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성 정체성 비밀의 희비극…뮤지컬 '펀홈'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 10월11일까지
우리나라에서 아직 낯선 '성소수자'라는 소재는 자신의 아픈 기억을 마주하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작품의 주제를 거들 뿐이다. 현재 자신의 좌표를 잃어버린 듯 아득함에 휩싸여 있는 누구나 공감할 여지가 크다. 미국 작가 앨리슨 벡델의 자전적 동명 그래픽 노블이 원작. 영어 선생이자 장의사였던 동성애자 아버지 브루스 벡델의 삶, 작가 자신의 레즈비언의 삶의 계보를 추적하면서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다. 대학에 입학한 앨리슨은 당당한 레즈비언이자 시인인 조안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이후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알게 된다. 그녀는 용기를 내 부모에게 고백하기로 한다. 하지만 평소 고고한 취미를 갖고 남의 눈을 절대적으로 의식하는 부친 브루스가 마치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그러나 정말 공감하지 않으며 받아들이는 태도가 못마땅하다.
앨리슨이 청소년 시기를 보냈을 1970년대 미국에서는 동성애를 '성격장애'로 규정했다. 사회의 압박과 눈초리에 힘겨워하던 브루스는 결국 달리는 차에 뛰어든다. 꼭 성소수자가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시선에서 누구나 숨기고 싶어 하는 정체성의 비밀이 있다. 그리고 꼭 동성애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가족이 부딪히는 이유는 늘 있다. '펀홈'이 놀라운 점은 미국의 평범해 보이지 않는 가족의 특별함이 한국의 평범한 가족의 보통적인 일로 공감시킨다는 것이다. 앨리슨이 자신의 기억을 따라 아버지를 차차 이해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이해하지 못할 세계로부터 내동댕이쳐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누그러지고 슬며시 위로가 찾아온다. 현재의 화자로서 과거를 회상하는 43세 앨리슨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폭발하는 감정의 혼란스러운 청년기를 보내는 19세 앨리슨, 보통의 여자아이들과는 달랐던 어린 시절을 보내는 9세 앨리슨을 지켜보는 구조가 그런 두려움과 슬픔의 달램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앨리슨의 이야기는 구구절절하게 들리지 않는다. 작곡가 지닌 테소리가 섬세하게 빚어낸 넘버를 타고 중력처럼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는 지금 이 시대의 풍경화가 된다. 테소리와 작가 리사 크론이 뭉쳐 만들어낸 음악은, 70년 역사의 토니상에서 여성 콤비에게 처음으로 '최우수 음악상'을 안기는 화음을 만들어냈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 위대한 소설들이 모티브로 곳곳에 배치된 점도 지적 유희를 즐기게 한다.
'펀홈'은 시간의 비밀 통로 앞에 서 그 집의 문고리를 잡게 해준다. 자연의 섭리처럼 인생은 순탄하거나 정교하지 않다. 가끔은 혼란에 찬 명령과 같은 삶을 마주해야, 정답은 아니더라도 나름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펀홈'은 그걸 용기 있게 보여준다. 이제 각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떠날 차례다. 2015년 연극·뮤지컬계 아카데미상으로 통하는 '제69회 토니상'에서 베스트뮤지컬상과 음악상을 비롯해 5관왕을 안은 작품이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한국에 과연 소개될 수 있을까'라며 의문을 품은 작품인데, 그간 '스위니 토드' '쓰릴 미' '스프링 어웨이크닝' '넥스트 투 노멀' 등 마니아들이 추종하는 개성강한 작품들을 국내에 선보여온 박용호 프로듀서가 국내에 소개했다. 43세 앨리슨 역의 방진의와 최유하, 19세 앨리슨 역의 유주혜와 이지수, 9세 앨리슨 역의 유시현과 설가은, 브루스 벡델 역의 최재웅과 성두섭 등 어떤 배우도 나무랄 데 없이 캐릭터 옷을 제대로 입는다. 조안 역의 이경미 매력도 눈길을 끈다.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키다리 아저씨', 음악극 '태일'과 '섬:1933~2019', 연극 '오만과 편견' 등에서 섬세하고 감성적인 연출로 주목받은 블루칩 연출가 박소영이 연출한다. 오는 10월11일까지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