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마리 퀴리' 리사 "힘든시기에 눈물 흘리는 관객 보면 뭉클"
노벨상 수상 과학자 마리 퀴리 연기코로나 19 속 관객 응원29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마리 퀴리'는 폴란드 태생의 프랑스 물리학자·화학자 마리 퀴리(1867~1934)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뮤지컬. 마리 퀴리라는 한 인간과 그녀가 발견한 '라듐'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다. 마리를 지지하는 안느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연대에도 방점을 찍는 작품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인해 공연이 잇따라 취소되는 상황에서 공연장을 찾는 관객과 배우, 그리고 스태프들도 일종의 연대 의식이 맺어진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공연장은 안전하다는 믿음, 이곳을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관객·배우·스태프의 연대 속에서 공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일 오후 광화문에서 만난 리사는 "얼마 전에 대극장 공연을 보러 갔는데 타격이 크더라고요. 무대가 정말 멋있었는데 객석이 많이 비어있었어요. 어쩔 수 없죠. 위험한 상황이니까. 그런 가운데도 '마리 퀴리'를 한 번 더 보러 오겠다는 관객 분들로 인해 감동을 받죠"라고 했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일대기에 상상력을 더한 팩션 뮤지컬이다. '방사능 연구의 어머니'로 통하는 마리 퀴리의 대표적 연구 업적인 '라듐'의 발견과 그로 인해 초래되는 비극적인 사건들이 중심 소재다. 좌절에 맞서는 인간의 숭고한 용기와 삶의 가치를 톺아본다. 창작뮤지컬 공모전인 2017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2(주최 한국콘텐츠진흥원·주관 라이브)의 최종 선정작에 이름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마리는 노벨상을 두 번 수상한 최초의 과학자. 그러나 여성이라는 성별을 넘어 과학계에 큰 업적을 남긴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하기까지 수많은 고난을 겪었다. 폴란드 출신 여성이라는 태생적 조건은 보수적인 당시에 큰 족쇄로 여겨졌다. 리사는 "그 시대 여성들은 힘든 일을 많이 겼었죠. 그것을 이겨냈다는 자체가 큰 힘이고 그런 여성 캐릭터를 보여줘서 고맙다는 관객 분들도 많아요"라면서 "여성 스토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나온다"고 뿌듯해했다. '마리 퀴리'가 더 높게 평가 받는 것은 여성 서사 안의 이야기만 다루지 않는 점이다. 단순히 열악한 환경에서 여성이 성공을 하거나 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자체의 이야기다. 여성 중심의 이야기를 여성의 성장 이야기 또는 여성의 성공담으로 치부하는 것도, 캐릭터와 작품의 한계를 미리 그어버린다는 지적이 공연계에서 최근 나왔다. 그래서 '마리 퀴리'는 인간적인 면을 톺아본다. 자신의 연구가 초래한 비극에 좌절하지만 이내 정면으로 맞서는 여성, 아니 인간을 들여다본다. 리사는 "(극 중에서 눈이 보이지 않아 방사선 치료를 받는) '루이스 보론스카'가 마리에게 말하잖아요. '선생님은 실패는 하더라도 포기는 하지 않는다'고요. 그런 부분에서 저 역시 힘을 많이 얻었어요"라고 했다.
리사는 "'천재 과학자'로 태어난 분을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그녀의 고국인 폴란드는 러시아의 오랜 지배를 받았고, 여자였고.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책임감을 갖고 꾸준히 나아가는 것을 보면서 저 역시 '포기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정신 차려라. 리사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어요. 그래서 첫 공연을 올리고 무척 기뻤죠"라고 했다. "무엇보다 가짜로 연기하거나, '뭐 같은 척'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이로 인해 각급 자료를 다 찾아왔다. 국내에서는 마리 퀴리 관련 책이 절판된 것이 많아 외국 사이트를 찾아들어가고 유튜브에 업로드된 해외 자료들을 샅샅이 돌려봤다. "처음에는 똑똑하고 지적이며 남들과 다르게 '완성된 사람'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렇다 보니 사회성이 좀 부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너무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사람이라 자신의 연구가 나쁜 결과를 도래한 것에 대한 책임감도 컸고. 그런 부분들을 신경 썼어요." 사실 리사도 2003년 가요계에 데뷔 당시 '엄친딸'이라는 수식이 붙었다. 외교관 부친을 따라 어린 시절부터 폴란드, 독일, 스웨덴 등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덕분에 영어는 물론 독일어 등 4개국어를 구사했다. 직접 노래도 만들고 홍익대 회화과를 나와 미술에도 소질이 있었다.
특히 리사는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유럽에서 많은 차별의 시선을 견뎌내야 했다. "지금은 K팝 덕에 한국이 잘 알려졌지만 저 어릴 때만 해도 모두 '일본인이냐'고 물었죠. 한국을 아는 사람이 있어도 지금(의 위상)처럼 여기지 않았고요. 물론 마리 퀴리랑 비교도 안 되지만 그녀가 받았던 느낌이 있어요." 사실 2008년 '밴디트'로 뮤지컬에 발을 들일 때만 해도 이 업계에서 리사는 이방인 같은 존재였다. 특히 '대장금'에 출연했을 당시 서구적인 외모의 그녀가 이 역에 어울리지 않다는 반응도 컸다. 하지만 보란 듯이 리사는 자신만의 '대장금'을 보여주며 호평 받았다. 이후 '영웅' '에비타' '광화문연가' '레베카' '프랑켄슈타인' 등 대극장 뮤지컬의 주역으로 나서는 대표 뮤지컬 배우 중 한명이 됐다. 그럼에도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살면서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온 '절제'가 그녀에게서는 여전히 묻어난다. 실제로 마실 것도 잘 고르지 못한다는 그녀는 "마리처럼 결단을 하고 용기 있게 밀고 나가는 사람이 대단하게 느껴진다"면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으려고 굳건히 노력하는 그녀를 연기하고 있으면 힘이 난다"고 했다. 이번에 마리는 리사 외에 김소향, 정인지가 나눠 연기한다. 폴란드에서 온 라듐공장 직공으로 동료들의 죽음을 마주한 뒤 그 뒤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려는 안느 역에는 김히어라와 이봄소리가 더블 캐스팅됐다. 천세은 작가, 최종윤 작곡가의 손길에 과학고와 카이스트 출신이라는 이색 이력의 김태형 연출이 이번에 새로 합류했다. 공학도답게 마리 퀴리 역의 배우들에게 수학 공식을 외우는 법 등을 알려준 그는 대학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연출 중 하나다. 29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