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and]색각이상자 160만명인데…색맹을 위한 법은 없다
국회 표결 상황 전광판, 찬성과 기권 색 구분 어려워국회 산하기관 보고서 지표도 식별 어려운 색 사용제헌 국회 이래 색각이상 관련 입법 1건…작년 폐기김민기 "그동안 무심해…관련 입법안 고민해볼 것"장혜영 "국회도 '유니버설 디자인' 원칙 필요한 시점"
[서울=뉴시스] 문광호 기자 = 지난달 22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 지원을 위한 4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통과시켰다. 전광판에는 재석 282명 중 찬성 272명, 반대 1명, 기권 9명의 이름이 각각 녹색, 빨간색, 노란색으로 표시됐다. 그러나 전광판을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봐도 추경안에 기권표를 던진 의원들과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을 구분할 수는 없었다. 필자와 같은 소위 '색각이상자'에게 전광판의 색 구분은 무용지물이었다. 색각이상은 색에 대한 인식 차이가 커 다른 색각을 가지는 것으로 특징은 어떤 색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거나 다른 색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색맹, 색약 등으로 불린다.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색각이상은 흔한 증상으로 국내에서는 전체 남자의 5.9%, 전체 여자의 0.4%가 색각이상이다.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총 인구 5178만명(남성 2595만명, 여성 2583만명)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남성 색각이상자는 153만명, 여성 색각이상자는 10만명으로 총 163만명에 달한다.
전광판을 통한 찬성, 기권 의원의 구별뿐 아니라 국회 예산정책처 등 산하기관에서 발간하는 자료 중에도 색각이상자에게는 구분하기 어려운 지표들이 다수 발견된다. 실제로 예산정책처에서 지난 7일 발간한 '혁신성장 전략투자의 현황 및 경제적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 중 그림1은 반도체와 자동차의 추세선을 비슷한 회색 계열로 표시해 색각이상자들에게는 구분이 어렵다. 색각이상자들을 위한 입법도 부족한 실정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 제헌국회부터 제21대 국회까지의 의안 중 제안 이유로 '색약' '색맹' '색각이상'(한자 포함)을 든 경우를 검색해본 결과 지난 2019년 7월 김민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토지이용규제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단 1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한 채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김 의원은 "또 한 번 발의를 할 생각"이라며 "그동안 색각이상자들에 대해 무심한 측면이 있다. 색각이상자들의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의 입법안들을 고민해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국회 의사중계의 수어통역, 자막, 화면해설 등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국회 내에서도 '유니버설 디자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의 유무에도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제품 혹은 사용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을 말한다. 최근에는 게임에서도 '색약 모드'를 지원하는 등 널리 적용되는 추세다.
국회 관계자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본회의 표결 상황의 경우 산회 직후 홈페이지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홈페이지는 시각장애인협회의 웹 접근성 표준을 인정받아 색약자를 위한 색채 대비 기준은 충족시키고 있다"며 "음성 서비스도 가능하고 텍스트를 통해 내용을 파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본회의장 내 전광판은 의원들이 보는 게 1차 목적이고 국민들은 본회의가 산회하자마자 홈페이지에 표결 정보가 들어오기 때문에 국민들이 보실 수 있다"며 "만약 불편한 의원이 있다면 음성 서비스 등을 안내할 수는 있는데 색맹, 색약이라는 이유로 음성 서비스를 요청한 분은 없었다"고 전했다. 식별이 어려운 국회 예산정책처 등의 자료 등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는 고려하지 못 하는 게 사실일 것"이라며 "기관에서 보고서를 낼 때도 색상에 대해 신경을 써야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