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110분짜리 코스요리의 포만감…연극 '궁극의 맛'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코로나19 응원 위해 무료 공개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펼친 '두산인문극장 2020: 푸드'의 두 번째 작품인 연극 '궁극의 맛'은 잘 차려진 7가지 코스로 잘 대접 받은 기분이 들게 했다. 미각보다 마음의 감각을 건드리는 작품이었다. 츠치야마 시게루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재창작한 연극. 도박·폭행·살인 등으로 수감돼 살아가던 재소자들의 속사정이 음식을 통해 김을 내뿜는다. 각기 활동하면서 또 창작집단 '글과무대'로 연대하고 있는 극작가 황정은·진주·최보영이 각색한 일곱가지 에피소드를 윤성호 드라마터그가 잘 꿰매고 신유청 연출이 잘 조리했다. 옴니버스 형식의 이 작품은 무엇보다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세 작가는 한국 사람의 정서와 다소 동떨어질 수 있는 원작의 일본 색을 덜어내고, 한국적 음식을 골라 에피소드를 녹여냈다.
재소자들을 자칫 미화시킬 수 있는 조미료는 최대한 배제했다. 편견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요소들은 송송 잘라내고, 인간적인 면모를 끄집어내서 조리해냈다. 교도소 조리사가 평범한 요리인 라면에 문어 모양을 낸 밀가루 반죽을 넣어 만든 '해물 없는 해물라면'을 건네 받는 재소자가 특히 그렇다. 어머니와 추억이 얽힌 소박한 생일상이지만, 그 음미의 시간은 특별하다. 라면은 특히 공연 중에 직접 조리가 돼 후각도 자극한다.
마지막에 배치된 에피소드 '체'는 이번 코스요리의 화룡점정. 미술치료에 참여하는 재소자와 이들의 모습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싶은 외부 사진작가의 시끌벅적 소동을 그린다. 그런데 '먹어내는 이야기'가 아닌 '토해내는 이야기'다. 약물, 술 등에 중독된 재소자들을 통해 '소화가 된다는 것'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이 에피소드를 쓴 황 작가는 "'궁극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은 다 소화한 순간"이라면서 "그 소화가 안 된, 중독된 사람들이 욕망과 외부인들이 가지고 온 욕망이 만났을 때 토가 나올 거 같았다"고 했다. 이처럼 '체'는 마지막 반전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국 맛의 끝을 완결하는 '뜸' 같은 역할을 해낸다. 작가집단이 각자 따로 쓴 에피소드가 결국 수렴되는 힘이 반갑다.
아울러 최근 몇 년 간 공연계에 유행한 '이머시브(관객 몰입형) 공연'의 별미이기도 하다. 메인 무대를 삼각자 모양으로 설정하고 그곳을 테이블로 몇 겹 둘러싸 객석을 만들었는데 바(Bar)처럼 보이는 곳곳에 실제 음식이 놓이기도 한다. 배우들은 관객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과 의자 사이사이를 누빈다. 배경은 감옥이지만, 배우와 관객 따로 갇혀 있지 않고 마음의 문까지 열게 된다. 작가들이 잘 뽑아낸 탱글탱글한 면을 개운하게 우려낸 국물에 잘 말아낸 신 연출의 담백한 솜씨가 입맛을 다시게 한다. 알찬 고명 같은 강애심, 이수미, 이주영, 이봉련, 김신혜, 신윤지, 송광일의 연기도 별미였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지니 '잘 먹었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두산아트센터는 코로나19로 인해 위축된 공연예술계를 위해 '두산인문극장 2020: 푸드'의 첫 번째 작품이었던 '1인용 식탁'에 이어 '궁극의 맛'도 무료 공개하고 있다. 20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