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로]軍, 피해자 국선변호사制 도입 후 방치…女중사 비극 초래
국선변호사 역할 놓고 당사자·유족 대치예산 배정 부족해 국선변호사 제도 파행군부대 국선변호사 제도 개선 요구 분출
성추행 피해 후 고통을 호소하던 공군 이모 중사가 지난달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이 중사 유족은 성추행 사건 발생 후 딸을 돕던 국선변호사 이모 중위(군 법무관)를 고소했다. 이 중위가 성추행 피해로 고통을 받는 이 중사를 제대로 돕지 않아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다는 게 유족의 주장이다. 이 중사 측 김정환 변호사는 지난 7일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에서 "유족들 입장에서는 국선변호인이 피해자와 관련한 여러 가지 조력을 정상적으로 했었다면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시고 계신다"고 유족의 불만을 전했다. 이에 대해 이 중위는 국선변호인으로서 역할을 다했다고 항변했다. 이 중위 측 법무법인은 지난 23일 "의뢰인(군 법무관)은 3월9일부터 5월10일까지 피해자(이 중사)와 총 7차례 통화하고 총 12차례 문자 연락을 했다"며 국선변호사로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중위 측은 그러면서 "의뢰인이 피해자와 면담을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피해자가 면담을 요청했는데 이를 거부했다거나 하는 사정은 전혀 없고 국선변호사는 반드시 피해자를 면담해야 한다는 등의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중위 측은 이 중사와 면담을 하지 않았음을 시인하면서도 군사법원법에 면담을 하라는 조항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중위의 이번 주장을 통해 군사법원법에 규정된 군 범죄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가 허술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 제도를 도입한다는 내용이 담긴 군사법원법이 공포되자 국방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자화자찬했다. 국방부는 "군조직은 계급체계 내에서 상명하복을 중요시하는 특수성이 있어 상관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계급이 낮은 군인·군무원은 피해 사실이나 피해 회복에 대해 제대로 진술하기 어려웠다"며 "앞으로 국가가 군 범죄피해자에 대해 전문가의 법률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게 되어 군복무의 질을 높이고 군조직의 통합을 이끄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의 설명과 달리 제도는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관련 예산이 아예 편성되지 않거나 매우 적게 편성돼 각 군 법무실은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를 운영하는 데 애를 먹었다. 각 군은 주먹구구식 운영 속에 궁여지책으로 군 법무관을 피해자 국선변호사로 임명하고 있다. 이번 성추행 사건이 벌어진 공군 역시 법무실 소속 중위 2명이 피해자 국선변호사를 맡고 있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 공군에서 성추행 사건이 터진 것이다. 피해자를 전담할 인원이 부족하다보니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앞두고 있고 예비전력 시험 출제관으로 보름간 연락이 두절되는 이 중위를 피해자 국선변호사로 배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제도만 만들어놓고 관련 예산을 제대로 편성·심의하지 않은 국방부와 국회 모두 이번 사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문가들은 다수의 변호사로 국선변호사 풀(pool)을 구성하고 국선변호사들 개인에 대한 자료를 공개하며 피해자에게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조언한다. 또 국선변호사가 피해자 조력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국선변호인 활동 실적에 따라 보수나 수당을 제공하고, 국선변호 활동 종료 후 평가까지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아울러 범죄의 경중에 따라 경미한 범죄는 군 법무관을, 중한 범죄에는 민간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를 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육군 헌병 병과장 출신인 최병호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정부행정학부 초빙교수는 '군 형사절차상의 국선변호인제도 개선방안' 논문에서 "국가는 변호인을 선정해주는 것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며 "형사소송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법원이 선정한 국선변호인이 사선변호인 못지않게 노력하도록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