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흩날리는 송홧가루로 그렸다...김병종 '송화분분'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분분히 날리는 송화가루를 볼 때면 정신마저 아득해지는 때가 있다. 그 아득함을 그려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작업으로 이끌었다. 한국화가 김병종(66)화백이 송홧가루를 화폭에 그대로 담아낸 '송화분분'을 선보인다. 허공에 떠도는 송홧가루는 노란색점으로 변신했다. 닥종이에 두텁게 흩뿌려져 존재의 기운을 진동시킨다. 2017년 부인(소설가 정미경)을 먼저 떠나 보낸 그에게 송홧가루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새로운 시작을 품은 ‘씨앗’이라는 근원이자, 명을 다해 바람에 따라 세상을 떠도는 넋으로 마음에 담았다. "송홧가루를 보면 옛날에 들었던 '혼불'얘기가 떠오르곤 한다. 혼불이 떠간다는 것은 동시에 육(肉)의 소멸을 이르는 것이기도 하리라. 육성(肉性)은 땅에 남겨지고 영혼은 그 육(肉)의 거푸집을 빠져나와 그야말로 유천희해(遊天戱海) 하 듯 자유롭게 떠 가는 것 아닐까”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시장은 그가 그린 봄날의 송홧가루로 가득 메어졌다. '송화분분'을 타이틀로 개인전을 열고 있다. 그의 대표작 시리즈인 '생명의 노래', '바보 예수'에 이은 신작이다. 지난해 서울대학교 동양과 교수직을 정년퇴임하고 전업작가로 들어선 그의 첫 전시이기도 하다. 실제 송홧가루가 재료가 된 '송화분분' 연작은 '생명의 노래'의 연장선이다. '생명의 노래'는 역사와 시대에 대한 실존적 고민에 천착했던 80년대와 90년대를 넘어, 삼라만물의 생명력을 새롭게 조망하여 화폭에 담은 작업이다. 두터운 질감의 안료, 촉각적 마티에르는 그의 전매특허다. 안료의 물성(物性)이 만든 화면에 생생하게 정지돼 있는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의 의미를 갖는다. 전통과 현대를 오가는 작업으로 김 화백은 한국화 화단에 새로운 모형을 제시한 80~90년대 스타 작가였다. 서구적인 소재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하는 실험적인 작업으로 주목받아왔다. ‘닥종이와 먹’이라는 전통적인 매체와 더불어 송홧가루를 사용하는 작업은, 오로지 전통만을 강조하는 한국화 혹은 서구권에 영향을 그대로 흡수한 작품들과는 분명하게 구별된다. 장 디뷔페(1901~1985)를 연상시키는 두터운 마티에르와 아크릴 물감의 사용은 한국화와는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작품을 보면 딱 한국적인 한국화로 보인다. 학, 소나무, 말, 닭, 연꽃과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적인 소재들과 전통의 오방색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유와 해학성이 결합되어 독자적인 '현대 한국화'를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전통적인 산수를 배경으로 화면 가득히 채워 넣은 '춘산' '추산' 작업도 처음 선보인다. 가까이에서 보면 산의 형상이 뚜렷하지만 한 발자국 물러나면 선과 점으로만 남는다.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다각적인 작업을 보여주는 김병종 회화의 신작에 대해 미술사가 전영백 홍익대 교수는 "풍부한 시적 변조를 담은 '송화분분'으로 후기 생명연가의 서막이 열렸다"며 이렇게 평했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김병종의 작업을 관통하고 있는 가장 특징적 일관성은 화면의 마티에르다. 노란 가루를 가득 담은 화면에는 그 모든 분투를 돌아보는 회고의 사색과 절제의 시선이 온화하게 녹아있다. 봄바람에 천천히 이동하는 송홧가루의 움직임처럼 우리의 생명은 정처 없이 어디로 가는 걸까. 다만 확실한 한 가지는 그의 회화가 보여주듯,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는 것이다." 전시는 4월7일까지.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