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 사망자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영정 없는 제사상 앞 마지막 배웅'최운수·이병구' 이름을 기억하며마지막 가는 길은 꽃길이기를
#영정사진 없는 제사상 성탄절 아침, 서울시립승화원 조그마한 빈소에 발인제를 위한 제사상이 차려졌다. 고인들의 이름이 적힌 두 개의 위패 위엔 하얀 종이에 쓰인 '근조'란 문구뿐 영정사진은 없다. 기억되고 싶은 모습조차 남겨줄 사람 없는 이들, '무연고(無緣故) 사망자'의 장례식이다.
2020년의 크리스마스, 무연고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는 비영리단체 '나눔과 나눔', 의전 업체 '해피엔딩'을 따라 공영 장례식에 동행했다. #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사람들 발인제가 시작되기 전, 검은 옷을 차려입은 부부가 조심스럽게 빈소로 들어왔다. 오늘 하루, 고인들의 '상주'가 될 분들이다. 성탄절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자원봉사로 참여한 부부는 두 시간가량 대중교통을 타고 왔다고 했다. 여유롭게 보낼 수 있었던 연휴지만 기꺼이 시간을 냈다. 부부의 발걸음이 고인들에겐 어쩌면 마지막으로 받은, 혹은 처음 받아본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조용히 인사를 나눈 후 잠시 침묵이 흐르자, 박진옥 나눔과 나눔 상임이사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동갑 두 분을 떠나보내네요. 지금부터 이병구 님과 최운수 님의 장례 의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씨는 지난 12월 7일 결장암으로, 최 씨는 11일 방광암으로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숨졌다. 이 씨는 연고자에 시신 인수를 물었지만 답이 없었고, 최 씨는 연고자가 없어서 무연고 사망자가 됐다.
"평생 외롭게 살다 삶의 마지막 순간마저도 혼자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외로운 죽음에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주위엔 '잘 지내니?', '안녕?'이란 안부 인사조차 그리워 할 이들이 많았습니다. 가슴이 아려집니다. 고인이 걸어온 긴 외로움의 여정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너무나도 늦었지만 이젠 가야만 하는 여행길은 덜 외로웠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편히 안녕히 가십시오. 고이 잠드소서." 고인들 앞에 모인 이들은 오늘이라도 만나 반갑다는 인사와 함께 안녕히 가시라 작별을 고했다.
# 관의 무게 "이제 내려가셔야겠습니다." 박 상임이사가 고인들의 영구가 도착했다고 알렸다. 상주가 위패와 국화꽃 두 송이를 들고 운구 차량으로 향했다. 최 씨의 관이 먼저 도착했다. 박 이사와 의전 업체 직원 두 분, 자원봉사자 이 모(54) 씨가 운구를 했다. 관이 잠시 휘청했다. 운구하는 인원이 적어서인지, 고인의 풍채가 좋았기 때문인지, 그 삶의 무게가 무거워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인의 관은 곧바로 자리를 잡고 화장로로 향했다. 화장로 두 곳에 각각 이 씨와 최 씨의 관이 들어갔다. 유리창 너머로 참석자들이 묵례를 했다. 화장터에서 흔히 들리는 곡소리 없이, 차분하고 덤덤하게.
화장은 1시간 넘게 소요된다. 이때 보통 종교의식을 치르는데 많을 때는 10여 명에 이르는 종교인들이 참석해 발 디딜 틈 없었다고 한다. 이날은 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종교단체 회원들 없이 최소한의 인원으로만 장례를 치렀기 때문이다. 염불이나 찬송가는 들리지 않았지만, 찾아온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로 빈소가 적막하지만은 않았다. 자원봉사자 이 모(54) 씨가 "아까 운구할 때 꽤 무거웠어요"라고 나지막이 운을 떼자 "풍채가 좋으셨을 것 같아요"라며 박 상임이사가 덧붙였다. "최선의 삶을 살아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후회도 있고 잘 살아 보려고도 해봤을 것으로 생각해요. 그러면 잘 가시라고 인사 한마디 받을 수 있는 그런 분들이지 않을까요." 함께한 이들이 고인의 생전 모습을 헤아리며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는 동안 화장이 끝났다. 화장로로 들어갔던 커다란 관은 사라지고 고인의 유골만 남겨졌다. 60여 년 삶의 무게는 금세 한 줌의 재가 됐다. 울음소리 없이 고요히 끝난 화장. 박 이사와 의전 업체 직원 그리고 자원봉사를 하러 온 부부가 고인의 위패와 유골함을 나눠 들었다.
# 마지막 가는 길은 꽃길이기를 이 씨의 유골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산골'을 위해 유택동산으로 내려갔다. 유택동산 앞에서 고인들의 위패와 유골함을 내려놓았다. 자원봉사자들은 국화꽃 잎을 손으로 뜯어 고인들의 위패와 유골함 위에 뿌렸다. 가는 길은 '꽃길'이길 바란다는 의미다. 최 씨의 유골은 무연고 추모의 집에 봉안된다. 산골하는 이 씨의 유골은 유택동산의 유골함에 모두 넣었다. 그리고 위패에 있던 지방을 태웠다. 지방이 타는 모습을 보며 '정말 마지막 인사구나' 싶다.
# 누군가에겐 죽음 이후조차 고민... 공영 장례가 나아갈 길 "무연고 장례식이 매일 있는 건 아니죠?" 남편을 따라 무연고 장례 자원봉사를 처음 온 임 모(54) 씨가 물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 달에 15, 16회 정도였는데, 지금은 일상이 되어버렸죠." 박 상임이사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무연고 사망자의 수는 지속해서 증가했다.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는 2,536명으로 2012년 집계된 1,025명의 2.5배 수준이다. 무연고 사망자의 곁에는 과연 아무도 없을까. 박 상임이사는 "아무도 없는 분들은 많지 않다"라며 가족이 있는 경우 "안치와 장례비용이 부담돼 시신 인수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한 명당 평균 장례비용은 300만 원이다. 누군가에겐 죽음 이후조차 고민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 이사는 공영장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먼저 가족이 치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최소한의 장례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고인과 '관계'를 맺은 이들, 친구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들이 장례를 주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올해 새로 지침을 마련한 '가족 대신 장례'로 가능해졌다. 마지막으로 가족도 관계도 없으면 '시민'이 장례를 치르는 방법이다. 누군가는 나의 죽음을 기억해주고 애도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사회여야 누구나 존엄한 삶의 마무리 할 수 있지 않을까. # 죽음과 장례 영역도 이제는 사회보장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때 "쪽방촌에서 한 주민과 대화를 나누다가 집 밖으로 나오는데, 벽에 제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는 거예요. 동그라미를 쳐놓고 무연고 담당이라고 써놓으셨어요." 박 이사는 그때 깨달았다고 한다. '내가 죽으면 이 사람이 장례를 해 줄 거야'라는 믿음. 내가 죽어도 사회가 나를 갖다 버리는 게 아니라 나를 이렇게 잘 보내 줄 거라는 믿음은, 삶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사회가 줄 수 있는 안전망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무연고 장례식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고 '최운수' 님과 고 '이병구' 님의 이름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이름만이라도 기억하는 것이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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