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앞둔 영국, '불법 이민자' 재논란 왜?
지난 3개월간 434명이 영불해협 건너국경 경비 강화되는 브렉시트 발효 전 밀입국 시도영국 정계에서는 정부의 '난민공포 조장' 비난
【서울=뉴시스】양소리 기자 = 유럽연합(EU) 탈퇴를 앞둔 영국이 불법이민자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브렉시트 예정일(3월29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영국에서 이민 문제가 다시 신문 1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라고 최근 지적했다. 지난해 말 영국의 각 TV들은 작은 고무보트를 타고 영불해협을 건너는 이민자들의 영상을 집중적으로 내보냈다. 사지드 자비드 영국 내무장관은 연말 휴가차 머물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서둘러 귀국하기도 했다. 2019년 난민들의 이야기는 지난 2016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전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유럽을 향해 길을 나섰던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사람들이 이젠 ‘경제적’ 이유로 바다를 건너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왜 지금 영불해협을 건너는가 지난 1일(현지시간) 프랑스 경찰은 어선을 훔쳐 타고 영불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한 난민 14명을 프랑스 서북쪽에 위치한 불로뉴 항구에서 체포했다. 영국 내무부에 따르면, 지난 한해동안 모두 539명의 난민들이 영불해협을 건넜다. 이중 80%(434명)는 최근 3개월 내에 이와 같은 밀입국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왜 지금 영불해협을 건너려 하는 것일까. 최근 일간 텔레그래프는 급증하는 영국 불법 이민의 배경으로 프랑스 칼레와 됭케르크에 있는 천막촌에 대한 프랑스 당국의 단속 강화를 꼽았다. 프랑스 당국이 주기적으로 불법 천막촌을 철거하는 등 강경책을 펼치자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영국으로 넘어가려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에서 부각되지 않은 또 다른 배경이 있다. 바로 급증한 ‘이민 브로커’들이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는 양국 해협의 가장 좁은 부분인 도버해협의 밑을 뚫은 해저터널, ‘유로터널’이 있다. EU 시민들은 차를 타고 쉽게 양국을 건널 수 있었다. 그러나 브렉시트가 가까워지면서, 최근 유로터널의 보안 경계는 점점 삼엄해졌다. 일반 시민들에겐 단순히 불편을 야기했을 일이지만, 누군가에겐 생계 수단이 사라진 조치였다. 바로 두 국가를 오가던 밀수업자들 이야기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이들이 손을 뻗은 것이 바로 칼레의 난민들이다. 이민 브로커로 탈바꿈한 밀수업자들은 칼레 난민들 중 비교적 자금력이 있는 이란, 시리아인들에게 브렉시트 발효 이후 영국 국경 경비가 강화되기 전에 밀항해야 한다고 부추기고 있다. 이민 장사가 돈이 된다는 이야기가 돌자 칼레 인근의 보트 판매업자들도 난민들에게 1000유로(127만원)짜리 고기잡이용 고무보트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국경강화’의 풍선효과는 이렇게 시작됐다. ◇브렉시트, 과연 이민자 유입을 막을 수 있을까 영국 공영방송 BBC는 지난 2일 영국 국가범죄수사국(National Crime Agency)은 영불해협을 통한 불법 이주를 주선한 혐의로 이란 국적의 33세 남성과 영국 국적의 24세 남성을 맨체스터에서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지난해 말 영국과 프랑스 내무장관이 불법 이민자들의 밀항 시도를 막기 위한 공조를 강화하기로 합의한데 따른 성과이다. 두 장관은 영불해협 순찰을 확대하고 밀항 브로커 조직을 단속할 정보를 공유하고 추적에 힘쓸 것을 약속했다. EU를 떠나는 영국의 ‘아이러니한 공조’다. 정보기관의 협력과 법 집행의 공조는 브렉시트 이후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을 영역으로 꼽힌다. EU 28개 회원국은 ‘솅겐 정보 시스템’을 함께 운영한다. 이 시스템을 통해 경찰과 대테러 당국은 역내에서 사람들의 이동, 안보 및 국경관리 등을 한눈에 파악한다. 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해 테러 음모를 사전에 파악하고 저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3월 영국이 EU 회원국 자격을 상실할 경우 솅겐 정보 시스템의 이용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EU 비회원국과의 정보 공유를 다른 회원국들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자체 법규에 상충되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공조가 과연 브렉시트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영국도 이를 의식한 듯 자체적인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자비드 내무장관은 지중해에서 난민 구조 작업 등에 참여하던 국경통제국 소속 소형쾌속정 2대를 복귀시켜 영불해협에 배치했다. 개빈 윌리엄슨 국방장관에 군 경비함인 '머지호'(HMS Mersey)를 영불해협에 파견할 것도 요청했다.
◇영불해협을 건너는 난민들, 영국을 위협하나 고무보트를 탄 10여명의 난민과 이들을 잡는 영국 국적의 쾌속정. 이 자극적인 영상과 3개월 동안 434명이 영불해협을 건넜다는 소식은 영국민을 공포에 떨게 만들 조합이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들 중 42%(227명)는 영국에 닿기도 전에 프랑스로 송환됐다. 다이앤 애벗 노동당 그림자내각 내무장관은 최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오는 15일로 예정된 브렉시트 합의안 비준 투표를 앞두고 메이 내각이 '이민자 공포 정치'를 펼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인디펜던트는 작년 연말 많은 이민자들이 영불해협에서 보트를 탄 이유로 유난히 따뜻했던 날씨를 꼽기도 했다. 한파가 심해지는 1월 말부터 다시 이민자 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이다. 메이 총리는 이민자에게 강경한 입장을 취해온 정치인이다. 그가 취임했던 2016년 말 BBC는 내각사무처 문서들을 입수해 메이 총리가 내무장관 시절 취했던 이민억제 방안들을 보도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불법 이민자 자녀를 학교에 입학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메이 총리는 교육 당국이 불법 이민자의 입학 순위를 가장 하위에 놓는 방안을 권고했다. 나아가 입학을 승인하더라도 불법 이민자로 드러날 경우 이를 철회할 수 있도록 했다. 내각의 반대로 내무부의 제안은 이민법 개정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BBC는 이 방안이 채택되지 않은 데에 대해 메이 당시 장관이 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브렉시트, 노딜 브렉시트, 제2 국민투표 그리고 정부 불신임까지. 사분오열된 영국에서 메이 총리가 원하는 것은 오는 15일 하원에서 별 탈 없이 자신의 브렉시트 합의안이 가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판 폴리티코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국경강화와 관련한 ‘백스톱(안전장치)’ 등 합의안에 반대하는 여야 의원들로 인해 부결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고 분석했다. 칼레의 이민자들을 지원해온 시민단체 ‘칼레 액션’ 관계자는 “2년 전 브렉시트를 결정한 그날의 그 갈등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해 영국이 난민 문제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