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로]코로나19에 바짝 긴장한 軍…전염병이 좌우한 戰史
신종 코로나 확산 우려에 한때 군인 1100명 격리전염 위험 큰 집단생활, 대량 인명피해 가능성과거 십자군전쟁, 크림전쟁 등 세계 戰史 사례6·25전쟁 땐 한탄바이러스로 유엔군 3000명 사망
※ '군사대로'는 우리 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하는 연재 코너입니다. 박대로 기자를 비롯한 뉴시스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군의 이모저모를 매주 1회 이상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환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우리 군이 유별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대응 태세를 강화해 눈길을 끈다. 국방부는 군부대 내 코로나19 확산을 막겠다며 2월 들어 10일까지 최대 1100여명을 격리시켰다. 국방부는 증상 유무와 관계없이 14일 이내 중국을 방문했거나 방문한 자와 접촉한 장병을 예방적 관찰대상자로 분류하고 부대에서 격리하는 등 일반 사회에 비해 강도가 더 높은 대책을 시행했다. 주한미군 역시 중국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미군 장병을 14일간 자체 격리했다. 건장한 청년들로 구성된 군이 이처럼 유별스러울 정도로 경계 태세를 강화하는 데는 이유가 따로 있다. 부대 내 생활관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탓에 확진환자가 발생할 경우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염병에 대비하지 않았다가 많은 병력이 손실되고 전세가 바뀌었던 역사 속 사례를 살펴보면 군의 이 같은 과민 반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예병일 연세대 원주의과대 교수가 저술한 '전쟁의 판도를 바꾼 전염병'에 따르면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고대 그리스에서 벌어진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아테네군은 전쟁 초기 발생한 전염병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기원전 430년 여름에 발생해 아테네를 강타한 이 병은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돼 이집트를 거쳐 지중해 동부로 퍼졌다. 이 병은 심한 두통, 눈 충혈, 입과 목구멍의 출혈, 기침, 콧물, 가슴 통증, 위경련, 구토, 설사, 갈증, 붉은 반점 등 증세를 동반했다. 아테네 육군의 약 4분의 1이 이 병에 걸려 숨졌다. 지도자 페리클레스도 이 병의 희생자가 돼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 전염병이 아니었다면 아테네는 스파르타를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세계사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을 수 있다. 서유럽의 기독교도들이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8회에 걸쳐 감행한 십자군 전쟁에서도 전염병이 수차례 창궐해 각 군의 운명을 바꿔놨다. 십자군은 1098년 여름 터키 남동부 안티오크에서 셀주크투르크군을 격퇴했다. 그러나 승전 후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해 수많은 군인들이 사망했다. 날마다 30~40구의 시체를 묻어야 했던 십자군은 지리멸렬 상태에 빠진 채 안티오크를 빠져나가야 했다. 7차 십자군 원정 때인 1250년에는 프랑스 루이 9세가 이끄는 십자군이 이집트 만수라에서 이슬람군과 전투를 벌였는데 이때도 전염병이 번졌다. 병사들의 다리 살이 썩어 들어가고, 피부는 흙처럼 검게 변했으며, 잇몸은 썩고 코에서 피가 흘렀다. 전세가 악화되자 루이 9세는 퇴각을 명령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와 프랑스 왕 프란시스 1세의 갈등으로 벌어진 제2차 이탈리아전쟁(1526~1529년)에서는 발진티푸스가 창궐했다. 2만8000명 규모 프랑스 군대는 나폴리에서 신성로마제국 군대를 포위해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때 발진티푸스가 번지기 시작했다. 병에 걸린 병사들이 죽어나가면서 프랑스 병력은 4000명까지 줄었다. 신성로마제국군은 전투력이 급락한 프랑스군을 손쉽게 격퇴했다. 독일에서 일어난 종교전쟁인 30년 전쟁(1618~1648)에서는 선페스트가 군인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독일 각지에서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선페스트가 퍼졌고 각국에서 파견된 병사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병을 퍼뜨렸다. 네덜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잉글랜드가 전쟁 기간 내내 선페스트에 시달려야 했다. 이 병은 독일을 황폐화시켰고 이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까지 퍼졌다. 러시아와 오스만투르크·영국·프랑스·사르데냐 연합군이 크림반도·흑해를 둘러싸고 벌인 크림전쟁(1853~1856년)에서는 콜레라가 유행했다. 크림전쟁 초기부터 콜레라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기승을 부렸다. 위생과 의료 사정이 열악했기 때문에 병이 쉽게 퍼졌다. 전쟁 기간 동안 콜레라 외에 괴혈병, 이질, 발진티푸스 등 여러 질병이 영국, 프랑스, 러시아 병사들에게 퍼졌다. 전투보다 질병에 걸려 죽는 사망자가 더 많았다고 전해진다. 이 같은 상황은 영국 간호사 나이팅게일이 활약하는 배경이 됐다.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에서는 '아이티 혁명' 과정에서 황열이 퍼졌다. 아이티 원주민들이 1801년에 반란을 일으키자 프랑스는 약 1만2000명 규모 군대를 보내 식민지의 반란을 진압하려했다. 이 때 황열이 유행하면서 1802년 6월까지 프랑스군 약 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황열은 여름 내내 기세를 떨쳤고 병사뿐만 아니라 지휘관들도 사망했다. 프랑스군은 철수했고 아이티는 독립을 쟁취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염병 때문에 많은 군인이 숨진 일이 있다. 유행성 출혈열로 불렸다가 현재는 이름을 바꾼 신증후군 출혈열이 그 주인공이다. 6·25전쟁 중 주목 받아 한국형 출혈열이라는 별칭도 있다. 신증후군 출혈열은 신부전, 출혈, 혈소판감소증, 쇼크 등을 동반하는 급성 발열질환으로 쥐의 타액, 소변, 분변을 통해 호흡기로 감염된다. 중증의 경우 합병증으로 사망(사망률 5~15%)하며 치료제는 아직도 개발되지 않았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유엔군 3200여명이 이 병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당시 중공군 역시 병영 내에 괴질이 돌아 한강 이남을 넘어오지 못했는데 이 괴질 역시 신증후군 출혈열로 추정된다. 피해가 심했던 탓에 유엔군과 소련군, 중공군은 이 병을 상대가 만든 생물학 무기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 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는 한탄바이러스(Hantaan virus)다. 1976년 이호왕 박사가 동두천 한탄강 유역에서 잡은 등줄쥐에서 바이러스를 발견한 뒤 한탄바이러스란 이름을 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