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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 1주기 "가야겠다. 그 많은 것을 준 세계로"

등록 2019-10-04 17:45:31   최종수정 2019-10-14 09:5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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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기 맞춰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 출간

"세계의 모든 향기를 이 작은 몸안에 담고 있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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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허수경 시인 (사진=출판사 난다 제공)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그가 떠난 지 1년이 되었다. 그는 아무 날에 태어났고 아무 날에 갔다. 작은 체구며 깡마른 얼굴이며 초췌한 듯 순정한 눈동자를 깜박이던 시인 허수경. 3일은 그의 1주기였다. 그가 떠난 날은 개천절이었으며 10월 상현이 밤하늘에 떠 있던 날이었다.

최승자와 허수경. 혹자는 한국에서 제일 가는 여성 시인은 이렇게 둘밖에 없다고 확언하기도 한다. 한 사람은 아프고 한 사람은 떠나고 없다. 비유하자면 시인이란 나중에 태어나 먼저 죽는 사람. 허수경이 바로 그렇다. 우리는 매일매일 늙어가고 있지만 허수경은 더이상 나이를 먹지 않는다. 나이를 잊은 사람. 혹자는 생전의 허수경을 일컬어 세상을 다 살아낸 노파가 열 명쯤 들어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허 시인은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경상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87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등단 이듬해 낸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1988)는 충격이었다.

"산가시내 되어 독 오른 뱀을 잡고/ 백정집 칼잽이 되어 개를 잡아/ 청솔가지 분질러 진국으로만 고아다가 후 후 불며 먹이고 싶었네 저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을 재워 선한 물같이 맛깔 데인 잎차같이 눕히고 싶었네 끝내 일어서게 하고 싶었네/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폐병쟁이 내 사내' 부분)

나이를 잊은 듯 무르익다 못해 물러터질 듯 농염하고 청승맞은 세계는 전통 서정에 역사의식을 덧입힌 채 독자적인 미학을 구축했다. 두번째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에서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에서 웃음으로 울음을 대신하는 '킥킥'은 한국 시사에 전무후무한 인상적 의성어가 되었다.

20대에 내놓은 두 시집으로 일약 한국 시의 중심으로 진입한 허수경 시인. 하지만 '혼자 가는 먼 집'을 낸 직후 돌연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독일에서 고고학을 전공해 학위를 받은 그는 지도교수인 독일인 학자와 결혼해 그곳에 눌러앉았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시는 잊은 듯했으나 한국어에 대한 갈증을 풀듯 세번째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2001)을 펴냈다. 그리고 이어진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2005),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2011),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2016)를 거치며 한국시의 맥락에 국제적 감각을 접목해 보였다. 그런 그가 '혼자 가는 먼 곳'으로 떠난 지 1년. 영영 돌아올 수 없기에 더 소중한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붙들었던 원고가 '가기 전에 쓰는 글들'라는 유고집으로 묶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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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의 1주기 추모제가 3일 북한산 중흥사에서 진이정 시인 원적 25주기 추모제와 함께 열렸다. ⓒ출판사 난다
"이 시들은 귤 한 알에서 시작되었다. 암이 재발하고 난 뒤 병원에서 더이상 수술조차 받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일주일이 지난 뒤쯤이었다. 오랜 입원도 그랬지만 위암으로 도려낸 위와 커진 종양때문에 더이상 음식을 마실 수도 먹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인공적인 영양 공급만을 받을 수 있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차피 의사들은 몇 주 몇 달을 버티지 못할 거라고 진단했었고 나 역시 더이상 살아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창으로 바깥을 바라보니 삼월의 눈이 내리고 있었다. 베란다 창틀에 작은 귤이 하나 놓여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병원으로 가기 전 무슨 생각인지 귤 한 개를 베란다 창틀 위에 올려둔 모양이었다. 언 귤을 먹으리라는 마음이었을까? 나는 창문을 열고 귤을 손으로 집어들었다. 귤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귤 향이 은은하게 나고 있었다. 얼지도 않았는지 귤은 상하지 않고 여전히 싱싱했다."(2018년 4월 15일)

2018년 4월 15일이면 그가 작고하기 다섯 달 전이다. 허수경은 이미 위암으로 위를 도려내고 종양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썼다. 그 날의 일기는 한 편의 시로 마무리된다.

