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터뷰]은유 작가 "태어나자마자 유령되는 아이들, 알고 있나요?"
'있지만 없는 아이들' 출간미등록 이주 아동 이야기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 부모에게 체류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가 돌보지 않는 아이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법을 어긴 존재가 돼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이야기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자격 부여 제도가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들을 만들어내고자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책을 기획, 은유 작가에게 집필을 제안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인근에서 만난 은유 작가는 "그간 사회 분야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여름께 이번 제안을 받고 사실 생소해서 놀랐다. 그때 처음 이 아이들의 존재를 알았다"고 털어놨다. "많은 사람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그 자녀들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갖지 않아요. 처음 인권위 제안을 받고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며 충격으로 다가왔죠." 국내에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20만~30만명, 미등록 이주아동은 2만명 정도로 추산한다. 전교생 400명인 학교 50개 규모의 집단이라고 짐작하면 적지 않은 수다. 부모가 유효한 체류자격이 없으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혹은 어느 날 갑자기 법을 어긴 존재가 된다. 당장 추방되는 것은 아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의거해 학습권이 주어져 고등학교까지는 다닐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학교생활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주민(외국인)등록번호가 없어서다. 본인 명의의 휴대폰 개통이 어렵고, 청와대에 견학을 가서도 들어가지 못하고, 봉사 사이트에도 가입하지 못한다. 티켓 예매 사이트 회원 가입이 안돼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에도 가지 못한다. 작가는 "우리 사회가 인터넷 강국인데, 신분증이 없으면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며 "있어도 없는 존재처럼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유 작가는 아이들을 만나며 자신조차도 인식하지 못했던 편견을 깨달았다. "미등록 이주아동하면 한국어가 서툴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나봐요. 그런데 그냥 한국 사람, 오히려 한국 아이들보다 더 한국말을 잘 하더라고요. 오히려 자기 존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다보니 생각도 깊고 말을 더 잘 하더라구요. 자기 생각이 정리된 아이들을 만나기 쉽지 않은데, 놀라웠죠." 가장 인상깊은 아이는 첫 장에 등장하는 한국에 머물던 언어·청각장애를 가진 몽골 국적 부모에게 태어난 19살 마리나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나고 자란 한국을 떠나야 하는 현실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고, 인권위는 법무부에 마리나의 강제퇴거 중단을 권고했다. "마리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를 돌봐야 하는 처지였죠. '부모가 나를 키운 게 아니라 내가 키웠다'라고 말하는 마리나의 말은 마음에 깊이 다가왔어요. 미등록 이주아동 뿐 아니라 국내 빈곤아동의 경우 가장 노릇하는 아이들이 제법 있어요. 어른이 아이를 당연히 돌본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책에서 마리나는 "저는 한국에서 유령으로 지내온 거나 마찬가지다. 살아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한다. 작가는 "모든 학생들에게 지원되는 코로나 지원금도 이 아이들은 당연스럽게 빠졌다"며 "교육권은 당연히 보장돼야 하는 권리인데 살아갈 수가 없도록 막혀있다. 너무 잔인하고 가혹하다"고 말했다.
작가는 "사실 교사들이 미등록 이주아동을 만날 일이 얼마나 자주 있겠나. 지침이 내려와도 자기 반에 해당하지 않으면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이 아이들 역시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존재하고 있는데 사회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토로했다. 미등록 이주민을 사회에서 '불법체류자'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됐다는 판단이다. "'불법' 하면 범죄자라고 생각하는데, 이들은 그냥 서류가 미비한 사람들일 뿐이에요. 그래서 안 좋은 인식이 있고, 또 영화 등에서 범죄자로 많이 다뤄지면서 사람들에게 낙인이 찍혔죠. 같은 사람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010년 한국에 온 이란 태생 김민혁군은 종교적 박해를 이유로 2016년 난민 신청을 했다가 2018년 5월 불인정 처분되며 출국명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학교 친구들을 중심으로 난민 인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낸 결과 같은 해 10월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작가는 "난민 문제가 나오면 악플도 달리고 안 좋게 보는 선입견이 많은데 실제 만나본 적이 없어서, 아는 게 없어서 오히려 배타적인 것 같다"며 "민혁군 같은 친구가 있으면 그런 편견을 갖지 않을텐데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사람은 누구든 혼자 살 수는 없어요. 서로 돕고 해야죠. 민혁군도 자기가 도움을 받았으니 도움을 줄 거라고 해요. 서로 돕는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진거죠. 내가 살기 바쁘다고 내 몫만 챙기면서 살면, 그 결과는 좋지 않죠." 한국도 더이상 '단일민족'이 아닌 만큼 편견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우리도 이제 이민자 사회로 접어들었다. 다문화 비중이 5%가 넘으면 다민족 사회라는데 우리도 진작에 넘었다"며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원래 글 쓰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작가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증권회사 다니다가 노조에서 글을 썼고, 퇴사해서 아기를 출산하고 육아기를 거쳐 다시 프리랜서 작가가 됐다. 2011년부터 글쓰기 수업도 하고 있는데, 딱 10년 됐다. 한 편 한 편 원고를 마감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회고했다. 2019년에 쓴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도 화제가 됐다. 현장 실습에 나갔다가 혹사당하고 결국 목숨을 잃은 고등학생 김동준군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2014년에 일어난 사건이에요. 3년 후 출판사에서 책으로 써보자는 제안이 왔죠. 2019년에 책이 나왔는데, 당시 청년들의 산업재해가 이슈가 됐어요. 우리 청년, 청소년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부당한 일을 겪고 끝내 목숨까지 잃어서 안타까웠습니다." 사회적 약자들로부터 삶을 배우며 살아간다. 그는 "동준이 어머니, 유가족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듣고 가슴 아파하며 지적인 자극을 받았다"며 "물론 힘들고 가슴 아프지만, 나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는 그 고통 속에서 볼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고 말했다. "제가 어떻게 살아야겠다고 가르쳐준건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약자들이에요. 우리가 인간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건 배우게 되죠. 많은 사람들이 '내 돈', '내 직장'을 지키는 법을 배우지만 정작 자신을 지키는 법은 배우지 못해요." 각종 글쓰기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주로 비대면 수업이다. 그는 "오프라인 수업 때는 끝나고 같이 떡볶이도 먹고 그랬는데 그런건 못하지만, 대신 지방 분들이나 아기엄마 등 수업 참여 폭이 넓어졌다. 그런 생각지도 못한 좋은 점이 있다"고 웃었다. 앞으로 '버릴 게 없는' 책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로 책을 냈었는데 이제 아이들이 성인이 됐다. 그렇다고 육아가 끝난 건 아닌 것 같다"며 "나중에 엄마의 후반기에 대한 책을 한 번 써보고 싶다"고 밝혔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소수성을 위로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누구나 유령과 같은, '있지만 없는' 존재가 될 수 있어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