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155분이 짧다, 유니버설발레단 친절한 발레…'오네긴'
유니버설발레단의 대표 전막극 '오네긴'이 3년 만에 관객을 찾았다. 코로나19 이후 유니버설이 올해 처음 여는 정기공연이다. 지난 18일 시작해 26까지 진행되는 '오네긴'의 인기는 뜨거웠다. 23일 오후 8시 어두어진 밤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신당역 부근은 인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반면 충무아트센터 안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로비에는 거센 비를 뚫고 온 발레팬들로 가득했다. 기계를 이용한 비대면 체온 즉정을 기다리는 사람들 뒤에 줄을 서야만 입장할 수 있었고, 입장과 동시에 직원들이 QR코드를 통한 문진표 작성을 친절히 도왔다. '오네긴'은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는 순수한 여인 '타티아나'와 오만하며 자유분방한 도시귀족 '오네긴'의 어긋난 사랑과 운명을 밀도있게 그린 작품이다.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원작으로하는 이 작품은 드라마 발레의 거장 '존 크랑코'의 안무와 작곡가 쿠르트-하인트 슈톨제가 차이콥스키의 28곡을 편곡해 만든 음악으로 탄생했다. 1965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세계초연했고, 반세기가 지난 현재 주요 발레단의 레퍼토리로 전세계 발레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2009년 유니버설발레단이 최초로 선보였고, 이후 누적관객수 3만2000여명을 기록 중이다. '오네긴'은 '발레입문자를 위한 공연', '발레입문자도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정평이 나 있다. 이는 존 크랑코의 성향 덕분이다. 연극적 요소를 중시했던 그는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본질이 잘 드러나도록 캐릭터를 특성화하고, 그랑파드되와 디베르스티망 등 정형화된 팬터마임을 과감히 없앴다. 실제로 '오네긴'은 발레에 조예가 깊은 정통 발레팬들이 아닌 처음 보는 관객들도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한 편의 정제되고 우아한 '무언극'에 가깝다. 그마저도 일부 무언극이 난해하고 추상적인 움직임으로 극을 이끄는 데 반해, '오네긴' 속 무용수들의 선은 구체적이며 노골적으로 이야기를 그린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1막2장의 어두운 밤 방에서 꿈을 꾸는 '타티아나' 독무부터 2장1막의 방탕한 '오네긴'이 사랑에 빠진 절친한 벗 '렌스키'의 약혼녀 '올가'(타티아니)의 동생을 유혹하는 2인무, 3인무 등 독무와 2인무 등이 극을 이끈다. 정형화된 동작을 없애고 주요 장면에서 무대 위 무용수를 최소화해 감정 묘사를 최대화했다. 이를 통해 이들이 사랑과 이별, 갈등하는 상황 속 심리가 여실히 드러나도록 했다.
그렇다고 해서 클래식 발레의 기교가 빠져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사실 이들의 독무·2인 무대는 '오네긴'에서 무용수들의 테크닉이 폭발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특히 마지막 클라이맥스인 3장2막에서 오네긴과의 타티아나와의 2인무에서는 리프트(발레리노가 발레리나를 들어올리는 기술) 등 무용수들의 기교가 폭발한다. 여기에 유니버설발레단원들이 선보이는 고난도의 화려한 군무는 극에 생기를 더했다. 3장2막이 끝나고 극이 완전이 막을 내릴 때, 관객들은 복받치는 감정과 순식간에 끝나 버린 무대에 대한 아쉬움에 탄식을 쏟아냈다. 이날 친구에 이끌려 '억지로' 생애 첫 발레 공연을 봤다는 한 관객은 "러닝타임이 155분이라고 들었을 때 암담했다. 비가 오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안 갈까 1부 끝나고 아픈 척 집에 갈까 하고 고민했었다. 근데 공연이 너무 빨리 끝나서 마지막에는 너무 아쉬웠다. 특히 30분, 40분의 2장, 3장은 마치 10분 2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으로 느껴졌다"고 소감을 전했다.
나무나 거울 등 배경이 지닌 의미도 함께 눈여겨 본다면 공연을 훨씬 더 깊게 즐길 수 있다. 문훈숙 단장의 자세한 설명, 그보다 더 친절한 프로그램북은 관객의 이해를 돕는데 큰 역할을 한다. 물론 이 없이도 누구나 몰입해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