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애순, 몸을 통해 자유로워지기···현대무용 '평행교차'
다른 세계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판타지를 떠올리게 했다. 안무가인만큼 몸을 통해 다른 환상을 보여줘서,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을 지내며 선보인 실험작들이 보기다. 불상(佛像)을 소재로 삼고 힙합 라운지 솔 음악을 가져온 '불쌍', 전통 장례문화에 등장하는 꼭두를 모티프로 한국 샤머니즘 미학을 톺아본 '이미 아직', 가상세계를 접목시켜 현대인에 대한 억압을 다룬 '공일차원' 등이다. 안애순은 25일 "몸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반대로 보여줘서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한 이유"라고 분명히 했다. "사람은 '나의 패턴'에서 남이 행동하는 것이 벗어나면 흥미를 갖지도 않고, 함께 하려고도 하지 않아요. 텍스트라는 것에 길들여져 몸도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그 개념에 의해서 움직이죠. 그것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어요."
좀 더 쉽게 풀면, 시간성이라는 것이 과거·현재·미래의 나열로 단순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는 과거와 미래와 함께 담겨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보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노인, 현재보다 미래의 시간을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서 떠올린 작품이다. "나이 드신 분들은 시간 교차를 심하게 하세요. 과거의 일을 마치 오늘의 일처럼 가지고 있죠. 반면 젊은 사람은 현재의 자기 시간보다 미래에 만들 수 있는 기대 등을 통해 자기 욕망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현재 내 몸은 과거의 시간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시간까지도 감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시간과 공간이 서로 분리돼 있는 것 같지만 서로 교차하며 하나의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이런 안애순의 판단은 결국 '몸을 통해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까'로 귀결된다. "사람들에게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라고 하면 오히려 마음대로가 안 돼요. 이미 학습이 된 생각이 떠오르는 거죠. 몸과 환상을 연결해서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지점을 찾고 싶어요. 그래서 춤과 몸을 먼저 제시하는 거죠. 결국 이번 작업이 몸을 느끼는 동시에 존재까지 느끼는 작업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안애순의 작업물은 실험적이어서 다소 어렵다는 인상이 강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진철해질 것이라며 웃었다. "관객들도 상상할 수 있는 지점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몸의 공간뿐만 아니라 심리적 공간에도 관심이 많은 장혜진은 "우리의 몸이 지금의 몸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상이 있었는지를 돌아봤는데, 안애순 선생님을 통해 반추한 결과 우리의 몸이 결국 소우주고 장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몸, 움직임의 증상을 예술이라는 장르성으로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여섯 명의 퍼포머가 이를 구현한다. 장혜진은 이들의 몸이 스크린이 돼 감정을 투영하는 것을 읽어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읽어낸다'는 것에 방점을 찍은 장혜진은 읽어내는 것은 결국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부모가 자신의 아이의 필요를 읽어낼 때도 시간이 필요해요. 손가락을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왜 추워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지켜볼 시간이 있어야죠." 당인리발전소, 네팔 지진피해 등과 연관한 안무로 사회적인 맥락으로서 몸과 움직임을 들여다봐온 장혜진은 이번 역시 자신이 해온 작업과 연관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패턴을 안무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들여다보는 거죠. 우리의 기억인지, 시스템인지 말에요."
이번에는 프로젝트 그룹 '무토'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그래픽 아티스트인 박훈규가 영상감독으로 나선다. 뷰직 대표이기도 한 그는 그룹 '빅뱅' 등 대형 가수들의 콘서트 영상을 도맡아온 업계 유명 인사다. 박훈규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미디어 파사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무용과 결합으로 관심이 더 높아졌으면 한다"고 바랐다. 무용을 통해 몸을 쓰는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그는 "매일 달리기를 하는 등 규칙적으로 몸을 쓰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보면서도 일상에서 몸을 쓰는 감각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어요. 이번 작업을 통해 그런 몸을 쓰는 분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습니다"는 마음이다. 한편 '평행교차'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8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 중 하나다. 주로 재능은 있으나 열악한 환경에 놓인 예술가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창작 현대무용계에서 입지를 다진 안애순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신작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일부에서는 낯설다는 반응도 나왔다. 안애순은 "무용을 30년 해왔음에도, 안무가에 대한 대우 장치가 잘 설정돼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면서 "예술가는 나이를 떠나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젊은 안무가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고 검증된 안무가의 책임감도 있는데 이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기대감과 두려움이 동시에 들어요"라고 했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