과 이란과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00 달러를 넘어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며 "유가는 연휴철을 맞은 미국 소비자들을 화나게 만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이란, 여전히 강대강 대치…문제 해결 조짐 안보여 미국과 이란은 여전히 한치의 물러섬 없이 강대강으로 대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이란을 향해 "우리는 미국을 죽음으로 위협하고 그리고 대량 살상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정권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다"며 "우리는 이란 정권을 고립시킬 것이다. 그들이 계속해서 그런 공격성을 보이는한 그렇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같은 자리에서 "국제안보 문제가 미국 국내정치의 장난감이 아니라는 점을 이곳에서 분명히 말한다"며 "미국이 새로운 제재를 앞세워 시작한 경제전쟁은 이란 국민뿐 아니라 세계 시민들에게 해를 끼쳤고, 세계무역에 혼란을 일으켰다"고 맞받았다. 미국은 국제사법기관의 판결을 무시할 정도로 강한 제재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이 때문에 11월 중간 선거가 끝나면 물가를 신경쓸 필요가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더 강한 조치들을 쏟아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3일(현지시간) 미국의 제재가 1955년 이란과 체결한 '친선, 경제관계 및 영사권 조약'(Treaty of Amity, Economic Relations and Consular Rights)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ICJ는 미국이 의약품 및 장비, 식료품, 민간 항공 등 인권과 관련한 분야에서 제재를 철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ICJ 발표 직후 이란과 맺은 조약을 파기한다고 발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란은 국가안보 보호를 위한 합법적인 미국의 행동에 간섭하려 들었다"며 "ICJ를 정치 및 선전 목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