 "나는 귤을 쪼갰다./ 귤 향!/ 세계의 모든 향기를 이 작은 몸안에 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내가 살아오면서 맡았던 모든 향기가 밀려왔다./(...)/ 그리고 가야겠다. 나도 그 많은 것을 준 세계로./ 그리고, 그리고, 당신들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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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의 1주기를 맞아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이 출간됐다. ⓒ출판사 난다
'그'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갔고 '당신들'인 우리는 남았다. 

허수경과 오랜 인연을 이어온 출판사 난다 대표 김민정 시인은 "허 시인이 이 곳에 없었기 때문에 그 1년의 과정을 정확하게 기술해야 한다는 숙제를 갖고 있었다"며 "유언대로 이 책의 방향성을 잡았다"고 밝혔다.

 "생전 기록을 깊이있게 읽다보니 산문, 동시도 많았더군요. 허 시인에게 시는 정말 중요한 일이었고, 목숨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 유고집은 허수경 시와 가장 닮아있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요. 발표했던 시도, 시론도 그렇지요. 허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시의 이야기를 집약했어요."

유고집에 실린 그의 마지막 시편을 읊조려 본다. "너를 사라지게 하고/ 나를 사라지게 하고/ 둘이 없어진 그 자리에/ 하나가 된 것도 아닌 그 자리에/ 이상한 존재가 있다./ 서로의 물이 되어 서로를 건너가다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종이배처럼"('안는다는 것' 전문)

김민정 시인은 "허 시인이 독일에서 죽었기 때문에 한국 장례 절차에 따라 염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허 시인은 가장 한국적인 것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불교 공부가 깊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허 시인을 대신하고 있는 이 책에 염을 하는 기분으로 책 표지를 만들고 싶었다. 독일에 있는 형부가 수경언니는 '바이올렛'이라고 했기 때문에 보라색으로 된 천의 질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원래 삼베를 찾아 나섰는데, 보라빛 삼베로는 커버를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한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죽었는가보다는 어떻게 살았는지로 평가되기 마련이다. 수록시들에는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녹아있다. 2011년부터 7년간 남긴 시작 메모, 자신의 시 세계를 논한 글 등이 실렸다. 가슴 절절한 이야기는 시인의 유서로도 읽히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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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난다
허 시인의 1주기 추모제는 3일 북한산 중흥사에서 진이정 시인 원적 25주기 추모제와 함께 열렸다. 두 시인과 함께 '21세기전망' 동인이었던 동명스님(차창룡 시인)이 제사를 주재했다. 신용목 시인이 허 시인의 작품세계를 소개했으며, 박준 시인이 추모사를 했다. 참석한 문인들은 허 시인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흘렸다.

김민정 시인은 "꽃과 책과 연필 한 자루를 잘 태워주고 왔다"며 "시인에게 닿을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연기를 글로 맡고 재를 글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 사는 사람이니까 있었으면 하는 바람 같은 걸 실어보았다"고 말했다.

 2011년 12월 장편소설 '박하'의 출간에 맞춰 방한한 허 시인을 처음 만난 이래 이메일을 계속 주고받은 오은 시인은 "편지를 잘 주고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글을 길게 쓴다"며 "이메일을 편지처럼 써서 보내줬다. 편지가 시 같았다. 그렇게 쓰는 사람은 처음 봤다. 모든 문장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는 시인이었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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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시인이 허수경 시인 1주기 추모제에 참석,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과 꽃, 연필 한 자루를 손에 들고 있다. ⓒ출판사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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