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팔 수술 받고 변했다"...조각가 최수앙 'Unfold'
학고재 본관서 개인전 28일 개막이전 극사실적 조각에서 탈피한'인체 해부상' 조각·회화 등 21점 전시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진짜 사람'같은 극사실적 조각을 선보여온 최수앙이 변했다. '재현의 껍질을 걷어내고' 해체주의로 나아간 모습이다. 28일 서울 삼청동 학고재에서 공개한 최수앙의 신작은 '열린 구조체'로 눈길을 끈다. 조각 작품은 마치 '인체 해부상' 처럼 보인다. 피부가 없는 근육을 드러내 역동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다. 사람의 살갗을 덮은 것 같은 섬세하고 세밀한 이전 조각과는 확연히 다르다. 작가에게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수술 이후 1년 넘게 작업 활동을 중단했다. 수술로 인해 물리적으로 손이 묶이면서 습관적이었던 것들을 못 하게 되었고, 오히려 열린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18년 여름, 최수앙은 양쪽 팔 수술을 받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오랫동안 맹렬하게 작업한 탓이다. 2019년 봉산문화회관(대구)에서의 개인전 '몸을 벗은 사물들' 이후로 2년간의 공백 기간을 가졌다. 최수앙은 양쪽 팔 수술 덕분에 "이미 알고 있는 해부학적 지식이라는 전제 조건에서 벗어나 순수한 조형에 접근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작품은 재현의 대상으로부터 벗어나 견고한 표피로서 닫힌 것을 열고, 새로운 사유가 개입할 여지를 마련했다. "재현된 형상은 그 자체가 갖는 상징과 서사가 강하기 때문에, 감정적인 서사가 발생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간의 작업과 '거리를 두고 열린 상태로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전시 타이틀 'Unfold'는 그래서 새로운 피부가 자라지 않은 발을 관객과 함께 내딛는다는 의미로 펼친다. 인체 표본처럼 구현된 작품 '조각가들'은 작가가 사실적 재현을 공부할 때 참고해오던 에코르셰(ecorche)를 바탕으로 시작한 작업이다. 에코르셰는 피부가 없는 상태로 근육이 노출되어 있는 인체나 동물의 그림이나 모형을 말한다. 16세기부터 미술가들의 작업실에 구비되어, 미술 해부학 교육에 사용했다. 조소를 전공한 최수앙이 기초로 돌아간 것이다. 최수앙은 "조각가들이 대형 작품을 만드는 모습을 담았는데 아랫부분은 조각가가 누워서 작업하고 상단부분은 비계(발판)을 딛고 올라가서 작업하는 모습"이라며 "'이들이 만드는 조각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드러난 근육에 칠해진 알록달록 색깔때문인지 으스스함보다는 경쾌함을 전한다. "작업을 위해 해부학 자료들을 많이 참고했는데, 신체의 일부분들을 보다 보니 이런 드로잉 구성이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했다. 인체 구조는 반드시 있어야 할 자리가 있고 고정된 형태이지만 사실 우리는 그것들을 잘 알지 못한다. 세계 지도처럼 구분을 위해서 색을 사용했다. 색이 가지는 상징이나 의미는 없다."
양쪽 팔 수술로 인한 흔적은 작품 '손' 으로 전해졌다. 마치 로봇 팔처럼 보이는 '손'은 스테인레스 스틸로 매끈하게 제작되어 더 단순해지고 힘을 뺀 모습이다. 인체 모형같은 조각과 함께 선보인 회화도 독특하다. 벽에 걸려있지 않고 바닥에 세워져 '조각같은 회화' 분위기를 전한다. 그렇다면 회화인가 조각인가. 이 물음에 대해 최수앙은 "조각가의 태도로 회화의 재료를 다루었다"면서 "그 경계를 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나는 조각가이기 때문에 입체를 상상하는 경우가 많다. 신체 구성 요소가 몸을 만드는 것처럼, 각각의 면이 온전한 입방체를 만드는 전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또한, ‘정면성’을 벗어나려 했다. 평면이 아닌 물질로 보이길 의도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앞면과 뒷면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세워서 전시하거나 경첩을 이용해 벽에 붙여서 작품을 넘겨서 볼 수 있는 방식을 고안했다"는 것. 결국 그의 의도처럼 벽에 걸려 고정된 정면성을 벗어난 작품은 몸을 움직이게 한다. 보는 사람이 물리적으로 작품에 참여해 작품의 상상력을 키우게 한다.
'단색화 대가'로 불리는 박서보 화백은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해도 추락한다'고 했다. '자기 복제'의 틀을 깨기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사실적으로 묘사한 입체 작업을 주로 해온 최수앙이 신작전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의 방식과 다른 새로운 양상의 작품을 평면,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한 21점을 선보인다. '익숙함과 거리두기'로 초심으로 돌아간 새로운 작품은 아직 낯설다. 남자와 여자의 조각이 미치도록 세밀해서 깜짝 놀라게 했던 '최수앙 표 징그러움'이 사라져 아쉽다. 전시는 8월29일까지.
조각가 최수앙은 누구?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개인과 사회의 관계 안에서 야기되는 다양한 현상을 사실적인 인체의 형상을 통해 풀어낸 작업을 해왔다. 그의 '사실적인 인체조각'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과 함께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기혜경,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평을 받은 바 있다. 2004년 스페이스 셀(서울)을 시작으로 꾸준히 개인전을 열엇다. 안셈부르크 미술관(리에주, 벨기에), 두산갤러리 뉴욕(뉴욕), 봉산문화회관(대구)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서울시립미술관(서울), 소마미술관(서울), 제10회 광주비엔날레(광주), 베스트포센 미술관(베스트포센, 노르웨이) 등 국내외 유수의 기관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성곡미술관에서 ‘2010 내일의 작가’로 선정됐고, 2014년 '김세중청년조각상'을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천), 서울시립미술관(서울), 성곡미술관(서울), 메종 파티퀼리에르 아트센터(브뤼셀) 등 주요 미술 기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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