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병훈 "오케스트라에서 호른은 엄마 같은 존재"
서울시립교향악단 호르니스트로 활동'세상에서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중학교때 관현악부에서 호른과 인연"지친 마음 치유하는 연주자 되고파"
'오케스트라다운 하모니'라는 소리를 내기 위해 꼭 필요한 악기가 무엇일까? 여러 악기가 있겠지만 그 중 '호른'을 강조하고 싶다. 이름은 익숙하지만 정확히 무엇인지 잘 알려지지 않은 악기, 호른은 트럼펫, 트롬본, 튜바와 함께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금관악기다. 관의 모양은 전체가 둥글게 감긴 형태로, 가늘고 긴 원통관에 완만한 원추관이 이어지고 개구부(열리는 부분)에서 갑자기 넓어져 나팔꽃 모양을 이룬다. 마우스피스(관악기에서 입을 대고 부는 부분)는 깔때기 모양으로 다른 금관악기와는 전혀 다르다. 음넓이는 약 3옥타브 반에 이르며 음색은 온화하면서도 웅대한 색채를 지녔는데, 주법에 따라서는 거친 효과음도 낼 수 있다. 금관악기 중 중간 음역을 담당하고 있어서 '화성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며 실내악곡(앙상블)이나 독주곡으로도 연주된다. 선율부에 아름답게 쓰이는 경우가 많다.
서울 종로구 서울시립교향악단 리허설룸에서 12일 만난 호르니스트 김병훈(33)은 오케스트라에서 호른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부연했다. "호른은 관현악곡에 자주 등장하는 금관악기에요. 그리고 대부분 솔로로 연주되죠. 물론 관악기 대부분이 오케스트라에서 솔로로 등장해요. 하지만 그 중에서도 호른은 작곡가들이 너무 비중을 둘 수 밖에 없는 악기예요. 각기 다른 악기들 사이사이를 채우는 역할을 하니까요." 기네스북에는 호른이 '세상에서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악기'로 등재돼 있다. 긴 관의 길이에 비해 마우스피스는 작은 탓에 소리를 내려면 엄청난 호흡량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토록 연주가 어려운 악기이건만 김병훈은 그것과 처음 마주해 시도한 순간 바로 소리를 냈다. 악기라고는 관심도 없던 중학교 1학년 시기 음악실에 '호른'이라는 악기가 있다는 말에 친구와 함께 이를 구경하러 간 때였다. "제가 좀 YES맨이에요. 누가 뭘 하자고 하면 그냥 잘 따라하죠.(웃음) 그때 친구를 따라가서 처음 호른을 불러 봤어요. 그 악기의 음색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지만 그냥 불어서 소리가 나니 신기하더라구요."
하지만 선생님조차 그에게 트럼펫 운지법을 호른 운지법으로 알려줄 만큼 무지했던 탓에 그는 이내 흥미를 잃었다. 제대로 배우고 있지 못 하고 있다는 실망감에 1년이 지난 뒤 2학년 때 관현악부 활동을 그만두려 했다. 김병훈은 "그때까지 악보도 못 봤다. 솔 소리를 내는데, 맞는 음정을 내는지도 판단이 안 됐다. 내가 듣기에 분명 이상하게 불고 있는 피드백이 없었다. (호른을)불면서 '이게 뭐하고 있는 거지'하는 생각에 들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음악선생님은 그만두려는 김병훈을 붙잡았고, 'YES맨' 김병훈은 그렇게 3학년 때까지 관현악부 활동을 이어나간다. 고진감래라고 했던가. 그때 일생일대의 전환기가 찾아온다. 3학년 학기 초 3월 학교에서 마침 관현악부를 위한 전문 지휘자로 김왕국(전 부산시립교향악단 호른 단원)을 초빙해 온 것이다. 그는 김병훈에게 악기를 부는 법부터 시작해 제대로 소리를 내는 법을 알려주게 된다.
그렇게 그는 앞으로의 장래를 호른에 걸기로 결심한다. 불과 몇 개월 만의 '제대로 된 연습' 끝에 충남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한다. 당시 호른으로는 단둘이 충남예고에 입학한 이지훈 호르니스트와는 선의의 경쟁을 하며 동반 성장했고 지금도 막역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예고에 들어가니 실질적인 경쟁이 시작됐어요. 당시 학년별로 관 파트 현 파트로 나눠서 등수를 매겼어요. 친구들 간에 경쟁이 치열했죠. 예고에 와서도 김왕국 선생님께 계속 배웠어요. 또 당시 전공담임선생님이신 윤희암 선생님이 굉장히 열정적이셨던 분이셔요 의지를 더 불태울 수 있었죠. 그때 했던 오케스트라 곡은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예요.(웃음)" 이후 피나는 노력 끝에 연세대 기악과에 입학했지만, 경찰 교향악단에서 군 생활을 할 당시 큰 위기가 찾아온다. 머리로 하는 계산하면서 하기 보다 감각적으로 호른을 불어 온 그는 후임들에게 호른을 가르치는 방법을 연구하다 자신이 호른을 불렀던 법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 전까지는 악기를 엄청 잘 불었어요. 음역대도, 고음도 쭉쭉 잘 내고 악기가 쉽게 다가왔죠. 근데 그 순간 이후로는 호른에서의 일반적인 중고음 음역도 낼 수가 없더라구요. 결국 기초연습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어요. 엄청난 슬럼프였어요. 지금도 그때 겨우 찾은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게끔 유지하려고 엄청 노력하고 있을 정도죠." 힘들었던 슬럼프를 이겨낸 그는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하노버 국립음대 석사과정, 함부르크 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최우수성적으로 졸업했다. 하노버 당시 사사한 마르쿠스 마스쿠니티는 그가 지닌 나쁜 습관을 고쳐줬다. 김병훈은 "제가 기술적으로만(부는 법에)접근을 하다 보니 프레이징(악구 나누기)이 끊기는 현상이 있었다. 이걸 고치는 데만 1년 반이 걸렸다. 쉽게 설명하자면, 호흡으로 부는 악기다 보니 호흡에 신경을 써서 자연스러운 소리를 내야 한다. 그런 부분을 배운 거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성장한 김병훈은 로스톡 북독일 필하모니 종신수석과 강릉시립교향악단 수석객원 등을 역임하고, 2016년부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단원으로 함께하고 있다. 현재는 대학에 출강하며 후학 양성에도 열심인 그의 목표, 꿈은 짧고 강렬했다. "음악을 하는 이유요? 듣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죠. 사람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치유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