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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미국의 건국에 기여한 와인

등록 2021-12-25 06:00:00   최종수정 2021-12-25 13: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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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 (사진=유토이미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미국 독립전쟁과 대륙회의, 미국 독립선언서, 연방규약, 그리고 미국 헌법의 기초에 참여하거나 서명한 건국 초기 4명의 대통령과 13개주의 대표를 포함한 역사적인 인물들을 미국에서는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of the United States)’로 부른다.

그 중 초대와 2대 대통령을 연임한 조지 워싱턴, 3번째 대통령을 지낸 토마스 제퍼슨, 토머스 제퍼슨과 함께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초대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벤자민 프랭클린, 초대 부통령과 2번째 대통령을 지낸 존 애덤스는 민주주의와 자유와 독립에 대한 신념 외에도 와인 애호가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청렴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존 애덤스는 토마스 제퍼슨과는 정치적으론 대립 관계였으나 그와 와인을 마시는 자리는 개의치 않았다. 말년에는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여기에는 와인도 한 몫 했다.

이들에 대해서는 와인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미국 독립 전쟁 당시의 개척자들은 와인을 많이 마셨다. 오늘날 미국인들이 연간 평균 10병의 와인을 마시는데 비해 그 당시 상류층들은 평균 35병을 마셨다. 특히 건국의 아버지들은 각종 회의를 하면서 ‘엄청난’ 양의 와인을 마셨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와인은 귀중한 역할을 했다.

신대륙에서는 아직 와인이 생산되지 않았던 때라 와인은 전량 외국에서 수입했다. 주로 포르투갈에서 수입했는데, 나중에는 포르투갈이 영국과 동맹을 맺은 영향으로 점차 프랑스 와인의 수입이 늘어났다.

조지 워싱턴은 마데이라 와인을 좋아했다. 마데이라 와인은 포르투갈 남쪽 북아프리카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대항해 시대에 대서양의 경유지 역할을 한 마데이라 섬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다. 포트 와인·세리주와 더불어 대표적인 강화 와인으로, 45도 이상의 고온 숙성을 거치면서 나오는 독특한 풍미로 유명하다.

워싱턴은 저녁 식사 후 꼭 3잔에서 5잔 정도의 마데이라를 마셨다. 그가 사망하기 바로 전날에도 집사가 대량으로 마데이라를 주문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좋아했다. 주로 한 통에 750㎖로 635병이 들어가는 대형 배럴 단위로 주문을 했다.

그는 급여의 7% 정도를 와인을 사는데 썼는데, 전설적인 이임 파티의 와인 구입에만 오늘날 가치로 1800만원 정도를 지출했다. 그는 상아로 만든 틀니를 했는데 와인 때문에 이빨이 착색되어 자주 교체해야만 했다. 토머스 제퍼슨의 영향으로 버지니아주 마운트 버넌에 있는 사저에 포도원을 만들었으나 실패한 경험도 있다. 오늘날 그 자리에는 다른 과일 농장이 들어서 있다. 대통령을 퇴임하고는 위스키 증류소를 만들어 한 해에 현재 가치로 2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릴 정도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토마스 제퍼슨의 와인 사랑은 더 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뒤를 이어 2대 프랑스 대사로 부임해 1785년에서 1789년까지 프랑스에 머물렀던 그는 프랑스의 주요 생산지역을 직접 순방하면서 많은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주로 보르도 와인 중심으로 연간 400병 정도를 추가로 구입하여 버지니아주 몬티첼로에 있는 사저의 그 유명한 와인 셀러로 보냈다. 대통령 재임 중에는 연간 600병 정도로 구입량을 늘이기도 했다.

대통령을 이임할 당시 와인 외상값만 1만 달러(현재 가치 2억7천만원 정도)에 달했고, 개인 와인셀러에 귀한 와인이 가득한 대신 이로 인해 개인 재정상태는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제퍼슨은 미국에서 와인을 직접 생산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와인 생산에는 실패했지만 몬티첼로에 직접 포도원을 만들어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그는 워싱턴 대통령의 내각에서 국무장관 역할을 맡으면서 개인적으로는 워싱턴의 소믈리에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제퍼슨의 이러한 배경을 이용해 가짜 ‘제퍼슨 와인’을 수십만 달러에 판매한 사기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벤자민 프랭클린도 굉장한 와인 마니아였다. 그는 프랑스 대사에 1776년 부임해 1785년까지 10년 간 프랑스에 머물렀다. 프랑스가 1779년 미국을 독립국가로 승인하면서 공식적으로는 1779년부터 대사 업무를 시작한 그도 수많은 프랑스 와인을 마셨다. 그도 조지 워싱턴에게 프랑스 와인을 가르쳤다. 워싱턴처럼 마데이라 와인과 보르도의 샤토 무통로칠드를 좋아했다. 1778년 무렵에는 파리에 있는 와인 셀러에 이미 1000병을 보관하고 있었다. “와인은 신이 우리를 사랑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확실한 증거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존 애덤스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그도 마데이라 와인과 보르도 와인을 좋아했다. 1784년에는 유럽과의 통상협정을 위해 토마스 제퍼슨, 벤자민 프랭클린과 함께 파리에 1년 정도 체류하면서 함께 많은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1785년 초대 영국 대사를 맡아 영국으로 떠나면서는 500병에 달하는 와인을 주문한다.

그러나 면세로 알았던 와인에 엄청난 관세가 붙자 그 당시 2대 프랑스 대사로 부임한 제퍼슨에게 보르도 와인과 마데이라 와인을 제외한 와인의 주문을 취소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간청하는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와인은 이미 선적되어 취소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나중에 프랑스 정부가 관세를 면제하여 그는 구입한 와인을 행복하게 마실 수 있었다. 2017년에는 뉴저지에 있는 조지 워싱턴 시절의 대통령 관저에서 존 애덤스 대통령의 취임식 선물로 보내졌다가 벽장에서 200년 넘게 보관된 마데이라 와인이 우연히 발견되기도 했다.

조지 워싱턴은 2기를 연임한 후 국민과 주위 사람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대통령직을 떠났다. 그는 나라와 와인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우아한형제들 인사총괄 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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