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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죄의식이 작동하는 과정…'호텔 창문'

등록 2019-11-11 16:16:16   최종수정 2019-11-18 09: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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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단편 소설...2019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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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호텔 창문'. (사진 = 은행나무 출판사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임종명 기자 = "19년 전 사고 이후 현재까지 죄책감을 떠안고 사는 '운오'. 운오는 강에 빠져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났다. 강물에 휩쓸려갈 수록 발끝에 닿는 무언가가 없어져갔고 그러나 닿은 바위를 힘껏 밟고서야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눈을 뜨자 사람들에게서 운오는 사촌 형 '운규'를 죽인 사람으로 남았다. 운오가 밟은 바위가 운규였던 것. 운오의 기억에 운규는 시도 때도 없이 '죽을래?'라는 말을 내뱉었던, 자신을 괴롭힌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고 이후 운규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운오는 그 좋은 사람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 되어버렸다."

편혜영 작가가 죄의식이라는 화두 아래 죄 없는 죄의식에 대한 치밀한 성찰을 보여준다. 2019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단편소설이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 들뜨지 않는 것처럼 자신이 오래전에 죽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도 별 감흥이 없었다.”

작가는 호텔 창문을 통해 단편적인 죄의식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특정 상황에 대해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정하는 축도(縮圖) 내지 신도(伸圖)가 존재한다는 것도 비춘다.

독자가 작품 속에 배치된 갖가지 장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소설은 새로운 결론을 맞을 수도 있다.

운오가 죽은 사촌 형의 친구 사연을 통해 자신의 과거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는 반면 타인의 상황을 바라볼 땐 관대하지만 운오 스스로는 사회 내 다수가 만든 틀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러니함을 드러내는 결말이 도출될 수도 있다.

그래서, 죄로 확정 지을 수 없는 것들을 죄로 규정하고, 그러기 위해서 과도한 죄의식을 타인에게 부여하고, 그리고 죄 없는 죄의식의 존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내밀하게 작동하고 있는 원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책에는 수상작 '호텔 창문' 외에도 일상 속 단편적 이야기를 토대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6명의 여성 작가 작품도 담겼다.

사랑 앞에서 벌어지는 비합리적 선택을 위로하는 동시에 질타하고 싶어 하는 양면성을 그린 김금희 작가의 '기괴의 탄생', 예술가와 보헤미안이라는 소재로 자본주의적인 현재의 시공간에 맞춰 비트는 김사과 작가의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 퀴어 커플이 겪는 삶 속 껄끄러움을 포착한 김혜진 작가의 '자정 무렵' 등이다.

이와 함께 이주란 작가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조남주 작가의 '여자아이는 자라서', 최은미 작가의 '보내는 이' 등도 포함됐다.

일상 속에서 한 번쯤 접해봤을 만한 상황을 다룬 이야기들이지만 그 속에서 진솔히 곱씹어볼 만한 질문을 느껴볼 수 있다.  224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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